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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Jun 18. 2021

고양이 손님




아침에 일어나니 고양이 두 마리가 마당에 엎어진 양동이에 차례로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어쩐지 잘 서 있던 양동이가 며칠 전부터 엎어져 있더라니. 드디어 범인을 찾았다! 하지만 범인이라기엔 너무 귀여운 손님들인 걸. 얼룩이 한 마리와 노랑이 한 마리. 가끔 내 차 밑에서 낮잠 자는 모습은 보았는데, 밤마다 대문을 훌쩍 넘어 들어와 놀고 있었구나! 반갑다. 



노랑이는 이삿짐을 풀고 쌓아놓은 박스 위에 올라앉아 잠시 그루밍을 하고, 얼룩이는 자기들을 바라보는 나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도망갈까 봐 미동도 않고 한동안 지켜보다 유리창을 톡, 치며 인기척을 하니 깜짝 놀라 후다닥 대문 밖으로 튀어나간다. 괜찮은데, 더 놀다 가도 괜찮은데. 



양동이에 뭐가 들었길래 차례로 들락날락했는지 궁금해 가 보았더니, 그저 빗물이었다. 아, 목이 말랐구나. 배는 안 고프려나. 나간 김에 대문 밖까지 따라 쪼르륵 따라가 보니 차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내 동향을 살핀다. 알았어. 나 나쁜 사람 아니야. 쉬었다 가렴. 



그리고 들어와 커피콩을 갈았다.





콩이었다. 새 집으로 이사 오기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우리 고양이 이름이. 


쓰던 물건 다 나눠주고 이제 밥그릇 하나 안 남았는데, 콩을 갈며 아침부터 마트에 가 고양이 밥 사 올 생각을 한다. 굴러다니는 박스로 집도 만들어 줄까. 밥그릇도 넣고 물통도 넣어 언제든 배고프고 목마를 때  올 수 있게 해 주어야지. 곧 우기가 올 텐데 비 피할 곳도 되어주고. 마당이 있는 집이라 다행이다. 



곱게 갈린 원두에 뜨거운 물을 부으며, 함께 산다는 것, 곁을 내어준다는 것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또 생각했다. 



꼬리를 치켜세우고 도도하게 걷는 모습은 매력적이었지만, 아침에 밥 달라고 잠을 깨우면 귀찮기도 했다. 무엇이든 잘 먹는 모습은 예뻤지만 너무 살이 쪄서 아플까 봐 걱정스러웠고, 능청스럽게 요가매트 한가운데 올라와 자리 잡으면 저리 가라고 밀어내기도 했지만 배를 내밀고 편하게 낮잠을 자고 있으면 나도 덩덜아 마음이 편해졌다. 베란다에 나가 바깥의 풀과 나무를 보고 있으면 외로운가 애잔한 마음이 들었고, 내 무릎에 살며시 올라와 몸을 말면 아 무거워. 투덜거리면서도 덩달아 따뜻하고 포근해졌다. 





그랬던 콩이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신경질을 내더니 그때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밥을 끊었다. 


더 일찍 병원에 갔으면 살 수 있었을까. 신경질이 아니라 아프다는 뜻이었을까. 


병원에 입원시키고 와서 저녁을 먹다가, 


처치 중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고 식탁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다 급기야 엉엉 울었다. 






그랬는데, 그게 엊그제였는데. 


또 고양이 친구들이 찾아왔네. 혼자면 심심할 텐데 둘이 다니니 괜찮겠다. 


함께 살자고 선뜻 손은 못 내밀지만, 배고프고 목마르면 언제든 들를 수 있는 안식처는 되어줄게.



덕분에 또 나눔을 다짐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잘 살아보자.





그나저나 콩! 너는 거기서 잘 살고 있는 거지?







Photo by Manja Vitolic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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