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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Nov 25. 2021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될 때

귀여운 우주 먼지가 되자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1. 내 마음 :

열심히 일하고 싶은데

눕고도 싶은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안 먹고 싶은데

먹고 싶은 내 마음도

어찌하기 힘들고요.

다정하고 싶은데

가끔 차가워지는 내 마음,

그런 마음들이

내 마음대로 잘 안 돼요.  


2. 상대의 마음 :

이랬으면 좋겠는데

저러고 있는 마음도

내가 어찌할 수 없어요.

여기서 상대란

남편일 수도,

연인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나

부모님일 수도 있지요.


이 세상 누구나,

나와 어떻게든 마음을

주고받게 된 사람,

혹은 서로의 마음을

지켜봐야 하는 사람.

어쨌든 그들 마음도

내 마음대로 절대 안 됩니다.

그걸 깨닫기까지

참 긴 세월이 걸렸네요.


3. 그중에서도 최고 난이도는 바로

아이의 마음.

친구든 남편이든,

나와 완전히 다른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이,

간혹 억울하고

짜증 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노력하면

인정되긴 합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런 마음이 잘 안 먹어져요.

내 배에서 나와서 그런가

너와 나의 경계가 가끔 흐릿해져요.

내 배에서 나왔다고 해도,

아장아장 걷든 이쁜 짓으로

엄마 마음을 녹이든

온갖 일에

이유 없는 짜증을 내든,

나와는 다른 일인 분의 인간으로

잘 자라고 있으니

그 담을 딱 세워줘야 하는데,

그 담이 잘 안 세워져요.

내 뜻대로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간혹 들었다가

애써 내려놓다가,

그렇게 내려놓고도

남처럼 쉽게 포기가 안 되어

가끔 속상해져요.

그래서 난이도 최고.  



내 마음대로 안 되어 속상한데

그 속상한 마음이 또 내 마음대로 안 되어,

혼자 커피를 마시러 갑니다.

늦은 오후인데도요.

늦은 오후의 카페인 섭취는

오늘 밤 숙면을 방해하겠지만,

지금은 필요한 걸 어떡해요.


특별히 정신없는 쇼핑몰 한가운데.

두 면이 뻥 뚫려

오고 가는 쇼핑객이 다 보이는 커피숍에

엉덩이를 털썩.

카페라테가 유난히 진하네요.


평소에는 조용한 커피숍을 선호하지만

유난히 정신없는 공간에 끌릴 때가 있어요.

집중해 일하고 싶을 때는

조용한 커피숍이 좋지만,

시끄러운 속을 잠재우려면

비슷하게 소란한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그 소란 속에서 커피를 마시며

나만의 고요한 우주를 창조합니다.


옆에서 누가 무슨 수다를 떨든,

우유 거품이 부드럽게 감싼

쓴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면

나만의 우주가 만들어집니다.


오직 나만의 공간.

내 마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두둥실 떠오른

다른 차원의 시공간을 만들어주는

나의 귀여운 5,200원.


우주는 커다란 비눗방울 모습이에요.

영롱한 무지갯빛이 아롱거리는,

훅 불거나 툭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은.


지금 이 순간,

나를 지켜주는 나만을 위한 세상입니다.

그 세상 안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저마다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보여요.


커피를 내리고,

수다를 떨고,

일을 하고,

연인을 바라보고,

그런 모든 사람들.


어떤 마음으로 걷고, 앉고, 마시고,

마음을 나누고 있는지 모르지만,

각자의 세상에서 다들 그렇게 열심히,

또는 무심히 살고 있어요.  


내 곁에 있는 낯선 이의 존재 자체가

또 다른 우주겠지요.


오늘이 지나면 다시 볼 일 없는 사람,

파란 머리 언니,

까만 모자를 쓴 오빠,

등산복을 입은 아저씨와 강아지를 안은 아줌마,

아이와 눈을 맞추는 아빠와

더 큰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엄마,

그들 모두 각자 하나의 우주로 열심히,

존재하고 있네요.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내 마음이

힘없이 쪼그라들어 있을 때도,

그래도 가끔 내 뜻대로 되는 마음에

한껏 부풀어 있을 때도,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의 우주가

내 곁에 있어요.

가만히 숨 쉬며 부지런히 팽창하거나

수축하고 있겠지요.

서로의 희로애락은 모르지만

각자의 희로애락을 담고.

그렇게 말없이.

나란히.


간혹 식구들이 다 나간 텅 빈 집에서

나만의 우주를 창조해 보려고 하지만,

집에서는 잘 안 돼요.

온 우주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은데,

또 조금만 움직여도

그 우주가 파사삭 깨져버리는 느낌.

그렇게 온 우주가 내 것이면

어쩐지 더 불안해요.

어쩌면 외로움일까요.

이 우주에 나 혼자 있기 싫어서

낯선 타인이 필요한지도 몰라요.

혼자가 아님을 느끼려고요.


집에 아이를 두고 혼자 나와

혼자가 아님을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모순임을 알지만,

가끔은 필요해요.

타인의 위로가.

낯선 위로가.


그렇게 잠시라도

다른 차원의 시공간을 느끼며

낯선 타인의 우주를 바라보면,

왠지 위로가 되어요.


각자의 우주에서 일어나는

대폭발 따위는 모르지만,

어쩌면 모르기 때문에

위로가 되는 거겠죠.


내 뜻대로 안 되는 내 마음이

큰 일인 줄 알고

씩씩대며 나왔는데,

다른 우주들을 보면

또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아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던

커다란 마음을 찌그러트려

바람을 훅 빼버립니다.


다시 가벼워져요.

광대한 우주의 가벼운 먼지가 되어

가볍게 아이의 우주를 바라보면

아까보다는 훨씬 괜찮아요.


누가 날 괴롭히든,

누구 때문에 마음이 심란하든,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되면

낯선 이들이 북적한 곳으로 가보세요.


사람은 많지만 아는 사람은 없는 곳.

그곳에 앉아

혼자만의 우주를 느껴보세요.


모두 힘들게 각자의 대폭발을 겪고 있는 사람들,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

그들 각자의 우주를

가만히 상상해 보세요.


우르릉 쾅쾅 폭발해

터져 버릴 것 같았던 나의 우주가

그저 귀여워 보일지도 몰라요.


사실 우리 모두는

그 귀여운 우주에 살고 있는

귀여운 먼지 들일뿐.

귀엽게 웃으며

속상한 마음 밀어내 버려요.


그렇게 소란 속에 고요하게 앉아 있다

비눗방울을 퐁 깨뜨리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루 종일 온라인 수업을 했을 아이에게

맛있는 저녁을 차려…

아니, 배달시켜 줍니다.

숟가락을 맞대고 떡볶이를 맛있게 먹지만,

돌아서는 순간 아이는

저만의 우주로 들어갈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며

크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섭니다.


저 귀여운 우주에서

큰일이 일어나 봤자

얼마나 큰 일이겠습니까.

그저 귀엽기만 할 거라고

정신 승리합니다.


그리고 나의 우주에서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귀여운 일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매일

귀엽게 보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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