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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Apr 05. 2022

잊지 못할 결혼식 사고





예쁜 아가씨가 아빠의 손을 잡고 서 있다.


손에는 아담한 꽃다발도 하나 들고.


그렇게 서서 음악을 기다리고 있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수백 개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미 입장 명령은 떨어졌는데 계속 기다릴 수도 없고, 어쩐다.


몰라, 그냥 간다. 출발.


내가 발걸음을 떼자 아빠도 같이 움직인다. 한두 발짝 걷다 보면 음악이 나오겠지.


아 어떡해. 음악 왜 안 나와. 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다.


안타까운 눈동자들이 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결국 가슴팍에 꽃 한 송이 꽂고 그보다 더 환하게 웃는 그 앞에 도착할 때까지,


음악은 나오지 않았다.




음악도 없이 입장하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망했다고?


세상에 한 번뿐인 날, 이래도 되는 거냐고?


아니, 괜찮았다.




음악이 없어도 내가 충분히 멋지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빛나고 있으니 상관없었다.  


드레스가 얼마나 예뻤는지. 얼굴은 또 얼마나 환했는지!


그러니 배경 음악 좀 없으면 어때.




그때 나왔어야 했던 노래가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평범한 행진곡은 아니었고, 꽃을 꽂고 기다리던 그가 직접 만든 노래였을 것이다.


식을 마치고 행진을 할 때는 다행히 원했던 음악이 나왔다.


역시 그가 만든 노래였다.


웅장한 음악에 맞춰 신나게 퇴장했다.


그리고 결혼 생활로 입장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의 빛이 조금씩 바래는 것 같을 때, 내가 더 이상 빛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낄 때,


그때의 당당했던 나를 생각한다.


배경 음악 없이도 충분히 빛났던 나를 떠올리면 마음속에 꺼지려던 빛이 또 살짝 켜진다.



시간이 또 많이 흘러,


이제 그 빛이 쉽게 켜지지 않기도 하는데, 어쩌면 그래서 흰머리가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흰머리가 앞머리부터 우수수 돋아나 정수리를 빛내기 시작했다.


풉, 그래서 나는 여전히 빛난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그때도 지금도, 빛은 나니 상관없다.




참, 남편은 그때 우리가 틀려고 했던 음악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고 있을까?


그 역시 기억 못 한다에, 만 원 건다. 오늘 퇴근하면 물어봐야지. ㅋ






Photo by Tom The Photograph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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