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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Jun 14. 2022

글, 어떻게 써요?

저는 이렇게 씁니다



글, 어떻게 쓰냐고요? 

제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 한 번 이야기해 볼게요. 


일기 쓰기로 글쓰기를 시작해서 그런지 저는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편입니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을 막 다 써요. 다 쓰고 나면, 아니 뭐 이런 쓰레기가! 싶죠. 막 소리가 나게 종이를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던지는데 골인은 되지 않고 바닥에 구겨진 종이 뭉치만 쌓이는 그런 올드한 광경은 아니고, 한심한 표정으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릴 듯 앉아 백스페이스를 하염없이 누르는 그런 모습이랄까요. 누를 게 너무 많으면 과감하게 나가기를 누릅니다. 저장할래? 물으면, 아니! 이걸 왜! 하면서 단칼에 삭제해 버리는, 그런 21세기 적 광경입니다. 어쨌든 구겨서 버릴만한 그 글에서 가끔 운이 좋으면, 내 마음에 딱 걸리는 단어나 문장을 발견합니다. 그 한 단어, 한 문장만 건져도 돼요. 그게 바로 글감이고 그걸 따로 떼어놓고 묵히다 보면 그 주위로 몽글몽글 글이 피어나거든요. 묵히는 시간은 글감의 난이도에 따라 다르겠고요.


자, 의식의 흐름대로 뱉어놓은 글이 그 정도의 쓰레기는 아닐 수도 물론 있지요. 잡초를 치고 물을 주면 한 편의 글이 될 것도 같다면 말입니다. 이제부터 손을 보기 시작하는데요. 의식의 흐름대로 썼기 때문에 글 자체가 말이 안 돼요. 앞에서는 이게 좋다고 했는데, 뒤에서는 또 그게 싫다고 해요. 물론 내 머릿속에는 두 가지 감정이 모두 있기에 그렇게 쓸 수 있지만, 이걸 편지나 글로 쓰려면 남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럼, 선택을 해요. 


여기서 이게 좋다는 이야기만 할까? 그럼 좋은 점에 대해서 더 말을 하자. 


아니면 싫다는 이야기만 할까? 그래, 그게 왜 싫은지 성토대회를 하자. 


아니, 두 가지 마음을 다 이야기하자. 그럼 두 가지 마음이 다 드는 이유를 아주 잘 설명해야 할 거야.


이렇게 말이에요. 그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 선택한 것을 중심으로 내용에 위배되는 문장들을 지우는 거죠. 필요한 문장을 덧붙이고요. 앞 문장과 뒷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말이 되는지 찬찬히 살펴요. 물론 지우는 문장도 내 마음에서 나온 문장이니 거짓은 아니에요. 다만 지금 이 글에 어울리지 않는 거죠. 그건 나중에 다른 글에서 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죠. 그렇게 대충 흐름이 잡히면, 또 한 번 묵혀요. 다음 날 다른 정신으로 살펴보면 꼭 구멍이 하나씩 보이거든요. 그렇게 나도 모르게 숭숭 뚫어놓았던 구멍을 하나씩 메꿔 가다 보면, 그나마 읽을 만한 글이 완성되지요. 


물론 모든 글을 의식의 흐름대로 쓰기 시작하는 건 아니랍니다. 글감 노트도 활용합니다. 우리는 항상 생각을 하잖아요. 내가 하려고 하지 않아도 우리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가요. 책을 읽다가, 운전을 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나 장면, 문장 같은 것들을 우선 메모해요. 메모 앱도 좋고 음성 녹음도 좋아요. 그리고 종종 메모를 들춰보며 키워드에 머릿속으로 살을 붙여요. 그래, 그때 그랬지. 근데 왜 그랬을까? 만약 그때 이렇게 하지 않고 저렇게 했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그 상상이 지금 나의 현재와 연결되거나 어제 본 책이나 드라마, 오늘 내가 지나치는 장소들과 겹치는 것들이 생겨요. 머릿속 전혀 다른 곳에서 굴러다니고 있던 에피소드와 찰떡처럼 연결되기도 하고요.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기도 해요. 앞 페이지에 적어 놓은 글감과 묘하게 겹치기도 하고요. 그렇게 관련 있는 것들이 줄줄이 엮여 큰 덩어리가 되면 한 편의 글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죠. 하지만 덩어리는 덩어리일 뿐, 그 덩어리를 조물조물 다듬어야 결국 다른 사람도 읽을 수 있는 글이 되고요.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나요? 

그럼 이렇게 해보세요. 

 

첫째, 우선 백지를 열어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세요. 모닝 페이지 쓰듯, 일기장에 하소연하듯 써보세요. 쓸 수 있는 만큼 쓴 다음 그중에서 한 문장만 건져 글감 노트에 적어놓고 며칠 묵혀 보세요. 몇 달도 괜찮아요. 심지어 해가 넘어간 다음 마침내 빛을 보는 글감도 있답니다. 그러니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차분하게요. 글감 노트는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나만의 재산이니까요. 모아 놓은 글감이 말라비틀어진 씨처럼 어떤 글로도 피어나지 못할 것 같아도 종종 눈길을 주며 머릿속에 마음속에 한 번씩 담갔다 꺼내면, 내가 변하고 내 생각이 변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활짝 피어날 때가 반드시 올 거예요. 


둘째, 나가서 돈을 써 보세요. 커피를 마셔보세요. 차이 라테도 좋고요. 그럼 어느 정도 개발새발 초고는 쓰게 됩니다. 정말요? 네, 저는 그래요. 백색 소음이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과학적 근거도 있고요. 지출한 돈이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저의 경험 법칙도 있답니다. 카페에 일단 앉으면 화장실 갈 때 빼고 일어날 일이 없기 때문이에요. 집에서는 쌩둥 맞은 일들을 잘도 하거든요. 일을 하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책장에 잘 꽂혀 있는 책들의 위치를 색깔별로 정리한다거나, 갑자기 눈썹을 그리고 아이라인을 그려본다거나, 살이 얼마나 빠졌나 옷걸이에 걸린 바지를 죄다 입어본다거나 뭐 그런, 글 쓰다 하기에는 황당한 일들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황당한 일을 하면 절대 안 되는 날, 급하게 와다다 달려야 하는 날이면 반드시 밖으로 나갑니다. 그래서 마감이 다가오면 카페 지출이 확 늘어나지요. 점심 먹고 설거지할 시간도 아껴야 하니까 밥도 사 먹고요. 돈을 쓴 만큼 생산력이 올라갑니다. 돈을 인풋 한 만큼 글을 아웃풋 하고 싶으니까요.


셋째,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펼쳐 필사를 해 보세요. 필사하라는 말은 많이들 하잖아요. 여기서 특별한 건, 그 이유랍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는 건, 그 작가의 무엇과 내 안의 무엇이 잘 보이지 않는 선으로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는 뜻일 거예요. 그러니 그 작가의 글이 내 안에 숨어 있는 것을 건드려 줄 가능성도 커지는 거죠.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필사하다 보면 내 안에 있는 것이 꿈틀꿈틀 깨어나기도 하더라고요. 근데 그걸 아주 잘 느껴야 해요. 보통 크게 꿈틀거리지 않거든요. 내 뇌 한 구석에서 어떤 스파크가 일고 있는지, 내 마음속 998번째 문이 열릴락 말락 하는지는 예민하게 알아채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가 있거든요. 내가 지금 읽고 베끼는 이 문장이 오른쪽 눈에서 왼쪽 눈으로 KTX의 속도만큼 빠르게 지나가 버리지 않고, 삼십 분에 한 번씩 동네 작은 역마다 멈추는 비둘기호처럼 (예전에는 그런 기차가 있었답니다 ㅋ)  눈으로 들어가 머리를 한 바퀴 돌고 목을 타고 가슴으로 내려가 마음속 문을 다 한 번씩 다 두드려 보고 다시 손가락 끝으로 나올 수 있도록, 천천히 읽어야 해요. 그렇게 천천히 읽고 쓰다 보면, 클릭! 하는 순간이 와요. 내가 이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드디어 알을 깨고 나오는 거죠. 내 안에서 나왔으니 나만의 글이기도 할 테고요. 안 오면? 오늘은 그 책이 아닌가 봐요. 다른 책을 펼쳐봐요. 그래도 안 오면? 오늘은 어쨌든 오지 않으려나 봐요. 내일 다시! ㅋ 


자, 글을 잘 쓰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내 안에 있는 걸 글로 꺼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는 이미 무궁무진한 글감들이 있거든요. 그걸 꺼내기만 하면 돼요. 그런데 어떻게? 


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야 해요. 


의식의 흐름대로 쏟아져 나오는 글이 너무 생경하지 않게요. 어차피 내가 평소에 하는 생각, 평소에 하는 고민들이 쏟아져 나올 텐데, 그런 것들에 익숙해야 더 잘 가지고 놀 수 있거든요. 여기서 가지고 노는 건 결국 나의 마음이고요. 그러니 평소에도 나를 잘 살펴야 해요. 그러면서 들고 나는 생각들을 민감하게 잘 낚아채야 해요. 머릿속에 지나가는 수많은 장면과 단어와 생각과 상상들을 낚시터에서 갓 잡아 올린 물고기를 낚아채 달아나는 고양이처럼 확 채낼 수 있어야 해요. 일단 채냈다면 우선 글감 노트에 모아 놓아요. 어디에 숨어 그 맛있는 물고기를 먹을지는 천천히 생각해도 돼요. 물론 너무 늦어 물고기가 상해버리면 안 되겠지요. 막 잡아먹는 물고기가 맛있듯, 글도 지금 쓸 수 있는 글이 더 생생하거든요. 언제 읽어도 좋은 고전 역시 필요하고 훌륭하지만, 지금 팔딱이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글이 읽는 이의 마음도 함께 팔딱이게 만들 수 있거든요. 



자, 이게 저의 글 쓰는 방법이랍니다. 



지금까지 차이 라테 한 잔을 마시며 이 글의 초고를 썼습니다. 차이 라테 가격만큼의 아웃풋은 했길 바라며 저는 이 글을 묵혔다 내일 다시 열어볼 겁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쓰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리는 퇴고가 시작되죠! 


그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Photo by Art Lasovsk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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