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 손님이 온다
반갑게 인사를 한다
편히 둘러보고 마음껏 읽으시라고 말한다.
손님들이 책장 앞을 거닐다가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원하는 자리에 앉는다.
각자 고른 책을 읽기 시작한다.
고요하게.
잔잔한 피아노 선율 아래서 각자 고른 자기만의 세상으로 뚜벅뚜벅.
보이지 않는 고요를 양 어깨에 걸치고 소리도 나지 않는 발걸음으로 뚜벅뚜벅.
유튜브 전성시대에도 한 시간 넘게 말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앉은자리에서 한 권을 뚝딱 읽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고, 책을 읽는다는 공통점 하나로 어쩌면 낯설지도 모르는 좁은 공간의 침묵을 애써 몰아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감사하다.
책방을 꾸며놓으니 나 역시 책을 더 많이 읽게 되는 건 당연지사. 혼자서도 읽고 손님이 오면 덩달아 또 읽는다. 집에서는 릴스와 쇼츠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만 책방에서 나는 더 단단한 사람이 된다. 더 단단해져서 조금 무거워졌고 그래서 붕 떠 있던 하늘에서 조금씩 내려온다. 어쩌다 오게 된 이 성글고 낯선 도시에 조금도 섞이지 못하는 느낌이 오래였는데 이제야 두 발이 땅에 닿은 것 같다. 둥둥 떠 있다가 어디로든 날아가 버리고 싶었던 나를 내가 꾸린 작은 공간이 살포시 끌어내려 발 딛게 해 준다.
다 읽은 책과 읽어야 할 책과 읽고 싶은 책과 영 손이 가지 않는 책과 읽다 만 책과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과 수명이 다한 책과 앞으로 세상에 태어날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그리고 함께 그 책들을 탐험하는 다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제야 나는 조금 숨이 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