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 오면 마음먹지 않아도 하게 되는 일이 있다.
바로 시를 필사하는 일.
함께 시를 필사하는 동무들이 있는데 일주일에 세 편 올라오는 시를 잠시 앉아 필사하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며칠씩 밀린다. 그럴수록 간혹 반가운 수다가 이어지는 단톡방에서는 조용히 입을 다물게 되고.
그런데 책방에 출근해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급한 일들을 얼추 마무리하고
손님들과 안부도 묻고
새로 오신 손님에게 환영 인사도 하고
다시 책방이 고요해지면
딱 그때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책장 넘기는 소리만 음악에 실려 넘실거릴 때.
오늘의 시는 안희연 시인의 ‘긍휼의 뜻’
길기도 하다. 두 연쯤 쓰다가 괜히 딴짓이 하고 싶어 고개를 들어 본다.
오늘 책방 손님은 세 명.
편한 의자에 앉아 안경을 코에 건 손님이 읽는 책은 은희경의 <새의 선물>
조호바루에 온 지 일주일 되었다는, 모자를 쓴 손님이 읽는 책은 전경린의 <엄마의 집>
그리고 오늘 가장 먼저 와 가장 오래 책을 읽는 손님 앞에는 <소로의 문장들>과 <동네서점 베스트 컬렉션> 중 은희경 작가님 편.
오, 오늘은 모두 소설. 그중에서도 은 작가님이 인기가 많네.
가끔 손님들과 수다도 떨지만 대부분은 이렇게 조용히 책 읽는 분위기인데,
말없이 책 읽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참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구나.
그리고 책이 정말 필요했던 사람들이구나.
그렇다면 아리책방 최고 ㅋㅋ
그런데 혹시 수다 떨고 싶어도 너무 조용해 다들 주저하고 있는 건, 설마 아니겠지?
그렇게 뭉게뭉게 손님들을 관찰하다가 다시 긴 시를 마무리하기 위해 펜을 든다.
아, 벌써 팔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