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 Mar 07. 2024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미국 최고의 시인이라고 일컬어지는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을 읽었어. 첫 장에서 그가 말하길, 우리에게는 적어도 세 개의 자아가 있대. 첫 번째는 늘 우리와 함께하는 과거의 어린아이. 과거의 아이지만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무덤에도 함께 갈 첫 번째 자아.


그리고 두 번째는 시곗바늘처럼 째깍째깍, 규칙적이고 평범한 하루를 주도하는 자아. 우리의 일상을 돌보는 자아. 국을 끓이다 몽상에 빠져 냄비를 태우지 않게 하고, 아이를 데리러 가다가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산에 오르지 않게 하는 자아.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사랑하고, 오늘과 똑같은 내일을 계획하는 자아. 두 번째 자아 덕분에 우리는 이렇게 평범한 날들을 보내고 있지. 


물론 늘 똑같은 생활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지루하기도 하지. 어느 날은 앞면이 보이고 어느 날은 뒷면이 보이는 동전처럼, 아름다웠다가 지루하기가 반복돼. 지루한 면이 계속 나올 때 우리는 자기만의 다양한 방법으로 평범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려 하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맛집 나들이를 나선다거나, 벼르고 벼르던 화구 세트를 큰 마음먹고 장만한다거나, 평범함과 규칙성을 벗어던질 수 있는 미지의 장소로,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은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하지.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처음 보는 사람들과 낯선 관습의 땅으로. 너무 비대해져 버린 두 번째 자아를 잠시 재우기 위해.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떠나서 우리가 하는 일이 뭘까? 떠나온 곳과 최대한 비슷한 모습을 고수하려고 노력하는 거야. 집에서만큼 안락하길, 집에서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 얻을 수 있길 바라는 거지. 내가 누렸던 일상의 모습이 떠나온 곳에서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길 바라지. 완벽한 낯섦은 어쩐지 두려우니까.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도 평범한 일상의 규칙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해. 낯선 도시에서 한 달을 살아보겠다고 떠나면서도 커다란 캐리어에 익숙한 먹거리를 가득 채워가지. 일상의 귀퉁이를 접어 가지고 가 그 낯선 곳에 살짝은 펼쳐 놓아야 안심이 되거든. 그래서 낯선 탐험을 마치고 낯선 숙소로 돌아와 햇반을 돌리고 즉석국을 데워 밥을 먹지. 나도 서울에 오자마자 그 평범한 일상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했어. 집에서 먹던 잡곡과 현미를 사고 약국에 들러 아침마다 먹던 약들을 사서 내 키보다 작은 냉장고 위에 가지런히 진열했지. 낯선 곳에서 눈을 뜨지만 아침 일상은 그대로 지키고 싶어서. 낯선 곳에서도 힘을 발휘하는 두 번째 자아의 역할이지.  


그렇다면 세 번째는 어떤 자아일까? 과거와도 상관없고 일상과도 상관없는 자아. 가끔 찾아와 우리를 뒤흔들어 놓거나 둥실 띄워버리는 자아. 평범한 일상보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갈망하는 자아. 창조적이고 예술적이고 지적인 자아. 잠자코 있다가 갑자기 등장해 뜬금없는 산책과 충동구매와 여행을 부추기는 자아. 현실의 무게를 훨훨 벗어버리고 가볍게 날아오르다가 또 갑자기 떨어져 발밑으로 숨어버리는 자아. 평범한 하루의 틈새에 찾아와 나를 뒤흔들며 내 꿈이 어디까지 가닿았나 확인해 보는 자아.


낯선 곳으로 떠나면서도 일상성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여행은 세 번째 자아를 불러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어쩌면 지금 서울을 여행 중이야. 하지만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야 혼자 낯선 카페에 들어섰어. 그동안 잠자고 있던 세 번째 자아가 드디어 기지개를 켤 수 있게 된 거지. 프렌치토스트와 카페라테를 시켰어. 경쾌한 캐럴이 깔끔한 공간에 가득 차 있어. 하지만 나는 아직 경계에 있어. 일을 내려놓지 못하는 두 번째 자아가 낯선 공간이 주는 에너지를 흡수하지 못하고 바짝 긴장해 있거든. 닥쳐오는 마감 때문에 몹시 강해진 상태로 말이야. 낯섦이 일상을 이겨내지 못하는 그럴 때는 조금 더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지. 그래서 노트북을 닫고 나가 걸었어. 근처에 있다는 한강을 향해. 서울에 온 지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가보지 못한 그곳을 향해.  


걸으니 얼마나 좋던지. 도시 산책자 플라뇌르가 된 느낌이었어. 내가 살던 조호바루에는 인도가 없어서 걸을 수 없다고 얼마나 투덜거렸는지 몰라. 그랬는데 끝없이 이어진 서울의 길을 걷고 있으니 이게 바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어. 살아 숨 쉬는 생태계. 끝없이 걸을 수 있는 축복의 미로. 하지만 차만 타고 다니던 나의 허리는 생각보다 연약했어. 조금 걸었다고 그새 아우성을 치네. 하지만 한강이 바로 저기 있을 텐데 멈출 수는 없지.  


드디어 저녁 어스름에 갈대가 낭창낭창 춤을 추고 있는 강가에 다다랐어. 아,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지 뭐야. 아니, 왜? 내가 운 게 아니라 몇 주만에 처음 만난 세 번째 자아의 눈물이었을 거야. 오기 전부터 바짝 긴장해 있던 두 번째 자아를 드디어 잠재우고 세 번째 자아가 빼꼼 고개를 내민 거지. 그렇게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힌 해야 할 일들을 잠시 잊고 반짝이는 강물을 듬뿍 바라보았어. 햇살을 받은 물결이 출렁출렁 춤을 추며 가슴팍으로 달려와 안겨. 그 빛나는 물결과 나란히 한참을 걸었어. 다시 허리가 신호를 보낼 때 마침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에 닿았어. 창조적이고 예술적이고 지적인 순간까지 다다르진 못했지만 세 번째 자아가 잠시 나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만해졌어. 언젠가 그 모든 순간들이 쌓여 나를 어디론가 데리고 갈 거거든. 내가 할 일은 의외의 순간에 튀어나오는 그 세 번째 자아를 잘 기다리는 것뿐. 너무 나오지 않으면 나올 수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뿐.  


강을 뒤로하고 방향을 꺾어 어두워지는 도심으로 들어가면서 두 번째 자아가 다시 평범한 일상에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어. 시장에 들러 반찬을 사고 비상식량으로 구운 계란도 사고 약국에 들러 감기약도 한 포 샀어. 집에 와서는 건조한 날씨에 바짝 마른빨래를 개키고 그새 익숙해진 낯선 집의 식탁에 앉아 야물야물 밥을 먹었어. 곧 아이가 돌아오겠지. 아이에게 따뜻한 밥을 챙겨 먹이고 나도 두 번째 자아와 함께 잠이 들겠지. 밤이 되어 하루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할 그즈음 세 번째 자아는 벌써 깊이 잠든 후일 거야. 


하지만 침대에 누우며 세 번째 자아에게 가만히 약속해. 내일 다시 만나자고. 어느 틈에라도 잠깐 만나자고. 구름에 삐쭉 고개를 내미는 햇살처럼 시장 가는 길에 잠깐, 커피 마신 후에 잠깐, 친구를 기다리는 골목 어귀에서 또 잠깐 만나자고. 한강이 아니어도 그렇게 잠깐 만나자고. 


당신의 세 번째 자아에게도 살짝 말해봐. 내일 만나자고. 아니, 오늘이면 더 좋다고. 세 번째 자아가 오랫동안 잠만 자고 있다면, 우선 깨워야겠네? 어떻게 깨우냐고? 그건 당신밖에 모르지. 어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오직 당신만 알겠지. 혹시 모른다면 말이야. 늘 지나가기만 하던 공원 벤치에 잠시 앉아보는 건 어때? 아니면 늘 버스 타고 다니던 길을 한 번 걸어보던가. 캐러멜차이라테 같은 새로운 음료를 마셔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서 잠시 기다려야 해. 두 번째 자아가 눈치를 채고 살짝 물러나 줄 때까지. 세 번째 자아는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거든. 두 번째 자아가 살짝 물러나 주면 그제야 반가워하며 나올 거야. 오래 함께 놀지는 못하더라도 그렇게 잠깐씩 만나 눈도장을 찍어 놓아야 해. 그래야 마침내 마음 놓고 데려와 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허락되었을 때, 당신의 세 번째 자아도 신나게 놀 준비가 되어 있을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삶이 막막할 때 펼쳐보면 좋을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