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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 Sep 01. 2019

한낮의 요리

조호바루에서 보내는 편지 


무더운 일요일 아침,

해가 쨍한 하늘을 보며 서둘러 세탁기를 돌렸습니다.

바나나 하나로 아침을 때우고 고양이 밥을 주고 외출 준비를 마쳤지요.

커피 한 잔 마시며 덜덜덜 탈수하는 세탁기가 잠잠해지길 기다려요.

세탁이 다 되었다는 경쾌한 소리에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뜨거운 햇살에 빨래를 널었습니다.

샤워한 지 한 시간도 안되었는데 벌써 이마에 땀이 흘러요.

뜨거운 햇살 아래 알록달록 빨래를 보기 좋게 널어놓고 집 앞 카페로 갑니다.


일요일은 식구들 각자의 일정이 있는 날이라 혼자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거든요.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왔지만 해야 하는 일은 평일로 미루고 나른한 시간을 보내요

다이어리를 정리하거나 오래간만에 일기를 쓰고 다음 주 계획도 세워보고요.

아무 생각 없이 창밖만 바라봐도 좋지요.


일요일 오전은 카페도 가족 단위로 시끌벅적합니다. 그 소란한 틈에 옆 테이블 손님들이 몇 번씩 바뀌도록 혼자 앉아 있기도 하고, 괜히 한 시간 만에 엉덩이가 들썩해 집에 가고 싶은 날도 있어요.  


오늘은 후자, 웬일인지 요리가 하고 싶었습니다. 어제 장을 봐온 재료들이 냉장고에서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요.


서둘러 집에 와서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통통하고 예쁜 가지를 먹기 좋은 크기고  자르고 뜨거운 김으로 쪄 간장과 참기름, 마늘을 넣어 무쳤어요. 특별히 고추도 하나 썰어 넣고요.

한국에서 가져온 김자반을 간장과 물 넉넉히 부어 힘을 빼 준 다음 또 참기름과 깨를 넣고 조물조물 무쳤어요.

역시 한국에서 공수한 멸치를 특별히 아몬드까지 넣고 고추장 간장 섞어 달달 볶아 솔솔 깨를 뿌렸지요.

간편하게 밥 비벼먹을 수 있도록 양파와 마늘, 고추를 넉넉하게 썰어 넣은 양념장도 듬뿍 만들어 놓았고요.



자르고 삶고 무치고 볶는 동안 한낮의 열기에 가슴골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져요. 오래 운동을 쉬었더니 요리하면서 흘리는 땀도 썩 기분이 좋네요.


한 시간도 안돼 뚝딱 만든 반찬들을 두고 배도 고프지 않은데 흰 밥을 한 그릇 퍼서 앉았습니다. 열어놓은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꼭꼭 씹어 먹었어요. 나뭇잎 사그락 거리는 소리와 조심스럽게 달그락거리는 숟가락 젓가락 소리만 집안을 채웁니다. 고양이도 낮잠을 자느라 조용하고요.


배가 든든해지니 마음도 든든해졌네요. 가족들은 아직 소식이 없어요.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맛있는 밥을 먹여야겠어요.


열대의 오후가 또 이렇게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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