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을 달리면 말라카에 도착하지

도대체 말라카가 왜 그렇게 좋아?

by 아리




첫 번째 말라카 여행은 세 가족이 함께였다.

페낭에서 쿠알라룸푸르를 거친 마지막 여행지가 말라카였다. 이미 말레이시아 곳곳을 먼저 여행한 남편이 가이드처럼 맛집으로, 박물관으로 아이와 나를 데리고 다녔고 우리는 소풍 나온 유치원생 마냥 남편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말라카의 상징과도 같아진 화려하고 시끄러운 트라이시클을 피해 요리조리 걸었고, 언덕 위 세인트폴 교회에서 멀리 바다를 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단체 여행객 틈에 몰래 붙어 가이드의 설명을 몇 자락 훔쳐 듣기도 했다. 북적북적한 야시장에서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온갖 잡동사니를 구경했고, 다리 위에서 강변을 잠깐 내려다보다가 싱글 침대 세 개로 꽉 차는 방에서 잠을 청했다. 그렇게 1박 일정을 마치고 다음날 조호바루로 돌아왔다.


그런데 말라카를 떠나며 뭔가 아쉬웠다.

'분명 이게 다가 아닐 것 같은데! 그래, 강변 산책도 못했잖아! 분위기 좋은 카페는 거기 다 있었던 것 같아!'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 아이의 방학을 맞아 둘이 짧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말라카 어때?" 내가 물었다.


"좋아!" 딸이 대답했고, 옆에서 남편이 거들었다.


"말라카 또 가게? 갔다 왔잖아!"


"아무래도 몇 박은 더 해봐야겠어. 거의 못 봤잖아."


"말라카는 그게 다야!" 남편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어쨌든, 가고 싶은 두 사람은 다시 말라카로 떠났다.


차를 타고 세 시간을 달려 호텔에 짐을 풀었다. 숙소를 아예 강변으로 잡았다. 아침 먹고 바로 강변을 산책할 수 있는 곳, 저녁에 강변에서 맥주 한 잔 하고 바로 숙소로 들어갈 수 있는 곳, 작지만 수영장도 있는 곳이었다. 새로 단장한 호텔은 깔끔했다. 짐을 부리자마자 호텔 뒷문으로 나가 강변을 산책했다.


큼큼한 냄새가 풍겼고, 낮이라 황톳빛 강물 색이 그대로 드러났지만, 처음 온 듯 설렜다. 강변의 식당들을 구경하다 목 좋은 곳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남편 말대로 딱히 할 일이 없어서 크루즈도 탔다. 배가 속도를 높이자 똥물이 얼굴로 달려들었고, 해는 기울어져 가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마지막 열기를 내뿜었다. 똥물 피하랴 그늘 찾으랴 분주하고 더웠지만 그래도 괜히 좋았다. 배에서 내려 다시 언덕 위의 세인트폴 교회로 올라갔다. 새로운 곳이라는 설렘 대신 한번 와본 자들의 여유를 걸치고 더위를 헤치며 걸었다. 밤에는 역시, 야시장. 첫 번째보다 더 꼼꼼히 구경했고 왕새우와 홍합 볶음밥, 조개 요리도 푸짐하게 먹고 배를 두드리며 어슬렁어슬렁 호텔로 돌아왔다. 이번 일정은 심지어 3박이었다. 말레이 전통 가옥 내부를 볼 수 있는 바바뇨나 박물관도 구경했고 카페에서 한가롭게 나는 일을, 아이는 숙제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에 한두 군데씩, 그 작은 말라카를 천천히 걸었다.





"말라카 좋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내가 말했다.


"응, 정말 좋다."


"그런데 넌 왜 좋아?"


"몰라, 그냥 좋아."


"사실, 엄마도 그래."


그리고 세 시간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간의 짧은 방학을 알차게 보낸 듯 뿌듯했다.







그리고 또 다음 방학, 말라카 병 또 도졌다.


"딸, 또 방학이네? 말라카 갈까?"


"그래!"



세 번째 말라카 여행은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현지인들의 동네에 에어비앤비 숙소를 구했다. 말레이 전통 가옥들이 오래된 냄새를 풍기며 서 있는 곳이었다. 조호바루와도 달랐고, 지금까지의 믈라카와도 다른 색다른 풍경이었다. 숙소에서 대여해 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았다. 시끌벅적 트라이시클도 없고, 네덜란드 광장의 인파도 없는 조용한 동네였다. 느릿느릿 자전거를 타거나 털털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볼일을 보러 다니는 동네 주민들만 간혹 나타났다 사라졌다.


숙소에서 말라카 시내까지는 걸어서 십오 분 정도였다. 땀을 흘리며 걸어 나갔다가, 음, 다 그대로 잘 있군. 하는 표정으로 익숙해진 거리를 거닐었다. 그러다 더우면 H&M 매장에 참새처럼 들러 사지도 않을 옷과 액세서리들을 구경하며 더위를 식혔다. (말라카의 H&M은 얼마나 자리가 좋은지, 옷을 팔기보다 관광객들에게 에어컨 바람을 제공하기 위한 매장임이 틀림없다.)




한가롭고 좋았다. 저녁을 먹고 어두워진 골목길을 오래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시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믈라카로 빨려 드는 듯, 중심가를 벗어나면 사위는 갑자기 어두워졌다. 집에 가려면 폐허가 된 네덜란드 무덤 터를 지나야 했다. 관광지가 아니라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듯했지만 이름과 생몰연도가 적힌 비석이 정말 무덤이었음을 알려주었다. 심지어 어떤 무덤은 열려 있다! 무서워, 전설의 고향 같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는 벌벌 떨면서도 뻥 뚫린 무덤 속에 뭐가 있는지 기어코 보고 나왔다. 어둠을 헤치고 깔끔한 숙소로 돌아와 달게 잤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라카가 왜 그렇게 좋을까?


첫째, 예술적이다.

화려한 벽화들이 강변에 즐비하다. 주제도, 스타일도 다른 알록달록 그림들이 황톳물 강변으로 기꺼이 내려가 맥주병을 따게 만든다.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들도 많다.


둘째, 낭만이 있다.

벽화들을 구경하며 아침 산책을 하는 강변, 밤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시끌벅적 변하는 강변에는 그래서 낭만이 있다. 해가 저문 자리에 화려한 불빛이 들어서고, 강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퀴퀴한 냄새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맥주는 미지근하고 감자튀김은 눅눅해도 너그러워지는 낭만이 말라카엔 있다.


셋째, 아담하다.

그래서 걷는 여행이 가능하다. 복잡한 지도도, 탈것도 고민할 필요 없이 튼튼한 두 다리로 걷기만 하면 된다.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이라 걸어도 지겹지 않다. 사실 말라카는 쿠알라룸푸르나 조호바루에서 반나절 뚝딱 둘러보고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좋은 것들이 더 많이 보인다. 현지인들이 가는 국숫집도, 아기자기한 가게들도 걸어야 더 잘 보인다.


넷째, 시장이 있다.

역시 여행의 백미는 시장. 그리고 시장에서 쓸데없고 예쁜 것들을 사는 재미다. 오로지 그 유명한 야시장을 보기 위해 말라카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 시장 한쪽에서는 해산물도 즉석에서 구워준다. 생 망고가 듬뿍 올라간 망고 주스, 시원하게 주스를 마시고 과육도 뜯어먹는 코코넛도 맛나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떠밀려 다니지만 그래도 흥겹다.


다섯째, 역사가 있다.

말라카를 지배했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건축 양식, 그 시절의 요새와 성곽, 대포도 여전히 남아 있다. 연이은 침략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성당 터에서 옛 모습을 상상해보는 재미도 있다. 저 멀리 유럽에서 여기까지 와 결국 이곳에 묻힌 사람들도 상상해본다. 아이와 함께 찾았던 바바뇨나 박물관은 옛날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말레이시아 유스 박물관 Malaysia Youth Museum에 들러 말라카의 역사도 훑었다. 16세기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일본으로 이어졌던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는 한국의 식민지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도 이어졌다.






세 번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남편이 진지하게 물었다. "좋았어? 도대체 말라카가 왜 좋아?"


내가 대답했다. "응, 이제 다 갔어. 더 이상 안 가도 될 것 같아."


딸도 거들었다. "맞아. 이제 충분해."



그렇게 그녀들의 취향은 일단 마무리되었.... 을까?





"어, 딸 곧 방학이네! 말라카 갈까?"


"음, 글쎄?" 아이의 대답이 변했다. "뭐, 말라카도 괜찮긴 한데 다른 데는 없나?"


"그래, 좀 지겹지?"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그래도 잠시 콧바람이 쐬고 싶을 때,

세 시간을 달려 말라카에 갈 것 같다.


내 취향의 도시가 가까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꽤 위안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