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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Apr 10. 2022

17. 기타등등 합니다

이름표, 마이크, 케이크 칼, 샴페인 잔 그리고 웨딩케이크

 자유로운 프리랜서(라고쓰고 아르바이트라고 읽는다)의 시간은 가고 이제 단기계약직의 시간이 오고 있습니다. 5월부터 7월까지 3개월 간 계약하게 될 텐데, 백화점처럼 스케줄로 근무하는 데다 웨딩이 있는 주말은 쉬지 못하기 때문에 근무 일정은 조금 더 빡빡해질 것 같아요. 이전처럼 신나게 놀러 다니는 일이 줄어들어 벌써 염려입니다. 너무 오래 놀았나 봐요.


 다행인 것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지금 조금씩 배워두고 있다는 거예요. 최근에는 기타등등을 시작했는데, 부제에 쓰여있는 이름표, 마이크, 케이크 칼, 샴페인 잔 그리고 웨딩케이크에 꽃장식을 하는 일입니다. 접수대 옆 신랑신부 이름표와 다른 곳들의 꽃장식은 만들어 둔 꽃장식을 고정하고, 리본만 메면 되는 일이지만 웨딩케이크 장식은 꽃을 가지고 웨딩케이크를 새로 꾸며야 하는 일이라 꽤나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매 결혼식마다 꽃의 주색이 달라서 그것에 맞추기도 해야 하고, 꽃과 소재를 적절히 섞어서 빠른 시간에 예쁘게 꾸민다는 게 아직 어려워요.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시간입니다. 매 웨딩을 하면서 듣고, 말하는 건 "작품 하는 게 아니야!"입니다. 방금 말한 웨딩케이크도 15분 정도면 끝낼 수 있는 일이거든요. 기타등등은 30분 정도로 끝내야 다른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대충 빨리 끝내라는 건 아니에요, 일은 일로 봐야 하고 그것만큼 중요한 일들이 많다는 겁니다. 식이 시작하기 1시간 30분 전에는 모든 양초에 불을 키는 것까지 세팅이 완료되어야 합니다. 웨딩케이크는 2부 피로연이 시작하기 전에 완성되어야 하죠. 그 사이사이 다음 웨딩을 준비해야 하고, 중간중간 앞으로 있을 웨딩 목업(Mock-up 이래요)도 있습니다. 웨딩케이크를 예쁘게 하겠다고 후방에서 40분 넘게 잡고 있으면 연회팀 동선을 막아 방해되기도 하고 플라워팀이 해야 하는 업무도 밀리게 됩니다. 때문에 중요한 게 각각의 일의 핵심을 아는 것 같아요. 기타등등은 빠르게, 웨딩케이크는 앞면만 풍성하게, 로드초나 초컵, 와인잔을 닦는 건 깨끗하게, 긴 기물 위에 올라가는 꽃꽂이는 크고 원형이되 안 보이는 윗부분은 빠르게 채우고 넘어가기 등 일마다 놓쳐서는 안 되는 핵심을 먼저 하고, 숙련이 되어 여유와 시간이 된다면 조금 더 완성도를 올리는 게 일입니다. 저는 지금 아티스트가 아니고, 이 꽃꽂이들은 작품이 아니니까요.


 그 뒤에 조심해야 할 것은 숙련이 되었을 때의 귀찮음입니다. 꽃으로는 한참 뒤의 일이겠지만 전 회사에서 일을 할 때는 종종 유혹에 빠져요. 저번에 사용한 그대로 하면 안 될까, 나 말곤 모를 텐데 대충 적으면 안 될까, 이렇게 하면 정확하진 않지만 훨씬 빠른데 등 일을 아니까 그 핵심만 채우고 넘어가고 싶은 거죠. 그럴 때마다 타고난 불안과 걱정에 도움을 받거나, 여러 경험으로 깨달은 "직진이 가장 빠르다"라는 대원칙에 기대 일합니다. 여러분들도 잘못했을 때, 실수했을 때, 놓쳤을 때,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 등등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직진하세요. 이번과 저번은 넘어가도 다음과 그다음에는 걸리게 되어있고, 이전까지의 모든 득 보다 언제나 실이 큽니다. 물론 여러분도 저처럼 똑같이 교만했다가 넘어져 구르고, 뚜드려 맞겠지만 그 과정이 조금 짧기를 기원합니다.




 이 호텔에서 일을 한지 이제 3개월쯤 돼가는 것 같아요. 웨딩이 틀이 있고, 그 틀 안에서 움직이는 거라 3개월쯤 되니 살짝 아는 것들도 생기고, 가끔은 지루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아마 단기계약직 제안을 받고,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았으면 다른 것들도 알아봤을 시기입니다. 전 회사에 있을 때도 청주에서 3년 만에 서울로 지점을 옮기고 새로운 환경에 접하지 않았다면 꽤나 지루하고 불안했을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여전히 좋은 성과를 내시는 분들을 존경합니다. 35년을 한 직장에서 근무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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