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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Apr 16. 2022

18. 발우공양 다녀왔습니다

기독교 신도(가톨릭, 개신교)와 채식주의자 셋이서

 지난번 여수/순천을 다녀온 친구들과 금요일에 조계사 앞에 있는 발우공양이라는 식당을 다녀왔습니다. 사찰음식으로는 최초로 미슐랭 1스타를 받은 식당으로 예전부터 궁금하던 차에 두 친구 중 한 명의 진급 턱을 겸하기로 했어요. 그 친구가 마침 채식 중심 식단으로 바꿔가는 중이라 더 좋았습니다. 다른 친구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아 했지만, 저희가 억지로 열린 마음을 갖자며 끌고 갔습니다. 얻어먹는 입장이니 식사 내내 미소를 계속 유지하라고도 해줬어요.


 금요일 아침엔 토요일에 꽃다발 부탁받은 게 있어 양재시장에 가서 꽃을 사 왔어요. 맨즈필드 장미 흰색을 사고 싶었는데 흰 꽃이 너무 비싸서 보니 다음날이 부활절이었습니다. 기독교 전례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 흰 꽃이 아주 비싸지더군요. 그 돈을 주고 사는 것은 주문자가 아니라 제 욕심인 것 같아서 필요한 만큼만 사서 집으로 돌아와 꽃을 정리해 두고 미리 나섰습니다. 친구 A와 먼저 만나 영화를 보기로 했거든요. 경향신문에서 보자길래 왜인가 했더니 서울아트시네마가 지난 3월 옮겨갔더군요. 레벤느망을 보고 친구 B와 합류해 현대미술관으로 간 뒤 이건희 컬렉션을 관람했습니다. 전까지는 예약이 힘들어 가보지 못했는데, 목요일부터 현장 발권 및 현장 대기로 바뀌었더군요. 예약시간인 6시까지 시간이 좀 남아 삼청동을 걸으며 영화와 전시와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발우공양은 조계사 맞은편 5층에 있습니다. 지하도 불교 서점이고 템플스테이 센터도 있으니까 아마도 조계사 건물이지 싶어요. 원식과 마음식중에 고민하다가 원식을 먹었습니다. 코스요리로 나오는데 전체적으로 간이 좋고 맛도 좋았습니다. 콩죽과 봄나물들깨찜이 기억에 남아요. 적당한 가격에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는 건너편 조계사로 짧은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다음 달 8일이 부처님오신날이라 종로 시내에도 연등이 걸려있었는데, 조계사 안쪽은 정말 장관이었어요. 아바타의 홈트리처럼 큰 나무와 색색의 연등들에 압도되었습니다. 그 뒤로 카페에 가는 김에 명동성당 지하의 카페로 가고 싶어 들렸지만, 미사도 시작했고 지하 아케이드의 카페들이 일찍 마감이라 금방 돌아 나왔습니다. 어디 갈까 고민하다가 아주 오랜만에 이태원 패션5에 갔어요. 디저트들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특히 새로 생긴 지하 1층의 커피가 맛있더라고요.


 저와 친구 B는 둘 다 꽤나 기독교인입니다. 친구 A를 향해 열심히 포교했지만 결국 A는 채식주의 쪽으로 마음이 더 갔나 봐요. 왜 채식주의인가에 대한 물음과 대답들이 이어졌지만 각자의 종교적 신념은 믿어주자고 결론 내렸습니다. 공장식 축산업과 다른 여러 이야기들이 이규가 되고, 자신이 도그마라고 선포한 것은 믿어주는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종교는 어떤 점에서는 좋은 겁니다.




 명동성당에 차를 가지고 가본 적은 처음이었어요. 지하 아케이드 전광수 커피하우스도 추천하는 장소입니다. 양재 꽃시장과 서울아트시네마와 사찰음식과 조계사, 명동성당과 패션5로 이어지는 금요일은 아주 다채롭고 좋았습니다. 저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관통하는 것 치고는 너무 널따랗고 정갈하지 않은 그 무엇인가가 가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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