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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May 04. 2022

08. 그런 말은 누구나 다 한다

제가 왜 (너에게)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죠?

 '내가 해봤는데'라는 말이 금기시되는 요즘이지만, 나는 저 도입부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경험을 중요시하고,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 성격상 저 뒤에 나오는 가득한 실전 정보들을 아주 귀담아듣는 편이다. '내 생각에는'으로 시작돼 '~하지 않을까?'로 끝나는 말들은 얼핏 자상하고 배려 깊은 듯싶지만 막상 듣다 보면 사람에 따라 아무 근거 없이 자기의 좁고 얕은 경험과 지식에 오지랖을 곁들인 경우도 많다. 도입부와도 나이와도 상관없이 내용에 따라 '-꼰-'이 된다.


 나는 사람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하고 그 사람의 지혜를 나눠가지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각 지점과 본사로 끊임없이 사람이 오고 가던 전 회사와 동아리, 학회, 각종 소모임과 지인의 지인들을 만나며 얻은, 바닥 없는 '-꼰-'들을 구별하는 작은 을 소개한다.


◾ '왜요?'하고 물어보자


길고 짧은 문장이 끝나면 왜냐고 물어봐라. 사실 이것이 내 공정의 모든 것이다. '나 때는/내가/누가 그러던데/내 생각에는'으로 시작하든 '해/네 생각은 어때?/이게 낫지/그러면 망해'로 끝나든 상대방의 말에 그 이유와 배경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예전에 안동에서 안동소주에 대해 한 분과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강한 경상도 사투리에 선언적인 말이 이어져 시작은 참 무서웠었다. '이 소주는 무조건 두부랑 먹어야 돼!'라는 말에 왜요를 덧붙였더니 증류식 소주는 어울리는 음식이 있고, 기름지기만 한 음식은 오히려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들기름에 지진 두부는 속도 편하고 적당히 풍미가 있으면서 안동 소주와 아주 궁합이 잘 맞는다는 대답이 이어졌다. 어디가 아주 맛있다는 맛집 추천은 덤으로 따라왔다. '무조건'들은 대게 얕은 경험에서 오지만, 왜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태도와 방식(경험에 기대 이유를 설명하고, 그것이 다른 것 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는 바를 명확하게 진술하는)을 보면 이 관계에서 상대방의 경험과 지혜를 나눌 만 한지, 혹은 빨리 날씨나 유튜브 얘기로 도망쳐야 할지 알 수 있다


◾ '일관성'이 있는지 느껴보자


나는 생각이나 행동이 설명 가능하다면 존중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설명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큰 일관성 내에 있다면 더욱 존중한다. 야채는 싫어하지만 피자 토핑으로는 많아야 하고, 고기를 먹을 때는 꼭  버섯을 같이 구워야 하며, 깻잎쌈은 먹고 들깨칼국수나 파김치는 좋아하지만 그래도 야채는 안 먹겠다는 친구와 12년을 만나다 보면 어떤 거대한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매번 '그냥'이라며 이유를 대는 사람도 어떤 그냥은 날씨이고 다른 그냥은 컨디션이며, 또 다른 그냥은 시리게 힘들다는 말이 그냥이 된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누군가의 말이 길어진다면 잠깐 들어보자. 왜에 대한 대답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의 말이 하나로 이어지고 문제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일관되다면 그 사람의 말은 들어볼 만하다. 시간이 갈수록 나와 비슷한 사람들로만 주변이 채워진다는 위기의식이 든다면 나와는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내가 일관성이 있다면) 그 사람도 그 반대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단단하게 생각의 흐름이 이어지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일관성은 또 오래된 관계에서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데에 활용할 수도 있다.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겐 무심코 위에서 말한 '왜'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부끄럽거나, 멋있게 보이고 싶거나, 잠깐 정신이 나가서 이유에 성실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일관성에 기대 보자.



  좋은 말을 들으면 어떨 때는 마음에 깊이 남고, 어떨 때는 반발감부터 생긴다. 내 상황이나 삶에 도움이 되는 말들이라도 '그런 말은 누구나 다해'하고 속으로 눈을 흘길 때도 많다. 남의 말을 듣고 그냥 넘길 수도 없을 만큼 마음이 옹졸해졌을 때 왜를 묻거나 일관성을 찾아보려 한번 더 숨을 고르자. 어떤 약은 입에 쓰다. 약이 아니라면 뱉어버리고 나를 열심히 칭찬한다. 좋은 어른이 되었구나, 멋진 어른이 되어야지.


 제가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냐고 대든 적이 있다. 참고 넘기는 것이 멋있지 않다고 느껴지고, 이러다가 나를 잃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참지 않고 멋지게 내뱉었다. 윗사람을 들이박았다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다행히 괜찮은 어른을 만났었고, 친절하게 이유를 들어가며 크게 혼났다. 팩트로도 때리지 말라라는 말이 있지만, 소년만화의 주인공처럼 이유를 들어가며 꽂히는 피드백은 맞을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체벌도 교육이라던 시대에 학교를 다녀서 그런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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