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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둥 Jun 12. 2022

22. 호텔에서 잤습니다

결혼식이 토요일 2개, 일요일 1개 일 때

 5월은 결혼의 달이지만, 호텔에 외부 행사가 많아 오히려 4월보다 결혼식이 적었습니다. 야외웨딩 있었지만 새로워서인지 준비가 고되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한 첫 달, 초보 플로리스트의 호텔 웨딩 체험기를 전해드립니다.


 저희 호텔에는 플라워샾이 따로 없습니다. 일부 호텔에서는 플라워팀에서 플라워샾을 운영하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업무가 주말에 있는 웨딩을 기준으로 돌아갑니다. 월요일에는 지난 주말 웨딩에 사용된 모든 기물들을 재정비합니다. 초컵, 촛대, 와인잔, 각종 받침들과 거울들, 다른 높이와 두께를 가진 유리 실린더들과 테이블들 등 닦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닦아요. 그리고 다가오는 주말 웨딩별로 준비해둡니다. 토요일 12시 웨딩에 쓰일 와인잔 112개, 행잉볼 48개 등 플라스틱 박스에 각 웨딩 별로 이름을 붙여 카트에 실어둬요.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꽃이 들어오는 날입니다. 지하 1층 보조 작업장에 가면 웨딩과 호텔 정기관리, 프러포즈 이벤트 등 그 주에 쓰일 꽃들과 초록초록 소재들이 십여 박스 쌓여있어요. 박스를 벗기고, 이파리와 가시들을 제거한 뒤 줄기 끝을 사선으로 잘라 물통에 넣고 냉장고에 보관해 둡니다. 그 뒤 작업별로 필요한 꽃을 나눠요. 무대 장식, 버진로드 입구, 포토테이블, 높은 센터피스, 미니 화병 등 웨딩별 / 작업별로 나뉜 꽃들은 시원한 냉장고에서 하루 더 보내게 됩니다. 수요일은 호텔 전체 정기관리가 있는 날이기도 해요. 프런트와 컨시어지 데스크, 여러 식당들에 있는 꽃장식들이 대부분 수요일에 교체됩니다. 누운 ㄹ자 모양의 호텔 구조 덕에 오후 내내 한 명이 전담해서 호텔 곳곳들 돌아다녀야 해요.


 목요일과 금요일은 간단합니다. 열심히 작업하는 날이죠. 웨딩별로 무대 장식과 입구 장식 등이 전부 다르거든요. 한 웨딩에서 쓴 꽃장식들은 식이 끝난 후 모두 하객들에게 선물로 드리거나 폐기되기 때문에 각각의 웨딩은 각각의 작업물들로 채워집니다. 여럿이서 혹은 혼자서 자신이 맡은 작업을 열심히 하다 보면 금요일 저녁이고, 이때까지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웨딩 준비는 완료가 됩니다.


 웨딩이 있는 주말은 아침 8시쯤 출근해요. 다른 호텔들은 더 일찍 출근하기도 한답니다. 점심 웨딩에 필요한 모든 작업물들과 꽃들이 올라가고 결혼식장 세팅이 시작돼요.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사이에 모든 준비가 완료되어야 하기 때문에 가장 바쁘고 민감한 시간입니다. 버진로드 입구나 포토테이블, 신부대기실은 당일 아침에 작업해야 하는 것들도 있어요. 웨딩에 사용되는 기물들이 유리 거나 투명한 플라스틱들이 많기 때문에 쉽게 깨지기도 하고, 꽃을 위해 물들이 꽉꽉 채워져 있어 무겁기 때문에 빠르면서도 조심히 작업해야 합니다. 저를 포함한 직원들과 다른 근무인원들이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시간이에요. 12시 웨딩이 끝나면 두시쯤부터 다시 저녁 웨딩을 세팅합니다. 이때도 정해신 시간 내에 준비를 깔끔하게 끝내야 하기 때문에 아주 바쁘죠. 그 뒤 저녁 웨딩이 끝나고 다음날 웨딩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사용한 기물들을 닦다가 보면 밤 아홉 시에서 열 시쯤 됩니다.


 토요일 웨딩이 2개, 일요일 웨딩이 1개인 날은 밤 10시쯤 퇴근해서 다음날 8시에 출근이기 때문에 플라워팀 일부는 호텔에서 묵기도 합니다. 호텔 용어로는 '히우스 유즈'라고 하나 봐요. 텔의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종종 호텔이 제공하는 복지인 것 같아요. 이달에는 6월 첫 주만 주말 웨딩이 꽉 차서 이번 주 뿐이겠지만, 저는 어제 호텔에서 호텔로 퇴근했고, 오늘 아침 호텔에서 호텔로 출근했습니다. 어제 9시 반쯤 퇴근했는데 퇴근이 정말 1분도 안 걸려서 너무 신기했어요. 방으로 올라와 샤워를 하고 잠깐 용산의 야경을 보다가 잠들었습니다. 아침에는 7시쯤 일어나 샤워를 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바로 출근을 했어요. 샤워를 마친 뽀송한 상태로 1분 만에 출근을 하니 아주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방에는 비록 12시간이 채 안되게 있었고, 샤워하고 잠을 잔 게 전부 다지만 오랜만에 호텔에서 잠을 자니 뭔가 들뜨는 기분도 들고 가끔 상상했던 1분 만에 슉 출근하기 실제로 해보니 아주 새로웠습니다. 역시 직장인은 집이 회사와 가까운 게 최고인 것 같기도 해요.



 다행히 회사에서 자는 기분은 안 들었습니다. 처음이기도 하고 호텔이 주는 무언가가 있나 봐요. 아직 덜 고생해서 이기도 합니다. 뜻밖의 여정이었지만 좋았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생일이었는데, 보내주신 선물들이 마침 토요일에 도착에 택배가 문 앞에 쌓여있을 걸 생각하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과일들과 화장품도 있는데 오늘 퇴근하면 따뜻해져 있을 것 같아요. 서둘러 먹고 바르겠습니다.  감사와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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