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를 듣기 시작하면서
한 온라인몰의 턴테이블의 판매량이 예년보다 80%가량 늘었단다. 7080 가수들의 리마스터링 LP뿐만 아니라, 아날로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아이돌 그룹의 음반도 한정판 LP로 출시되고 있다. 파나소닉을 비롯한 제조사들이 소비자의 수요에 따라 턴테이블을 다시 생산하기로 했다.
월 만 원이면 손가락 한 번 움직이면 듣고 싶은 곡을 무제한으로 듣는 이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움직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지어 CD도 잘 판매되지 않는 이 나라에서 LP판은 CD보다 1.5배~2배 사이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컴퓨터나 노트북으로도 들을 수 있는 CD와 달리, LP판은 턴테이블이 있어야 들을 수 있다. 턴테이블만 구비해야 할게 아니라 기종에 따라 앰프, 포노 앰프를 구비해야 할 수도 있다. 간혹 내장 스피커가 있는 턴테이블도 있지만 음질이 시원치 않으므로 대부분의 경우는 스피커도 따로 마련한다.
참 번거롭지 않은가? 많은 것들이 점점 소형화・경량화되는 시대에 집안 한편을 잔뜩 차지하는 턴테이블을 구비하면서까지 노래를 들어야 하는 것이. 헛소리 같지만 LP청취에 있어서 그런 번거로움도 즐거운 과정이다. 하나하나 뒤지면서 듣고 싶은 앨범을 고르고 지문이 닿지 않게 조심조심 꺼내서 판에 올리고 바늘을 올리는 과정이 나는 참 즐겁다. 그런 과정을 거치고 소리골에 따라 바늘이 움직여서 마침내 스피커에 소리가 울린다. LP만이 주는 특유의 소리가.
LP를 듣기 시작하면서
내가 턴테이블을 장만한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충동적으로 LP판을 구매했는데, 이왕 구매한 이상 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턴테이블을 찾아봤는데 예상보다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몇 가지 후보를 추려놨는데 마침 그즈음에 일본 여행을 가기로 했던지라 일본에서 아예 구매해왔다. (아주 조금 저렴했다.) 집으로 가져와 포장을 풀어볼 때의 감정은 말할 필요도 없이 흥분 그 자체였다. 놀라운건 부모님의 반응이었다. 그동안 충동구매에 혀를 끌끌 차던 부모님이 어쩐지 그날만큼은 나보다 더 들떠 보였다. 안타깝게도 집에는 변변찮은 스피커가 하나 없었던지라 우선 조립만 해뒀다.
다음날 어느 중고샵에서 대학가요제와 ABBA의 LP판을 하나씩 구매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판이 부모님이 들을만한 곡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피커까지 연결하고 나서야 우리는 턴테이블을 사용할 수 있었다. 부모님과 나는 우선 ABBA의 LP판을 먼저 올렸다. 'Dancing Queen'이 흘러나오는데 엄마는 정말 여고생 같은 얼굴로 기뻐했다. 다시 젊어진 기분이 든다며.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잊고 있었다. 부모님에게도 지금의 내 나이였을 때가 있었고, 청춘을 향유했었음을. 순전히 호기심과 충동으로 구매한 턴테이블이 부모님에게는 다른 의미로 와 닿았던 것이다. 순간 나는 이 취미를 오랫동안 즐겨야겠다고 다짐했다.
LP가 주는 즐거움
아무래도 제일 좋은 건 LP가 들려주는 소리다. 오래된 판이 통통 튀기면서 지지직거리는 소리,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예민해지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또 내가 생활하는 공간 속에서 LP판이 돌아가는 모습도 꽤 좋다. 정말이지 볼때마다 신기하고 오묘한 광경이다. 가끔은 갖고 싶은 LP를 찾기 위해 중고 매장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파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물론 못 찾으면 애닳지만 운 좋게 찾아내서 턴테이블에 올리는 순간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터치만 해도 결제가 되는 세상에 굳이 이런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는 건, 노력을 쏟은 만큼 소중하게 느껴져서였다. 비록 내가 힘들게 구한 LP는 오래된 연식만큼이나 제 소리를 못 내지만, 바라만 봐도 좋다! 흐흐
사실 LP의 매력은 글로 형용하기 쉽지 않다.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다면 직접 들어보기를 권한다. 나의 경우는 이태원에 위치한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에 방문하여 LP청취를 처음 접했다. 단번에 매력에 사로잡혀 입문용 턴테이블을 구비했다. 청취에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공연 한 번 정도 참으면 구비할 수 있다. (예민하면 여러 번 참으시면 된다.) 생각보다 LP청취가 높은 장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님을, 이제 막 시작한 사람으로서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