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보고
*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를 통해 작성된 리뷰입니다.
부끄럽지만 지금 밟는 이 땅에서 전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간신히 떠올린다. 민족의 비극이라는 존재를 책과 대중매체를 통해 접해본 게 다이기 때문일까. 그래도 그렇지. 전쟁 중에 고아가 그렇게 많이 생겼을 줄을 몰랐을까. 그 고아들이 지금은 어디에서 살아가는지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요즘 들어 아이란 존재에 정말로 여러 가지 생각이 들고 관심이 간다. 하루하루 다르게 커가는 조카를 보면서, 생애 처음으로 엄마 역할을 해내는 새언니와 자주 대화를 나누면서 스스로에게 '내가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 질문을 던져본다. 영화 초반에 추상미 감독이 늦게 가진 아이라서 애착이 더 강한 탓인지 매일 밤 아이를 잃는 꿈을 꿨다고 하는 장면에서 일정 부분 공감이 갔다. 사실 나도 조카가 너무 예뻐, 그 아이를 잃을까 불안한 마음에 비슷한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다시 돌아가서 그 불안감이 너무 커진 나머지 추상미 감독은 산후 우울증에 걸렸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폴란드 국영방송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김귀덕'을 보게 됐다. 한국 전쟁 중에 북한의 전쟁고아들 1500명 정도가 폴란드로 보내졌고 폴란드 사람들에게 보살핌을 받은 일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북한의 고아들이 폴란드로 갔다는 사실 자체도 놀랍지만 당시 보육 선생님들이 그 아이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장면이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그 계기로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된다. 어째서 몇십 년이 지났는데도,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살을 부대끼던 아이들을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워하는가?
추상미 감독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폴란드에서 자료를 직접 조사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도 상실의 감정을 증폭시킬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탈북에 성공한 연극영화과 재학생 '이송'과 함께 떠난다. 추 감독은 틈틈이 자료 조사와 더불어, 이송 개인의 삶도 듣고자 한다. 이미 남한에서 사는 동안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소외받은 송이의 마음을 연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추 감독이 영화의 제작자로서 몰입하는데 그녀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된 듯하다.
폴란드에 도착한 둘은 대학, 박물관 등을 방문하며 전쟁고아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영화 구성이 다소 산만한 감은 있어서 퍼즐을 맞추는 듯했으나 아이들이 지내던 '프와코비체'의 보육원이 드러나는 순간 복잡하던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낡다 못해 폐허에 가까운 건물이지만 그 옛날엔 오갈 데 없는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둥지였다고 생각하니 묘했다. 건물을 낡게 만든 시간은 당시 아이를 보살피던 보육 선생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한, 그러나 반가워하는 얼굴로 추상미와 이송을 맞이한다.
선생님들은 처음으로 아이를 맞이하던 날부터 아이들을 다시 북한으로 보내던 날까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당시를 회상한다. 아이들을 씻기고 머릿니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박박 밀던 일, 폴란드어를 가르치던 일, 다른 동네 아이들과 달리기 경주를 했던 일. 수십 년이 지난 일임에도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놀랍고 감동스러웠다. 아이들끼리 내뱉었던 '빨리빨리'같은 한국어도 말할 수 있을 만큼, 사진을 보여주면 어떤 아이인지 기억할 정도로 말이다. 한편 왜 이토록 생김새도, 자라난 환경도 다른 아이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들여주었는 지도 궁금해졌다. 이 의문에 대해서 추상미 감독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폴란드에서도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남았고 비슷한 상처를 가진 북한의 아이를 보며 일종의 연대감을 느꼈을 거라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상처 입은 자들은 나약한 상태로만 남는 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강인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마무리하며
개인적으로 영화의 얼개가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은 받았다. 그럼에도 지인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할 의향은 있는다. 어떤 영화는 완성도를 떠나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고 폴란드로 간 아이들이 그에 속한다. '천사의 날개' 저자는 책에서 밝히지 않은 충격적인 사실 한 가지를 얘기한다. 당시 북한 전쟁고아 중에는 사실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 아이도 있었는데 이들의 행적을 그 누구도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폴란드의 선생님들이 그들을 그리워하며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는 동안에도 말이다. 적어도 우리는 이런 아이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정도는 기억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완성도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장벽을 넘은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어준 이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