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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샘 Mar 17. 2021

곁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곁에 좋은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것이 문득문득 감사하다.


유난히 남편과 붙어 다니는 시간이 많았고 둘이 소곤소곤 원 없이 속의 말들을 하고 살았다. 그러나 서로의 영역에서 각자의 사람들과 넓은 관계를 맺으며 지냈고, 또 둘의 공통된 지인들도 많아서 안팎으로 참 사람을 좋아했었다. 둘 다 교직에 있다 보니 나와 동료였던 교사가 남편의 동료가 되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남편이 떠나고 나서 한 걸음 멀찍이 서서 내게 든든한 역할을 해 준 사람들이 그들이다. 가끔은 남편이 하늘에서 나에게 더 가까이 가라고 휙 바람을 불어주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고마운 사람들이 곁에 있다.


남편이 마지막 떠나면서 '무슨 일이 있으면 병화 형님하고 상의해.' 했었다. 이 교장님은 내가 초임 발령 때 동학년을 함께 했던 선배님이고 그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니 삼십 년의 인연이다. 젊은 모습부터 보아서 이제 정년을 앞둔 자상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교장님이지만 너무 편안하고 오빠처럼 든든한 분이다. 남편은 술만 마시면 이 교장님 댁으로 늦게 찾아가곤 했다. 물론 이 교장님이 가자고 억지로 끌고 가다시피 하는 것이지만 사모님은 오밤중 손님인 남편에게 참 다정하셨다. 라면이라도 꼭 끓여서 먹여 보내곤 하셨다.

남편의 장례를 모두 치르고 얼마 되지 않아서 한 번 다니러 오라고 하시고는 따뜻한 밥을 사 주셨다. 그 앞에서 얼마나 울면서 그 밥을 먹었던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난다. 가끔 전화해서 우리 식구들의 안부를 물으신다.

"애들은 잘 지내지? 수민이는 직장 잘 다니니? 수진이는 어때?"

"류부장, 하고 싶은 대로 해. 아이들은 다 키웠고 애들은 걱정 안 해도 되니까, 뭐든 류부장 하고 싶은 대로 해. 응"

"별일 없지? 밥 한 번 먹자. 언제 올래?" 하신다.


수민이 결혼 날짜를 잡고 이 교장님을 뵈러 갔다. 수민이가 아기 때부터 보셨으니 결혼한다는 게 실감 나지 않지만 당신 일처럼 기뻐해 주셨다. 주례를 해 주시라고 말씀드렸다.

"야, 나 눈물 나서 못할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수민이 주례를 봐줘야지? 명일이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 저 눈물 많은 거 아시죠? 저 울리지 말고 유머 있게 하셔야 해요. 감사해요."

어쩌면 나는 앞으로도 중요한 일이 있으면 이 교장님께 달려가 상의를 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남편은 그래서 마지막에 그 말을 했었나 보다.


맘에 맞는 여행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효순 언니는 나와 20년 전에 함께 근무하면서 지금까지 쭉 만나오는 선배이다. 남편에게는 한 해 후배이기도 하다. 남편이 먼저 교감이 되고, 효순 언니가 따라 교감이 되었을 때 만나면 맛있는 것도 사 주시며 이것저것 업무에 대한 정보도 주면서 잘 챙겨주었다고 한다. 나와 더 친한 효순 언니는 말할 때마다 남편 이야기를 했다. 자주 보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내 곁에 바짝 다가와준 사람이 효순 언니다.

"명희야, 이번엔 우리 어디 갈래? 미리미리 장소는 생각해 놓자.'

교장으로 발령이 났어도 여행은 대부분 나와 함께 다닌다. 우리 둘은 스페인으로 캐나다로 긴 여행을 함께 다녔다. 같은 여행 스타일에 서로 조금의 갈등 없이 내 맘과 같은 사람과 다니는 여행은 행복이다. 우리는 매우 용감하고 우리는 매우 느슨하다.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고 다니고 저렴한 호텔도 마다하지 않는다. 길바닥에 잘 주저 않고, 좌판에서 산 과일을 질질 과육을 흘리며 먹고는 큰 소리로 낄낄거렸다. 함께 다니는 내내 즐겁고 자유롭고 유쾌하다.


낮에 들렀던 알함브라 궁전을 다시 보기 위해 그라나다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 다시 들렀다. 조금 전 집시의 전통 플랑 멩고 공연을 본 뒤라 그 여운이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노을에 잠겨 붉게 물든 어두워가는 알함브라 궁전을 다시 보면서 잠깐 눈물이 났던 것 같다. 그 분위기에 취해서였을까?

"명희야, 난 선배가 언젠가 교육청 근처 도넛 집에서 맛있는 도넛 하고 커피를 사 준 생각이 자꾸 난다. 맨날 뭘 받기만 한 것 같아. 그렇게 빨리 떠나려고 그랬나?"

"워낙 주변 사람들한테 잘했잖아요. 그래도 언니 만나고 오면 항상 말했었어요. 봤다고."

"그러게 그렇게 늘 잘해 주더라. 참 좋은 사람이었어."

"그러게요. 그러니까 나한테 더 잘하세요. 알았죠?"

농담처럼 말을 해 놓고는 노을에 물든 알함브라 궁전을 바라보며 우리는 맥주잔을 기울였고 함께 남편을 추억했다.

지금도 언니는 언제나 그 다정한 목소리로 전화를 한다.

"명희야, 요즘은 뭘 하고 지내니? 운동은 좀 하니? 우리 담엔 어디 갈까 생각하자."

코로나로 발이 묶였지만 우리는 또 함께 여행을 다니며 함께 길 위에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를 모든 대륙을 밟아보는 것이라며 우리는 다음 여행지를 아프리카로 생각하고 있다. 이번에는 길게 가기로 했으니 퇴직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남편은 나를 늘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었다. 어디 출장을 가면서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아들을 불러 세워놓고는 문단속 잘하고, 엄마랑 동생이랑 잘 챙기라는 당부를 했을 정도이다. 그 어린 녀석이 나를 지키라니 우습기도 했다. 뭐든 곁에서 다 해결해 주어서, 남편을 보내 놓고 처음 배운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곁에 아직 좋은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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