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 나에게 돌아가는 길 (회복의 시작)
< 안내드립니다>
이번 회차부터는 보다 정제된 문장과 흐름으로 다듬어진 버전으로 연재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1화부터 10화까지의 글도 전부 교체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완성도 높은 이야기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늘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던 어느 날이었다.
‘이제 나아지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처음 들 무렵, 쓸개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데, 같은 병실의 보호자분들이 나를 흘끗흘끗 바라보셨다.
곧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혼자 있어요?”
“부모님은 못 오셨어요?”
걱정 섞인 말들에 어색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들은 과자며 음료수를 놓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누군가 나를 신경 써주는 게 어색하면서도 따뜻했다.
혼자인 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정한 말 한마디에 마음 한편이 녹아내렸다.
가족의 빈자리가, 그 순간만큼은 조금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창밖으로 눈부신 햇살이 들어왔다.
침대 위에서 꼼짝없이 누워 창문을 바라보자,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운동을 하고 취미생활을 즐기던 평범한 일상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없이 슬퍼졌고, 그럴 땐 아픈 내가 답답하고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내가 싫었다.
스스로를 탓하며 가라앉는 일상이 반복될 때마다 문득 생각했다.
이제는 정말 괜찮게 살고 싶다고.
자꾸만 나를 탓하고 가라앉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 생각덕분에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떤 날은, 병실 복도를 걷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병실 복도를 한 바퀴 도는 것도 벅찼다.
금세 숨이 차서 침대로 돌아와야 했고, 누웠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조금씩 움직임을 늘려갔다.
조금씩 기운이 생기자, 이내 병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를 천천히 둘러보고, 지하의 조용한 빨래방과 작은 상점들을 구경했다.
그곳은 마치 또 다른 세상 같았다.
조금 더 힘이 생기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빨래를 돌렸다.
입맛은 없었지만 과일을 사서 병원 벤치에 앉았다.
피크닉을 온 것처럼, 그 시간을 즐겨보았다.
공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그날따라 유난히 밝아 보였다.
하루하루가 조금씩 달라졌다.
똑같은 풍경인데, 이상하게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문득 생각했다. '혹시 나도 조금은 살고 싶은 걸까?'
삶을 향한 내 마음이 아주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다.
밤이면 여전히 잠들지 못했다.
수많은 약을 삼켜도 눈은 말똥말똥 뜬 채로 시간을 견뎠다.
고요한 밤들이 괴롭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익숙한 일상이 되어 있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책을 읽고,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하던 나.
오랜만에 영어책을 꺼내 들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낯설지만 반가운 감정을 느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작은 의지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마음이 신기하게도 나를 설레게 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세포들이 다시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그 후로 조금씩 변화가 시작되었다.
책을 읽고, 간단한 운동을 하고, 일기를 쓰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선생님들이 어느 날 물어왔다.
"몸도 아픈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그냥… 제가 좋아하던 거예요."
익숙했던 방식으로 나름의 일상을 회복하려 했다.
'노력'이라는 단어가 오랜만에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그동안은 삶을 애써 버티듯이 지내왔다.
그런데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더 이상 무리하게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아픈 만큼 여유가 생긴 건지, 작은 일들에도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산책을 하고, 책을 읽고, 가족의 안부를 챙기는 일.
그런 사소한 일들 속에서 나에게도 웃음기가 조금씩 돌아왔다.
하루 종일 누워 있던 나날들에서 조금씩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입에 뭔가를 넣는 것도 처음엔 두려웠지만, 조금씩이나마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아주 작고 조용한 변화들이, 내 안에 생기를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들을 기록하고 싶어서 자기 전엔 항상 일기장을 펼쳤다.
지난날의 내가 궁금했고, 지금의 내가 어떤지도 기록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처음에 무얼 쓸지 몰라 한참을 고민했다.
내가 나를 모른다는 사실이 막막했다.
약 때문인지 머리도 멍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보기로 했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
내가 병원에 오게 된 날,
통증때문에 숱하게 아팠던 기억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써 이어가던 직업들,
무력함을 이기려 했던 운동들.
공허함을 채우려 했던 수많은 취미들.
대학을 그만두고 집을 나오던 날,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과 중학교 시절.
생각이 깊이 가라앉을수록,
오히려 떠오른 건 오래 전의 장면들이었다.
아빠가 편찮으시기 전에 주말마다 떠나던 여행이 기억났다.
계곡에서 동생과 신나게 뛰놀던 때에, 해맑은 내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나도 동생도 그저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던 시간.
그 시절을 떠올리니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평범한 일상 속 따뜻한 날들이 뒤이어 떠올랐다.
기억 속 엄마는 항상 밝은 얼굴이었다.
부드러운 손길로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주셨고, 언제나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주셨다.
아빠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애견 전람회에 데려가 주거나, 운전석 옆자리에 나를 태우고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밤이면 온 가족이 큰방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곤 했다.
그 장면들이 문득 떠올라 가슴이 저며왔다.
그 기억들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족은 내게 소중한 존재였다.
깊은 생각 끝에 이런 기억들이 떠올랐다.
스스로도 놀라웠다.
동시에 나아지고 싶었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이제는 나를 위해서
잃어버린 가족과의 시간을 되찾고 싶었다.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 나를 괴롭히던 것도 나였으니,
지금부터라도 나를 낫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