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막: 나에게 돌아가는 길 (회복의 시작)
병상에 누워 있는 시간은 끝없이 길었다.
가만히 누워 있자니 생각이 많아졌고,
생각이 많아지자 그동안 외면했던 마음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어느 날 오후, 공원을 산책하러 나간 날이었다.
면회를 온 가족들이 옆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픈 건 좀 어때?"
"많이 좋아졌어, 이제 움직이기 수월해"
그 대화들을 들으면서, 문득 나는 어떤지 궁금해졌다.
아프기 시작한 지 벌써 몇 년이 다 되어 가는데, 나는 정말 괜찮아지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나아지고 있는 걸까?, 나는 좋아지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들이 마음 한구석을 건드렸다.
병원에 입원해서 지금까지 그저 아프지 않기 위해 견뎌왔는데,
정작 나아지고 있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에 어떻게 살고 싶은지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 이렇게 살고 싶진 않은데...’
문득 그런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뭔가 더 달라지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더는 아프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막막했다.
그래서 우선 내가 왜 그렇게 괴로웠는지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우울증의 뿌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생각들을 잠시 멈추고,
'가장 나를 괴롭힌 건 뭘까?'라는 질문을 나에게 해보았다.
그동안 내가 애써 느끼지 않으려고 미뤄두었던 감정들이 떠올랐다.
공허함, 우울함, 그리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막연한 슬픔들.
처음엔 그 감정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들에 직면해야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고스란히 그 감정들에 머물러 보았다.
그러자 어느 장면들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 아빠가 아프기 시작한 후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올 때면 나에게 늘 똑같은 질문들을 했다.
'아빠는 괜찮니? 엄마는 힘들지 않니? 동생은 잘 있니?'
그 질문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투명해져 갔다.
점점 무거워지던 엄마의 어깨,
집을 떠나던 아빠의 뒷모습,
그리고 어린 동생의 무거운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 시간에 나는 사랑받고 싶었고,
혼자여서 외로웠고,
소중한 관계가 깨어질까 늘 두려워했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진짜 ‘나’는 점점 사라졌고, 그 자리에 공허함만 남았다.
하고 싶은 말들,
보이고 싶은 감정들,
하고 싶은 행동들을 꾹꾹 눌러 담은 채 버티며 살아온 결과는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 앞에선 늘 웃었고, 괜찮은 척, 밝은 척을 했다.
하지만 밤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불속에 숨어 울다 지쳐 잠이 들곤 했다.
그 장면들이 내게는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이었다.
가슴이 미어지듯 아프고, 쓰리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 기억들을 마주하자, 병상에 누워있는 지금도 몸이 반응했다.
감정이 쏟아질수록, 몸의 통증도 함께 밀려왔다.
'이대로 계속 생각만 해도 괜찮을까?'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벗어나고 싶었다.
며칠을 이런 식으로 보내니 몸이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과거를 마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감정에 휩쓸리기만 하면 오히려 더 깊이 빠져들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담당 선생님께 이런 증상들을 털어놓았다.
"선생님, 과거를 생각하면 몸이 너무 아파요.
어떻게 해야 이 생각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말씀하셨다.
"가끔은 생각을 멈추는 연습도 필요해요. 명상이나 호흡법 같은 것들 말이에요."
그 말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점점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며칠 후 용기를 내어 명상을 시작해 보았다.
처음 며칠은 정말 어려웠다.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오히려 생각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앉아 있을 시간에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조급함부터 시작해서,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앉은자리는 자꾸만 불편했고, 그저 숨을 쉬는 것조차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내가 호흡에 집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생각이 잠잠해졌다.
그 고요한 시간이 딱히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토록 생각을 떨치려 몸을 움직이고 애써왔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머릿속이 조용해지는 걸 느끼자 몸도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내 마음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명상을 하면서 처음으로, 진짜 나를 알고 싶어졌다.
습관처럼 일기장을 펴고,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생각을 주로 하는지,
과거의 내 행동이 지금은 어떻게 느껴지는지,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상을 기록하던 중, 어느 날의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요즘은 다행히도 기운이 많이 돌아와서 산책을 자주 나간다.
오늘은 병원 앞 공원에 나가 혼자 피크닉을 했다.
꽃구경도 하고, 새도 보고.
그때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와 물었다.
"예쁜 학생, 어디가 아파서 여기 왔어요?"
나이는 다르지만, 그런 친구들이 생겼다.
병원 생활이 생각보다 지루하지만은 않아서 다행이다.]
처음 일주일간의 일기는 여전히 어두웠다.
'오늘도 아팠다', '언제쯤 나아질까', '이런 내가 정말 싫다' 같은 문장들이 가득했다.
한 달쯤 지나고 나서야 물음표보다는 마침표가 많아졌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엔 ‘왜 나는 이럴까’, ‘언제쯤 나아질까’ 같은 질문들로 가득했는데,
이제는 ‘오늘은 좀 괜찮았다’, ‘다행이다’ 같은 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글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변화의 정체가 궁금해져서 예전의 나와 비교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사진첩을 열었다.
예전의 사진들 속 나는 늘 무표정이었고, 우울하거나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20대의 내가 거기 그대로 있었고, 그 모습은 여전히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금의 내가 어떤지 궁금했고, 그러다 문득 거울을 봤다.
밝지는 않지만, 희미한 미소.
어색하지만, 그 미소를 한 번 더 지어보았다.
그 표정을 짓는 내가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그 순간 깨달았다.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쌓여가는 것이었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은 여전히 완전히 밝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보았던 얼굴과는 너무 달랐다.
통증에 일그러진 얼굴과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있던 내가 아니었다.
신기해서 거울을 계속 쳐다보았다.
'나 좀 괜찮은 것 같아 보여'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몸의 통증도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토록 약을 먹고, 치료받아도 나아지지 않던 고통들이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면서 확실히 통증이 줄어들고 있다는 걸 느꼈다.
몸의 반응들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나아간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는데,
이런 변화가 놀랍다고 느껴졌다.
날이 갈수록 힘이 늘어났고, 산책을 가는 시간도 늘어났다.
밥을 먹는 양도 늘어났고, 잠도 잘 잤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그다음은 마음이었다.
생기를 되찾아가자, 마음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모든 게 완벽하지는 않았다.
어떤 날은 다시 예전처럼 무너질 것 같은 순간들도 있었고,
'정말 나아지고 있는 게 맞나?' 싶은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그런 순간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쓰고, 거울을 보며 미소 짓는 일들.
이 모든 게 거창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에게서 도망치지 않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를 다시 알아가는 충분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