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 내가 써온 이야기들

에필로그: 빛을 향해 걷는 나

by ARI

나는 처음엔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두려웠다.

나조차 이해하지 못한 감정들을, 말로 옮긴다는 게.

무엇부터 써야 할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자, 기억과 함께 감정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떠오르는 감정을 받아들이고 다스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글을 쓰면서도 손끝이 떨리고, 가끔 눈물이 났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웃기도 하고,

아픈 나날들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멈췄다가, 다시 쓰기를 계속 반복해 왔다.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마음이 먹먹하고, 슬퍼질 때도 많았다.

아직 꺼내지 못한 감정의 숙제들이 내 안에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어릴 적 그때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었군요"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나조차도 그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상담을 받으면서 기억을 되짚는 일들이 쉽진 않지만,

내 안의 깊은 상처들을 꺼내보이면서 다시 감정을 배워가고 있고,

나날이 치유되어 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쓰고 일기를 돌아보면서,

나는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나를 발견했다.

툭 하고 속마음을 말하기도 하고,

가볍게 웃어 넘기기도 하는 지금의 나는,

분명히 예전보다 단단해졌다고 느낀다.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행복한 어린 시절부터, 아빠의 병과 사업실패,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엄마 아빠의 법적인 이혼.

이후 성장기를 거쳐 성인이 되었지만 숱하게 해 왔던 방황들.


그 끝에 얻은 우울증과 병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론 나를 성장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한참을 방황해보다 보니 이제는 방향만큼은 제대로 잡았다는 걸 느낀다.


공허함과 우울을 채우려 숱하게 노력해 왔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그토록 찾아 해 메던 '마음을 채우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아직도 어느 날은 몸이 아프기도 하고,

하루 종일 우울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도 있지만

여전히 그래도 나는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으려 하고, 도망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더는 부끄럽지 않다.


오히려 이 기억들을 말로, 글로 옮기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감정을 수용하고, 정리하면서 나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다시 한번 더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방법들을 점검하게 되었다.


우울증은 완벽히 치료되는 것이 아닌,

일상과 같이 살아가야 하는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글들도 그 여정의 일부다.

오늘도 나는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