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기 하루 전, (그러니까 지난해 12월31일)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바라는 나’에 대해서 써봐야겠다고. 마음 가는대로 자판을 두드렸다. 그 수가 서른 개나 되었다. 외의였다. 그 하나, 하나가 너무나 소박해서 다 쓰고 보니 참 대단치 않더라. 그중 일부를 옮겨본다.
3. 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
10. 작은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
12. 자책하지 않는 사람
23. 최소한의 물건만 가진 사람
어릴 적엔 꿈이 많았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나는 좋아하는 일로 돈도 잘 벌고, 자신만의 패션스타일도 갖춘, 주변의 인정과 선망을 받는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떤가. 엉뚱한 좌표에 머물러 있다. 그 어떤 꿈에도 다가가지 못하고, 방향이 뒤엉킨 미로에 멀뚱히 서있는 것이다. 어릴 적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눈물, 콧물 쏟아내며 주저앉아 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서른에 가까워진 난 조금 변했고, 과거의 내가 뭐라 하든 다시 길을 찾고 싶은 것이다.
좋았다. 직업적 야심보단 ‘하루의 풍경’을, 자의식 강한 욕망보단 구체적 ‘삶의 질서’를 찾고 싶어 하는 서른의 내가 좋았다.
13. 매일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
난 종이신문에 노란색 색연필로 밑줄 치며 읽기를 좋아하는데, 그런 내 모습을 상상하면 아주 멋져 보인다. 지적 허영이라기보다, 매일 할당된 활자와 세상 이야기를 성실히 머리에 쌓아두는 그 감각이 좋은 것이다. 차곡차곡. 꾸준히. 여기에 더해 매일 일기를 쓰고, 요가를 하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갈 길을 몰라 막막해 하지만 '이렇게 하루를 살아내면 되겠구나', 생각하면 더없이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이다. 비로소 깊이 안도하게 된다.
그래서 서른의 난 소설가 캐서린 맨스필드가 쓴 다음과 같은 문장을 흠모하면서, 한가로운 구름과, 풀 내음 나르는 바람과, 넉넉한 자유의 기쁨을 마음껏 꿈꾸어 보는 것이다.
"어젯밤은 창을 열어놓고 잤습니다. 여기의 공기는 과실과 같습니다. 약보다 낫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책을 읽었습니다. 숲과 들과 산과 자갈 깔린 저 해안을 거닐고 싶습니다. 때로는 엷은 스웨이드 장갑을 끼고 도시에 가서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듣고 카페에 앉아서 오래오래 차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언제나 자유롭고, 언제나 인정이 있고, 언제나 배우고,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 캐서린 맨스필드 (Katherine Mansfield)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