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가족을 유지하는 비용 5

by 정아린

여름이 다가오자 J의 부모는 다시 미국에 오겠다고 했다.

나는 J에게 그들이 온다면 아이들과 다른 곳에 가 있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오지 않았다.


생활이 어렵다는 소문은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 금세 퍼졌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돈을 아끼세요.”

“더 싼 집으로 이사하든지, 차도 바꾸시고요.”


말은 쉬웠다.


J는 부모가 정해 주고 간 집을 옮기거나 차를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마치 그런 선택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는 아무것도 바꾸려 들지 않았다.


J는 일 년 동안 여러 차례 지도 교수를 바꿨지만

여전히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중요한 시험이 다가왔다.


그는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몇 시간 뒤,

그는 불합격 소식을 안고 돌아왔다.


‘이럴 줄 알았지’

그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기회는 한 번 더 있었지만, 지도교수는 그를 바로 놓아버렸다.


다른 교수를 찾지 못하면 귀국해야 했다.


유학에 실패하고 본가에서 지내던 형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방법을 찾고 있는 나와 달리 J의 포기는 생각보다 빨랐다.

매일 술을 마시며 차라리 잘됐다고 미국에서 못 살겠고 공부를 더는 못 하겠다고 했다.


오 년을 넘게 준비한 유학이었다.

나는 그렇게 정리할 수 없었다.

그의 유학을 위해 결혼 이후의 시간을 써온 나에게 이건 끝이 아니었다.

J의 부모가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릴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때

한 교수가 학생을 찾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조건이 있었다. 회사의 스폰서를 받는 학생이어야 했다.

나는 그가 다니던 회사를 떠올렸다.


“다니던 회사에 연락해 보자.”


그 순간,

나는 그가 언제 움직이는 사람인지 분명히 보았다.


회사는 재입사를 허락했고 지원을 약속했다.

새로운 교수가 J를 받아 주었다.


유학 온 지 일 년 반 만에

J는 회사의 지원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받으며 공부를 이어가게 되었다.


그는 그 사실을 본가에 바로 알렸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당당했다.


회사의 지원이 시작된 후 이상한 변화가 생겼다.


J의 부모는

갑자기 유학을 떠나기 전 약속했던 액수로 생활비를 올려주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그 큰 목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우리의 미국 생활은 처음으로 안정되었다.


아이들도 유치원에 가고 운동도 시킬 수 있었다.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집에 오면 늘 하던 말이 있었다.


“J는 아빠 같지 않고 삼촌 같아.”


그리고 여름,

J의 부모는 또다시 미국으로 오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조부모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그들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자고 했다.


이 년 만의 그들과의 재회는 어색했다.


그들은 가방 가득 한국 과자와 김을 가져왔고 이전과는 다르게 조심스러워 보였다.


J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보며 잠시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그들이 머무는 동안 먹을 음식을 준비했다.

삼계탕을 끓이고 갈비찜을 했다.

미국에서는 먹을 수 없었던 족발도 만들었다.


몇 시간씩 삶아

살을 발라 모양을 잡고

냉장고에 굳혔다가 상에 내었다.


J의 어머니가

젓가락으로 뒤적거렸다.

어렵게 잡아놓은 모양이 다시 부스러졌다.

그녀는 돼지고기는 먹지 않는다고 했다.


J의 아버지는

맛있다고 더 만들어 달라고 했고

아내에게 탕수육은 좋아하면서 왜 안 먹느냐고 했다.

그녀는 남편에게 화를 냈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남았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매일 쇼핑을 나갔다.


중국 뷔페에서 외식을 했다.

큰 아이가 게다리 살을 발라 할머니와 할아버지 접시에 먼저 놓았다.

J의 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리고 둘째를 슬며시 보고 말했다.


“저건 쓸모도 없어.”


나는 그의 얼굴을 봤다.

그는 자기가 한 말을 차마 주워 담지도 못하고 있었다.


둘째가 나를 쳐다봤다.


여자라 필요 없다는 말인지

게살을 못 발라서 필요가 없다는 말인지 묻고 싶었다.


J의 어머니가 크게 웃으며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집에 돌아온 뒤 둘째가 나에게 그 말을 다시 물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J의 아버지는 큰 아이에게 골프를 가르쳐 주었다.


어느 날, 연습을 마치고 돌아온 큰아이의 얼굴이 어딘지 어색했다.

J의 아버지가 말했다.


“연습하다 공이 있어 내가 가방에 담다가 관리인한테 한 소리 들었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반쯤 웃고 반쯤 울고 있었다.


그들은 달라졌지만 그대로였다.


J의 아버지는


“내가 이제 얼마나 산다고.”


라고 자주 말했고,

J의 어머니는 샐쭉한 표정으로 큰며느리를 향해 말했다.


“며느리 년이 시어미를 고소해?”


그리고 남의 집안은 쉰둥이도 낳는다며 아들을 하나 더 낳아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매일 옷가지와 화장품을 샀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넌 화장 안 하고 꾸미지 않는 게 더 나아.”


내가 길을 잘 알면


“집에만 있다는 애가 길을 이렇게 잘 알아?”라고 했고


새로운 식당에 가면


“만나는 사람도 없다면서 이런 곳은 어떻게 아니?”라고 물었다.


대답을 원하는 것 같아 답했지만, 변명이 되었다.


나는

내가 겨우 만들어 놓은 나의 구조가 늘 그렇듯 다시 조립되는 것을 느꼈다.


혹은

그들에게는 그것을 다시 조립하는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그들은 돌아갔다.

그 일은 매년 반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