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말린 것들

가족을 유지하는 비용 6

by 정아린

내게 생긴 작은 여유는

학교에서 배우며 작업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메조틴트 작업으로 시작했다.


뿌연 동판을

거울처럼 반짝이도록

거즈로 몇 번 닦는다.


반짝이는 동판 위에

로커를 흔들어 선을 만든다.


선을 만들고 또 만들고

밤을 지나 흔들어도

어둠이 나오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을 향해

나는 다시

로커 잡았다.


쉼 없이 흔들었다.


얽힌 선들이

어둠이 되면

그 안에서

스크래이퍼로 빛을 찾았다.


깊은 어둠 속에서

꿈틀대며

하얀 사람이 나왔다.


셀 수 없이 많은 선들이 얽혀

네모난 동판 안에

내가 되고 네가 되었다.


나는

천을 잘라 돌돌 말았다.


안을 꼭꼭 감췄다.


크고 작은 천을

계속 잘라

계속 말았다.


손끝이

하얗게 질릴 것 같았다.


결혼식 전

함 속에 들어왔던 편지도

잘라 함께 말았다.


일 미터 천은 일 센티가 되었고,

이 미터 천은 이 센티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캔버스에 꼭꼭 눌러 빽빽하게 붙였다.

긴 천은 한 면만 보였다.


길고 넓었던 것들이

네모난 캔버스에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빈틈없이 눌려 있었다.


보이고 싶은 면만 보이도록.

보고 싶은 면만 보도록,


J는 그것을 보고

어릴 적 방학 숙제로 만든 수수깡 집 같았다고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안으로 말아 넣던 시간들 사이로

오래된 사람이 떠올랐다.


J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두 아이의 임신 과정을 함께 했던

선배 의사가

이제 세상에 없다고 했다.


“그때 네가 다니던 의사가 병원 문제로 힘든 일이 있어 스스로 죽었대.”


나는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그럴 것 같지 않은데요.”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떠올랐다.

병원에 들어서면

늘 장난스럽게 웃어줬던 그녀의 얼굴.


아이를 낳고 편히 쉴 곳이 없어

의국에서 산후조리를 했다고 말했던 사람.


나는

그 말을 믿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시어머니는 방송에 나와

예단 문화를 바꾸자고 하면서도

그녀에게 노트 한 장이 넘는 예단 목록을 내밀었다고 했다.


나를 볼 때마다

걱정스러운 눈길을 거두지 않았고

첫 아이가 아들이기를 나보다 더 바랐던 사람.


큰 아이의 우유를 구해주러 함께 다녔던 사람.

배넷 저고리를 선물로 주던 사람.


진료 중에도

아이들의 전화를 받으며 웃던 그 모습이 생각났다.


그녀를 떠올리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시간들을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늘 그렇듯

안으로 말아 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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