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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Jul 11. 2021

우리는 왜 자주 거대한 착각에 빠질까

<하트시그널 2> 마지막 회, 리모컨을 던져버리던 그날


본방사수의 그날, 리모컨을 던져버리다  



2018년 상반기, 나는 <하트시그널>이라는 연애 프로그램에 반쯤 미쳐 있었다. 육아와 살림, 글쓰기를 제외한 내 자유 시간의 절반 이상은 이 프로그램의 시즌 2를 보는데 할애했다. 일반인 남녀들이 한 달간 합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데이트를 하며 썸을 타다 마지막 회에 최종 커플이 결정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연애 추리 프로그램이라는 취지에 맞게, 유명인 패널들이 나와 이들의 속마음을 추리하며 결론을 가늠해보는 것이 주요 컨셉이기도 했다.

 연애 프로그램에 빠져들면, 대체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커플이 생기게 마련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8명의 남녀 중 한 커플을 지지했는데 (간절한 마음으로) 두 사람이 최종 커플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매주 이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내가 간절히 밀던 바로 이 커플 @하트시그널2 중 캡처

 

마지막 회는 특별한 회차이니 본방사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은 핸드폰의 작은 화면이 아닌 50인치 tv로 방송을 감상했다 (마침 한국 휴가를 가 친정에서 지내던 기간이었다). 마지막 회 시청을 앞둔 나는 자신만만함에 차 있었다. 내가 밀던 그들이 최종 커플이 되겠지? 내가 좀 촉이 좋거든. 내가 상상하던 아름다운 장면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마지막 회, 결국 둘은 어긋났다. 상상하던 커플 탄생의 장면은 저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 화가 난 나는 tv를 끄고, 리모컨을 던져버렸다.


 그 날 나는 왜 화가 났을까? 내 기대감이 배신당했다는데 화가 났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내가 믿고 있던 스스로의 추리력과 촉(?)이 잘못된 방향을 가리켰다는 데 화가 났다 . 지난 달 동안 나는 끊임없이 인터넷을 검색하며 두 사람이 커플이 될 증거를 수집해왔다. 내가 지지하던 커플의 눈빛, 행동, 언어와 표정을 분석하며 두 사람이 커플 되는 건 당연한 결론’이라 주장하는 수많은 게시글과 동영상이 온라인 상에 떠돌고 있었다. 나는 이 자료들을 샅샅이 훑어보며 커플 탄생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결론이 난 후 되돌아보니 그 모든 장면들 속에는 두 사람이 최종 커플이 되지 않고 어긋날 징조도 존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누던 대화 중에 미묘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있었고, 이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암시하는 증거도 분명 존재했다. 물론 제작진의 의도된 편집에 넘어간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동안 나는 내 예측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쏙쏙 골라 살펴왔고, 이에 반대되는 이야기가 담긴 게시글은 애써 외면해왔다. 심지어 그런 글을 접하게 되면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 같으니.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나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에 수많은 자료를 뿌려댔고, 나는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처럼 그런 자료들만 수집하며 몇 달을 달려온 셈이었다.      



우리는 왜 거대한 착각에 빠질까  



 나만 이런 착각 속에 빠져 있을까. 아닐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수많은 객관적 근거를 조합해 나름대로 논리적 결론을 내린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역시 하나의 착각일 수 있다. 오히려 원하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그 결론에 부합하는 증거만 부지런히 모으며  스스로의 잘못된 믿음이나 견해를 더욱 굳혀가는 경우도 많다. 이른바 확증편향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선입관을 뒷받침하기에 유리한 정보만 수집하며 평소의 생각을 강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한 마디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상황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선택하여 모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굳혀가기에, 스스로가 나름대로 객관적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흑백논리나 편견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역사 속 대중들의 확증편향은 비극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불행과 혼란에 빠진 상황일수록 사람들은 불안감에 시달리며 불행의 원인을 밝혀내고 싶어 한다.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평소 자신이 싫어하던 대상에서 불행이 비롯되었다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장에 들어맞는 증거만 수집하며 혐오에 빠져든다.


14세기 흑사병의 대유행이 일어나 전체 유럽 인구의 1/4 이상이 사망했을 때,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공공 우물에 병균을 넣어 전염병을 만든다고 믿었다. 실제 유럽인들이 몇몇 유대인을 고문해 거짓자백을 만들어낸 후 이 거짓 정보를 바탕으로 흑사병의 원인을 유대인 탓으로 돌렸다. 허위 정보를 수집한 이들은 사회적 소수자였던 유대인을 박해하고 학살하기 시작했다.


우물에 독을 풀어 흑사병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산채로 화형당하는 유대인들을 그린 중세의 그림 @ 출처 : 서울경제


 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 때도 비슷한 유형의 비극이 일어났다. 치안이 무너지고 불안이 커진 자연재해의 상황에서, 일본 내무성은 ‘재난을 틈타 조선인들이 사회주의자들과 결합해 방화, 폭탄에 의한 테러, 강도 등을 계획하고 있으니 주의할 것’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몇몇 신문에 이 내용을 인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헛소문까지 퍼졌다. 좌절과 혼란 속에 있던 일본인들은 거짓 정보를 습득한 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조선인들에게 돌렸다. 적대감에 둘러싸인 일본인 자경단, 경찰, 군인은 조선인 학살을 주도하였으며 대략 6천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관동대학살이라고 불리는 사건은 이렇게 발생했다.


 역사 속 어리석은 대중들이 저질렀던 확증편향의 오류를 우리는 피하고 있을까? SNS와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우리를 더욱 거대한 착각의 늪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유튜브나 구글 등의 사이트는 우리가 평소 클릭하고 즐겨보는 동영상이나 기사의 취향에 맞추어 새로운 영상을 추천한다. 그에 따라 우리는 평소 가지고 있던 정치적 신념에 맞는 뉴스만 클릭하거나 내가 선호하는 인물이나 관련된 정보만 접하게 되고, 이 과정을 통해 평소의 주장이나 견해를 더욱 견고하게 쌓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정보만 쏙쏙 골라 볼 수 있는 개인화 알고리즘의 사회에서 우리는 나와 다른 관점의 의견은 좀처럼 접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오히려 자신만의 틀에 갇히며 편협한 생각을 갖기 쉽다. 미국의 정치참여단체 ‘무브온’의 이사이자 <생각 조종자들>이라는 책의 저자인 엘리 프레이저는 이를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는 말로 이러한 현상을 표현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맞춤형으로 걸러진 정보를 접하며 거품에 갇히고 있는 셈이다.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견해에만 적용되는 이야기일까. 우리는 때때로 확증편향을 통해 스스로의  자아상을 강화하기도 한다. 가령 나는 오랫동안 ‘나는 부족하고 못났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은 채 그에 걸맞은 정보를 수집하며 살아왔다. 낯선 곳에서 실수하던 나. 누군가에게 제대로 할 말을 하지 못했던 나, 어떤 일에 능숙하지 못한 나에 대한 정보를 주로 수집하고 이 정보를 되새겼다.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에 대한 정보를 주로 모으며 ‘나는 역시 못났어.’라는 주장을 강화해온 셈이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인간이라 생각했지만, 이 역시 하나의 거대한 착각일 수 있었다.



거대한 거품, 어떻게 해야 사라질까



  원하는 결론이 나지 않아 리모컨을 던져 버리던 그날, 나는 '새로운 나'를 발견했다. 내가 원하는 정보만 골라 모으며 스스로를 객관적이며 촉이 좋다고 자부하던 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지 않아 현실 부정을 하던 나. 나 역시 하나의 거대한 착각, 거품 속에 살고 있었던 셈이다.  


 거품을 터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설적이게도 ‘내가 거품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스스로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여 객관적인 결론을 내는 사람이라는 생각. 이 생각이 착각일 수 있음을 깨닫고 내 취향이 아닌 것, 내 견해에 맞지 않는 것들도 한 번쯤 둘러볼 필요가 있다. 나를 둘러싼 거대한 착각을 인식하고, 견고하게 쌓아오던 믿음에 한 번쯤 의심을 던져 보는 것. 질문과 의심을 품어야 거품은 비로소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아무거나 3분 교양> 매거진의 글은 경제, 사회, 역사, 미술, 문화, 심리 등 분야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끌리는 대로 잡다한 지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짧은 에세이입니다. 아무 때나 제가 글을 발행할 수 있을 때  글을 니다.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 글은 원래대로 매주 화요일 저녁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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