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랑선생 Jul 27. 2021

범죄자의 자아도취를 막는 방법

우리는 범죄자의 서사가 궁금하지 않다

그들의 인생 서사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을 때   


 

“선량한 사람으로 보였다는 이웃 주민들의 증언”

“어린 시절부터 불우한 삶, 범죄는 예고되어 있었다.”


 가끔 접하는 제목의 기사다. 세상을 들썩이게 만든 범죄의 전말이 밝혀진 후 전해지는 소식. 범죄자의 성장 배경과 주변 환경을 둘러싼 서사가 뉴스를 통해 쉴 새 없이 전해진다. 범죄자의 가정불화나 빈곤하고 불우한 성장 배경이 샅샅이 드러나고, 현실 속 그의 조용하고 선량했던 모습에 대한 주변 이웃들의 증언도 이어진다. 범죄자가 살면서 겪어 왔을 정신적 곤란이나 열등감 등의 심리적 상태 역시 주요한 기삿거리가 된다.  


 이러한 기사들을 접할 때마다 몇몇 범죄 영화나 스릴러 영화 속 빌런의 서사를 떠올리기도 했다. 악당이 악당으로 거듭날 수밖에 없는 사연을 내어놓는 서사.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가 생겼다. 저 사람은 어쩌다 범죄자가 된 걸까. 어떤 심경으로 범죄를 저질렀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관련 뉴스를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 한 범죄자의 말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  한 범죄자가 구속된 후 던진 이야기였다. 성 착취물을 제작 · 유포하였으며 각종 성범죄를 저지르고 사기와 협박을 일삼아 온 이 사람은, '악마의 삶'이라는 한 마디 말로 자신의 서사를 축약했다. 본인의 범죄 행위 속에 숨겨진 비열함과 찌질함을 덮어 버리는 듯한 이야기. 자신의 행동에 거대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양 내뱉은 말에 온 몸이 오그라들었다.  


  저 말을 던진 저의가 무얼까, 저 머릿속에는 대체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 걸까 궁금해지다가 종국에는 그 물음조차 거두어들였다. 더 이상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다른 형태의 질문이 머릿속에 떠돌았다.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범죄자의 자아도취성 발언에 크게 관심 둘 필요가 있을까. 범죄자의 세세한 서사나 심리 상태에 세상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가해자의 서사를 제거하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처형> 



 ’ 가해자의 서사‘라는 말을 떠올리면,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Goya.1746-1828)의 그림 한 점이 떠오른다. 고야는 한 때 스페인 왕실의 궁중화가로서 영광의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탐욕스러움, 추악함, 허영심 등을 작품 속에 가감 없이 드러낸 화가이기도 했다. 


 그의 그림은 말년으로 갈수록 어두운 색채를 띠는데, 다양한 작품 속에 화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 있다. 가식이나 미화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예술가의 표현력에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고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현재 프라도 미술관에 걸려 있는 <1808년 5월 3일의 처형>(1814)이다. 작품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1808년 스페인을 침공했을 당시 벌어진 학살의 장면을 다루고 있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자화상(좌)과 그의 대표작 <1808년 5월 3일의 처형>(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혁명의 이념을 전파한 자유주의 정신의 전파자였으나, 전쟁으로 수백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학살자이기도 했다. 그가 스페인을 침공했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1808년 5월 2일 스페인 시민들은 나폴레옹 군대의 침략에 맞서 마드리드의 중심부에 있는 푸에르토 델 솔 광장에 나가 시위를 벌였다. 충돌과 학살이 뒤따랐다.


<1808년 5월 2일, 맘루크 기병의 돌격>  스페인 시위대와 나폴레옹 군대의 용병이었던 맘루크 기병 간의 충돌 상황을 그리고 있다 @wikiart


 다음날인 1808년 5월 3일 새벽 4시부터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는 시위대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1808년 5월 3일의 처형>은 마드리드의 프린시페 피오 언덕에서 프랑스 군인들이 스페인 시민을 총살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그림이지만, 작품은 사실에 대한 전달보다는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다. 화면의 중심에 위치한 남성은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있다. 그는 다른 이들과 함께 학살자들의 총구에 곧 희생당할 처지다. 두껍게 채색된 남성의 흰색 옷은 주변의 어두운 색채와 강렬한 대비를 보인다. 무릎을 꿇고 있으나 서 있는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커다란 체구의 소유자로, 그림을 처음 마주한 순간 감상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쏠리게 되어 있다.  



반면 그들을 학살할 준비 중인 프랑스군의 모습을 보자. 총을 든 군인들은 모두 뒷모습으로 처리되어 있다. 이 학살자들은 동일한 옷을 입고 같은 자세로 총을 들고 서 있다. 



 감정이나 서사 없이 총을 겨누고 있는 가해자들의 모습에 감상자들은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까. 군인들의 모습은 흡사 한 덩어리의 기계처럼 보인다. 고야는 서사나 감정을 제거한 채 한 무리의 가해자를 그려냈다. 임무를 수행하는데 집중하고 있는 그들. 양심이나 감정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로 보인다. 환한 빛 중 하나가 그들을 비추고 있으나 가해자들은 결코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고야가 <1808년 5월 3일>에서 표현한 구도는 후대의 화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듯하다. 후대의 예술가들은 이 인상적인 구도를 차용해 작품을 남겼다. 피카소의 1951년작 <한국에서의 학살>도 그 대표 격인 작품 중 하나다. 피카소는 6.25 전쟁 당시 한국에서 벌어진 학살에 관련된 보도를 듣고 영감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전쟁 중에 일어난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 사건을 그렸다는 추측도 있으나 정확히 어떤 사건을 기반으로 그려졌는지 알려진 바는 없으며,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한국에서의 학살>(파블로 피카소, 1951)


공포와 불안에 떨며 서 있는 여성들과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의 오른편에는 학살자들이 위치해 있다. 학살자들은 인간이 아니라 총살 기계에 가까운 모습을 한 채 총구를 들이대고 있다. 무감각한 그들의 모습에서 어떠한 서사나 감정은 읽어낼 수 없다. 피카소는 작품을 통해 전쟁과 폭력의 잔인함, 비인간성을 고발하는데 주력했다.   



범죄자의 서사를 제거하기  



 <1808년 5월 3일>과 <한반도의 학살>은 폭력과 학살의 가해자를 철저하게 '살인을 하는 기계와 같은 존재', '무감각한 이들‘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그림 감상자들로 하여금 가해자에게 몰입하지 않도록 돕고, 그림이 담아내는 사건에 주목하게 만든다. 가해자의 서사를 제거하고 폭력과 비인간성이 불러온 비극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 고야와 피카소의 작품이 가진 공통점이다.

 

특정 인물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제거하는 것은 어떠한 영향력을 가져올까. '설화'나 '신화'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고대 영웅이나 지도자들의 서사를 떠올려보자. 알에서 태어났다거나,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등의 이야기. 그가 위대한 영웅이 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특정 인물의 서사가 널리 알려질 때 대중은 그의 사연에 감정적으로 동요하며 자연스럽게 해당 인물에 주목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신의 서사가 널리 알려진 이는 일정한 힘을 부여받는다. 

 

범죄자의 서사는 정반대의 측면에서 주목받을 수 있다. 부정적인 관점에서 전달되는 서사 속에서도 '가해자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초점이 맞추어질 경우 위험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범죄자의 서사에 주목하게 되면서 오히려 사건 자체의 본질에 집중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물론 범죄자의 성장배경과 심리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다음 범죄를 예방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범죄 연구가와 전문가들이 심도 있게 다루고 살펴볼 부분에 해당한다. 가해자의 이야기가 자세하고 입체적으로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동안, 범죄 행위로 피해를 입은 이들은 '피해자 0 모씨' 정도로 언급된다. 가해자에 의해 고통을 입은 피해자의 삶은 단편적이고 평면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뿐만 아니라 범죄자와 달리 불우하고 빈곤한 환경에서도 이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묵묵히 버텨나가는 평범한 이들의 위대함 역시 희석되기 쉽다. 범죄자의 서사에만 주목할 경우 사건 자체가 '잔인하고 나쁜 놈 한 명' 때문에 일어난 일로 귀결될 가능성도 크다. 범죄를 묵인하고 방치해 둔 사회구조적 시스템을 되짚어볼 기회는 멀어져 간다.   


 범죄자들은 '거대한 악의 축'이나 '그럴듯한 서사를 지닌 빌런'이 아니다. 가해자의 범죄 행위, 그 속에는 수많은 찌질함과 비열함, 경제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양심을 저버린 파렴치함이 숨어 있다. 그들의 서사와 심리 상태를 깊이 있게,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적당한 선에서 그쳐야 한다.  범죄자에게 굳이 구구절절한 인생 서사를 쥐어줄 필요는 없다. 나쁜 놈은 그저 나쁜 놈일 뿐이다. 



<아무거나 3분 교양> 매거진의 글은 경제, 사회, 역사, 미술, 문화, 심리 등 분야에 구애받지 않고 그때그때 끌리는 대로 잡다한 지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짧은 에세이입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는 원래대로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에 글을 발행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왜 자주 거대한 착각에 빠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