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장소에서맥도날드를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
이집트 여행을 갔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제 때 타지 못한 적이 있다. 15년 전의 일이었다. 항공사에서 성수기에 비행기 좌석보다 예약을 초과해서 승객수를 받았는데, 마침내 비행기표는 여행사의 착오로 리컨펌(예약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나는 숙소와 도시 이동은 인솔자를 따라다니고 도시 내에서는 일행끼리 자유롭게 여행하는 단체 배낭여행이라는 여행 상품을 이용 중이었다.- 당연하게도 항공사에서는 예약 확인이 안 된 내 비행기 티켓을 끊어 주지 않았고, 대기하며 질문하러 갈 때마다 독수리 타법을 구사하던 항공사 직원은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결국 비행기 출발 시간이 가까워져 갔다. 나와 함께 여행하던 일행들은 모두 비행기를 타러 가야 했다. 태연스러운 척 그들을 보내며 손을 흔들었지만 고백하건대 겁이 나서 입술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혼자 여행’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나였다. 더불어 대담함이라고는 0에 수렴하는 쫄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하늘이 도왔는지 단체 배낭여행을 인솔하던 한국분이 이집트에 지내고 계셨다. 간신히 그 분과 연락이 닿았고, 며칠간 머무를 숙소와 5일 뒤 출발할 비행기표도 구할 수 있었다. 정해진 일정이 있는 그분께 나와 함께 여행해달라 부탁할 수는 없었다. 덕분에 닷새 동안 이집트 카이로를 혼자 여행할 기회를 반강제로 얻게 되었다.
도시는 소음과 먼지와 혼란함, 호객꾼으로 가득했다. 왜소한 체격의 동양인 여성이 홀로 걸어 다니는 광경을 본 중동과 군인들이 뒤따라오며 말을 걸거나 휘파람을 불어댔다. 그들을 꿋꿋이 무시하며 내 안에 숨어 있는 대담함을 한껏 끌어올려 유적지와 사원을 돌아다녔다 -그렇지만 안전을 염려해 저녁 6시 이후로는 숙소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바가지 씌우려는 택시와 흥정하기, 바쿠시시(원래 이슬람 교리에 따라 가진 자가 가난한 자에게 베풀어주는 행위를 말하나 이집트에서는 현지인들이 일종의 팁으로 많이 요구한다)를 요구하는 이들을 무시하기, 사원을 찾아다니며 셀프 사진 찍기 등은 무난히 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식사만큼은 녹록지 않았다. 그 시점부터 이미 나는 중동 현지 음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배는 고프지만 속을 채울 길 없어 황망한 마음으로 카이로 시내를 헤매던 순간, 커다란 M자 마크의 황금빛 아치가 눈에 띄었다.
맥도날드. 20대 초반 한 달 동안 호주에 머무르던 시기에도, 취업 후 유럽 여행을 하던 때에도 간간히 빈 속을 채워주던 패스트푸드의 제왕 맥도날드가 내 앞에 위치해 있었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맥도날드 덕분에 나는 그날 치즈버거 세트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스물다섯의 나는 왜 맥도날드의 간판에 왜 그토록 커다란 반가움을 느꼈을까. 그 순간뿐 아니라 5년간 해외살이를 하던 시기에도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커피빈, 배스킨라빈스 매장을 만날 때면 반가움을 너머 안도감마저 느낄 때가 있었다. 되짚어보면 그 안도감의 뒤편에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유가 있었다.
맥도날드의 역사는 원래 모리스 맥도날드와 리처드 맥도날드가 캘리포니아에서 운영하던 햄버거 가게에서 시작되었다. 1954년 레이 크록(Ray Kroc)이라는 밀크 셰이크 기계 판매원이 이들이 만든 햄버거를 먹게 되었고, 그 맛에 감탄하여 사업을 키워나가자 제안한다. 이듬해 미국 일리노이주에 맥도날드의 첫 정식 프랜차이즈 매장이 열렸고 크록의 뛰어난 사업 전략 덕분에 맥도날드는 거대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으로 발돋움했다.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맥도날드는 미국을 넘어선 전 세계 제1의 패스트푸드 제국으로 성장한다.
맥도날드가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요인을 여러 가지로 짚어볼 수 있으나 대체로 저렴한 가격, 일관성 있는 맛, 빠른 서비스 등을 언급할 수 있다.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은 표준화된 품질의 서비스와 맛을 보장한다. 가령 나는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맥도날드 매장에서도, 이집트의 카이로나 대한민국 서울에 위치한 매장에서도 비슷한 품질과 크기의 빅맥세트나 치즈버거를 먹을 수 있었다. 나와 같이 변수를 싫어하고 예측 가능한 상황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인 장소라 할 수 있다.
매장 디자인뿐 아니라 맥도날드의 메뉴와 가격, 음식 주문의 방식, 음식을 먹고 난 뒤 처리 방식은 효율성을 원칙으로 하여 예측 가능하고 계산 가능한 방식을 추구한다. 이미 직원들이 음식을 만드는 과정부터 계량화된 규정이 존재한다. 햄버거 패티를 굽거나 감자튀김을 기름에 조리하는 시간과 온도, 햄버거나 치킨을 포장하는 방식에는 규칙이 존재하고, 종업원의 손님 응대 방식도 정해져 있다.
예측 불가능한 세계를 넘나들 때, 특히 낯선 해외에서 변수가 계속되는 상황에 지쳐 있는 순간 프랜차이즈 기업의 매장은 예측 가능하고 안정감 있는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이곳에서 예상치 못한 품질이나 크기의 음식을 먹을 가능성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덕분에 낯선 해외를 여행하는 이들은 글로벌 프랜차이즈 매장을 만나며 반가움과 편안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행할 때 익숙함보다 낯선 환경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매 분기마다 발표하는 ‘빅맥지수(Big Mac Index)’ 역시 이러한 표준화와 계량화 덕분에 존재하는 경제지표다. 빅맥은 표준화된 품질, 크기, 재료로 만들어진 맥도날드의 대표상품이다. 이렇게 전 세계에서 동일한 품질의 상품을 팔기 때문에 각국의 빅맥 가격을 달러로 환산해 비교해 보면 국가별 물가수준이나 환율의 적정성 등을 추정할 수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맥도날드 뿐 아니라 수많은 글로벌 프랜차이즈 매장이 이러한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을 제시하며 성장했거나, 성장 중이다. 전 세계 스타벅스 매장에는 대부분 비슷한 음료와 메뉴가 존재하고, 비슷한 색깔과 분위기의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각국의 코스트코 매장에 직접 들어가지 않아도 우리는 그 안에 거대한 창고형 매장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조지 리처는 저서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를 통해 사회 전반에 효율성을 앞세우며 나타나는 프랜차이즈화 현상을 짚어냈다. 패스트푸드 뿐 아니라 교육, 의료, 여행, 여가, 정치, 가정 등 사실상 사회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과학적인 경영과 합리적 사고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는 이러한 변화를 맥도날드화(McDonaldization)라 명명했다.
맥도날드화가 진행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프랜차이즈 기업이 운영하는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하고, 프랜차이즈화 된 병원에 가서 진료와 수술을 받을 수 있으며, 일정한 맛을 예측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빵집에 들어가 빵을 구매한다. 전 세계 다수의 사람들이 예측 가능하고 합리적이며 표준화된 세계에 안착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맥도날드화가 ‘진보’이며 ‘아름다운 발전’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리처에 따르면 맥도날드는 고객의 편리와 효율을 내세우지만 정작 매장에서 손님은 음식 주문을 위해 계산대까지 움직여야 하며, 음식을 버리는 일도 고객의 몫이다(고객을 은근히 부려먹는 셈인데, 키오스크 주문이 확산되는 요즘에는 더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맥도날드화는 자연환경에 광범위한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예측 가능한 형태의 감자튀김을 손님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모양의 감자를 생산해야 한다. 이러한 감자를 생산하는 과정은 미국 북서부 지역 태평양 연안의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스타벅스 매장에서 사 먹는 커피 한잔의 가격은 비합리적으로 비쌀 때가 많다. 5천 원 짜리 스타벅스가 있다면 커피의 원가는 650원(약 13%)에 불과하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윤을 가져가는 것은 스타벅스라는 기업, 또는 그 매장이 위치한 건물의 주인이다. 이처럼 인간의 편리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진행되는 합리화의 과정이 아이러니하게도 비합리성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소비자들은 기업이 예측하는 숫자의 대상으로 소외되기 쉽다. 수많은 프랜차이즈 기업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합리화와 효율성의 산물이지만, 한편으로 인간 소외의 현장이기도 하다.
2년 만에 한국에 돌아오니 동네에 단 두 개 존재하던 스타벅스 매장은 어느새 5개로 늘어 있었다. 치킨집, 베이커리, 마트와 슈퍼, 가구점 등 많은 매장이 몇몇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의 간판으로 정리되어 가는 분위기. 그 변화를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었다.
가끔 이집트에서 맥도날드 간판을 보며 안도했던 그날을 떠올려본다. 나는 여전히 프랜차이즈 매장의 예측가능성과 표준화된 서비스를 선호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동네 음식점이나 커피전문점도 가끔 찾아가 본다. 예전에 비해 생각이 조금 바뀌었기 때문이다. 10년 전 프랜차이즈 매장의 간판을 보았던 그 순간 안도감과 반가움이 마음속에 가득했다면, 지금은 마음 한편 어렴풋한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 삶 속 합리화되지 않은 작은 틈새를 잃어가고 있다는 두려움, 그 속에서 정작 '나'라는 인간은 소외될 수 있겠다는 불안감이 다가온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특색 있는 음식점과 동네 미용실, 체인점이 아닌 작은 슈퍼, 더불어 개성과 창의성이 담긴 일상을 잃어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참고자료-
조지 리처,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개정 8판, 풀빛, 2017년)
네이버 지식백과 : 맥도날디제이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382860&cid=40942&categoryId=3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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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리 말씀드렸던 바대로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에는 10월 12일(화) 저녁 6시 ~ 8시 사이에 다시 글을 발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