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랑선생 Jul 13. 2021

인간관계의 적정선을 찾는 방법

왜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처를주고받기 쉬울까

소울메이트, 완벽한 인간관계에 대한 환상


  

 십 년 전 그날, 다툼의 원인은 작은 쓰레기통이었다. 결혼 준비가 한창이던 시기였다. 신혼살림을 사기 위해 남편과 마트에 들른 나는 조그만 쓰레기통을 신중하게 고르고 있었다. 이 조그만 살림살이가 화장실과 안방 중 어디에 필요할지, 나의 예비신랑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남편은 한동안 쓰레기통을 노려보더니 귀찮은 말투로 말했다. 네가 알아서 해. 뭘 쓸데없는 걸 가지고 고민해. 되돌아보면 남편은 3,40분간 이어진 쇼핑으로 잔뜩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당시의 나 역시 꽉 찬 결혼 준비 스케줄로 예민해져 있었다. 쓰레기통을 던지듯 카트에 쑤셔넣으며 서운함을 한가득 표현했다. 그날의 다툼이 ‘쇼핑에 대한 서로의 인내심 차이’ 때문에 벌어졌다고, 현재의 나는 관대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서른 살의 나는 그다지 너그러운 마음 상태를 갖춘 상태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서운함과 함께 실망감, 불안감까지 느꼈다. 우리가 쓰레기통 하나로도 맞지 않는 관계인 건가. 이럴 수가.

 

 결혼 후 신혼 시절에는 주로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때문에 다툼을 이어갔다. 나는 드라마를 즐겨 보았고, 남편은 야구중계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서사와 맥락이 있는 콘텐츠를 좋아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일로 복잡해진 머리를 식혀줄 프로그램을 선호했다. 이미 3년의 짧지 않은 연애 기간을 거친 우리가, 이처럼 사소한 일로 싸울 거라고 결혼 전에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상대의 취향에 실망한 우리는 서로에게 말했다.

 “저렇게 특이한 프로그램을 보다니. 네 취향 참 특이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너도 좀 좋아하려고 노력해봐야지. 이런 걸 지루해하다니 믿을 수 없다.”


 모든 일을 확대 해석하기 좋아하는 나는 우리의 차이를 자못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앞으로 몇십 년을 같이 보낼 사이인데, TV 프로그램 선호도조차 맞지 않다니. 이건 우리가 심각하게 맞지 않는다는 증거 아닐까. 이 고민은 때때로 원인과 방향을 바꾸며 내 머릿속을 찾아왔다. 사실 우리 부부는 경제적 관념이라든가 삶의 커다란 방향성 측면에서 나름대로 잘 맞는 사이였다.  그러나 미세한 삶의 모습에서 어긋나는 일은 잦았다. 개그 코드, 좋아하는 취미, 선호하는 인물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 원가족을 대하는 태도 등 그 모든 것이 N극과 S극처럼 맞지 않는다는 걸 가끔씩 느꼈다.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기질이나 취향을 깎아내리고는 했다. 나에게 맞춰보라며 상대에게 내 방식과 취향을 강요하는 일도 있었다. 


 되짚어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다. 이른바 '소울메이트'라는 환상이 은연중에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었다. 척하면 마음이 통하는 관계. 삶의 모든 측면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의 친밀감.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 줄 것이라는 환상. 이 환상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증거가 나타나면 심각하게 우리 사이를 고민했다.  


 배우자만큼은 아니었으나 가끔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환상을 품는 일도 있었다.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들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쉽게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은 나와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지내왔으니, 일정한 상황이나 사건에 대한 해석을 비슷하게 할 거라 여겼다. 그러나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서로의 취향이나 견해에 미묘한 차이는 있었다. 비교적 인간관계에 대한 환상이 없는 인간이라 스스로 자부했으나, 늘 그렇지는 않았다. 가까운 사이에서 미묘하게 어긋나는 부분이 느껴질 때마다 서글프고 서운하다는 마음이 찾아왔다.

   


인간관계의 적정한 거리는 얼마만큼일까,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오르막길>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 1848-1894)는 프랑스의 부유한 군수물자 사업가 집안에서 재판장이었던 마셜 카유보트의 아들로 태어났다. 25세에 이미 아버지에게 많은 유산을 상속받아 평생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카유보트의 자화상(1892) @wikiart


카유보트는 그림 공부를 시작한 후,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인상파 화가들과 교류를 하게 된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치는 한편, 여유로운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료들을 경제적으로 돕는 일도 도맡았다. 르누아르, 피사로, 세잔 등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수십 점 구입하며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살았던 19세기 파리는 조르주 외젠 오스만 남작(당시 파리의 시장 정도의 위치에 있었던 인물)이 실시한 정비 사업으로 새롭게 태어난 도시였다. 산업혁명 이후 농촌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면서 지저분한 위생 상태와 범죄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파리를 개조하기 위해 이루어진 사업이었다. 꼬불꼬불한 골목은 방사형 대로와 직선 도로로 바뀌었으며(사실 이러한 거리 정비에는 시위대 진압을 위한 정치적 목적도 존재했다) 하수시설의 정비와 아파트 공급, 공원 조성 등으로 파리는 세련되고 화려한 도시로 변모했다. 변화하던 파리의 모습을 카유보트는 치밀한 화면 구성과 독특한 구도, 사실적인 표현으로 그려냈다. 파리의 모습을 그려낸 카유보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특히 시카고 박물관에 위치한 <비 오는 날, 파리 거리>(1877)등의 작품이 특히 유명하다. 


카유보트의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 (1877)와 <유럽 다리>(1876). 카유보트는 변모하는 파리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화폭에 담아냈다. @wikiart

 

사람과 풍경을 정교하게 화폭에 담아낸 카유보트의 그림 중에서도 <오르막길>(1881)은 화사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르막길> (1881, 구스타브 카유보트) @wikiart

 

 화창한 햇살 아래 두 남녀가 오르막길을 걸어가는 중이다. 당대의 여타 작품들과 달리, 그림은 두 인물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남녀의 모습 뒤로 그늘진 전경이 이어지며, 앞으로는 오르막길 풍경이 펼쳐져 있다. 남성은 야외 놀이에 적합한 모자를 쓰고 있으며, 팔 동작으로 미루어보아 파이프 담배를 쥐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끝단에 장식이 달린 드레스를 입은 여성은 그 차림새로 보아 중산층 이상의 신분으로 보인다. 여성의 뒷모습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붉은색 양산이다. 밝은 햇살이 펼쳐내는 풍경 속에서 여성의 양산은 이목을 끈다. 태도나 옷차림새로 미루어보아 두 사람은 여유로운 산책 시간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두 사람은 어떤 관계일까.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일 수도, 어느 정도 삶의 시간을 공유한 부부일 수도 있다. 두 인물의 관계가 정확히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두 사람 사이에 일정한 간격이 존재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대개 그림 속에서 연인이나 부부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밀착된 형태로 표현된다. 


 그러나 <오르막길> 속 남녀는 다르다.  당시 중산층 이상의 남녀는 일정 거리를 두고 걸어가는 것이 주요한 관행이자 예절이었다고 한다. 부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그림 속 두 남녀도 이러한 관습을 따르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 간의 거리가 존재하는 데도 이것이 심리적 장벽이나 단절된 관계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느껴진다. 오히려 일정 거리를 두고 걷는 남녀의 모습은 관계의 여유로움, 익숙한 친밀감을 보여주고 있다.   


  

왜 가까운 관계일수록 상처를 주고받기 쉬울까



 <오르막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의 여유로운 뒷모습은 ‘거리두기의 미학’을 떠올리게 한다. 한껏 밀착된 인간관계, 서로 처음부터 마음이 통하는 관계만이 우리에게 깊은 만족감을 주는 것일까. 일정 거리를 둔 채 걸어가고 있는 남녀 사이를 보며 질문을 던져 본다.


우리는 때때로 ‘거리두기’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가 나에게 거리를 둔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파오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처럼 밀착된 관계가 이상적이라는 편견 때문에, 적정한 거리가 만들어내는 관계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되돌아보면 나는 남편과 내 사이가 항상 얼굴을 마주 보거나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는 상태이기를 바라왔다. 서로의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정도의 단계,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이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우리의 관계가 이러한 환상과 기대치에서 어긋난다 생각하면, 이를 심각한 균열과 갈등으로 여겼다. 재빨리 균열을 바로잡고 거리를 좁히기 위해 서로의 삶의 영역에 침범하는 일도 잦았다. 나의 취향이나 삶의 방식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일도 있었다. 서로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할 때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나쁜 의도에서 비롯된 행위는 아니었다. 그러나 서로에게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했던 말들이 서로를 상처 내고 있었다. 애정을 단단히 굳히려는 마음 때문에, '상대의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잊고 있었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마음을 나누었다 생각한 친구들, 가족 간의 관계 속에서도 종종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 하나로 상대에 대한 존중을 놓아버리기 쉽다. 친밀한 관계이기에, 같은 시간대와 공간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 간의 적정선을 자주 잊는다. 


  친밀한 관계라 해도 완벽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이를테면 성인이 되어 만난 배우자는 기질, 취향 성장배경이 다를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일 수 있으나 부모는 나름의 시대 배경 속에서 나름의 성장과정을 거쳤을 테고, 자녀는 이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다. 심지어 같은 부모 밑에서 함께 자란 형제라 할지라도 출생순위나 기질은 제각각이기에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자주 잊고 '네 마음은 왜 내 마음 같지 않을까'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때로는 ‘네 마음과 내 마음이 같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해받고 싶은 마음, 말하지 않아도 통하지 않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고, 이는 상처를 주고받는 결과로 이어진다. 너와 나의 바운더리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바람이다. 그러나 내 기질, 마음, 취향과 똑같은 걸 공유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것 역시 냉정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내 마음을 완벽하게 공유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는 사실, 누구도 완벽히 내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은 때로는 슬프게 느껴지나, 때로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배우자나 친구, 가족이라 할지라도 서로의 삶의 방식에 대해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점. 모든 측면에서 하나 되기를 함부로 바라지 않는 것. 가까운 관계라도 내가 지켜내야 하는 삶의 영역을 알아두는 것. 모든 길을 손잡은 상태로 함께 걸을 수 없음을 인지하는 것. 이것이 인간관계의 적정선을 찾는 방법 아닐까.  적당한 거리두기는 누군가에게 심리적으로 벽을 치고 담을 쌓는 태도와는 다르다. 서로의 삶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한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 10년이 된 지금도 나는 남편과 다양한 측면에서 어긋나고 다툰다. 인간관계가 대체로 그러하듯, 우리 부부의 관계에 칼 같은 거리나 명확한 공식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소울 메이트에 대한 환상을 버린 지금 상대방과 어긋나는 모든 지점을 슬픈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함께 지내는 모든 시간 동안 우리는 적정한 거리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조금 더 많이 통하는 관계, 나를 더 쉽게 이해해주는 관계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내 영역을 지키기 힘든 시점에는 그런 관계에서조차 상처 받기 쉽다. 타인의 삶의 영역과 내 삶의 영역은 엄연히 다르다. 가까운 상대라고 하더라도 함부로 그의 인생을 평가하지 않고, 반대로 친밀한 누군가가 내 삶을 함부로 평가할 때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흔들리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억지로 하나 되려 애쓰지 않더라도 '이해'하려 노력하거나 '상대를 적당히 놓아두는 태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적정한 거리가 오래도록 누군가와 함께 오르막길을 걸어가도록 도와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출간을 알려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