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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Oct 26. 2021

글쓰기 덕후의 삶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  

나는 덕후의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남편도 나를 부를 때 가끔 '에라이, 이 덕후야'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과몰입이 취미이자 특기였다.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반복해하는 편이었고, '마음이 꽂히는 대상'은 인생 발달단계마다 수시로 바뀌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사운드 오브 뮤직>을 50번 이상 거듭 보며 시간을 보냈다 (되돌아보면 좋아하는 영화 선정의 기준을 종잡을 수 없다). 책도 100번 이상 같은 걸 반복해서 읽는 식이었다.


외국어 덕후나 운동 덕후가 되었다면 인생에 큰 도움을 받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주로 실생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분야에 꽂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만화책 수 백 권과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만 보느라 학창 시절을 거의 다 보냈다. 연예인 덕질은 말할 것도 없다. 몇 년 전에는 미국 AMA 시상식에 방탄이 나온 걸 우연히 봤는데, 그날로 BTS에 빠져들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DNA' 노래만 반복해서 틀다가 제발 좀 멈추라는 남편의 호소를 듣기도 했다.   


과몰입은 부작용을 부르게 마련이다. 내가 빠져든 일에 정신을 못 차려서 현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거나, 과몰입에서 빠져나올 때 후유증을 세게 앓기도 했다. 무언가 빠져들 대상이 없으면 공허함을 느껴 다른 몰입의 대상을 찾아 헤매는 일도 많았다. 


그런 내가 2~3년째 과몰입하고 있는 대상은 역시 글쓰기다. 사실 처음 혼자 책을 쓸 때는 내가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다. 학교에 근무할 때 말로 하던 수업을, 글로 대신 쓴다는 정도의 생각이 강했다. 글쓰기라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 건 브런치를 하면서부터다. 글쓰기와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에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고백하건대 나는 학창 시절부터 글쓰기에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고, 문학소녀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글쓰기 공간에 발을 들인 이후 누구보다 진심으로 열심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과몰입이 시작된 셈이었다. 매일매일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그러나 어떤 분야든 덕질을 하다 보면 기쁨과 함께 나름의 애환이 오게 마련이다. 2년 동안 글쓰기에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몇 가지 어려움도 느꼈다. 풀어보자면 이런 것들이다. 


 첫째, 글쓰기는 취미도 특기도 될 수 있지만, 그걸 관심분야라고 누군가에게 말하기 쉽지 않다. 일단 낯선 사람으로부터 "취미가 무엇이세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글쓰기요."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부분 비슷하다. 호기심 담긴 시선과 함께 "우와, 글쓰기요? 어떤 종류의 글을 쓰세요?"라던가, "어머! 글을 잘 쓰시나 봐요?"라는 식의 질문이 이어진다. 물론 다른 취미의 경우에도 비슷한 추가 질문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확실히 취미가 '수영'이라던가 '독서'라고 대답했을 때와는 조금은 다른 시선을 받는다. 애초부터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아서 다른 취미를 둘러댈 때도 많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글쓰기는 다른 취미에 비해서 뭔가 '잘하는 사람만 하는 행위', '고상한 사람들이 하는 행위'내지는 '특정 목적(주로 책 쓰기)을 위해 하는 행위'라고 여겨질 때가 많다. 내가 이 행위를 지속하는 이유나 방식을 구구절절 설명하기 어려웠다. 물론 책을 출간하고 나면 내 책 얘기를 꺼내면 된다. 그러나 이때부터 또다시 출간에 대한 다른 질문이 이어지게 마련이고, '책을 낸 너무너무너무 대단한 사람'으로 나를 보거나 '요즘 아무나 책을 내는 세상이네'라는 식의 양 극단의 반응을 접할 때가 많았다. 어느 쪽도 반응하기가 쉽지 않아 애초에 글쓰기가 취미라고 말하지 않는 경우도 생겼다. 


 글쓰기에 대한 고백을 마친 후에 주변의 열띤 응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돈도 안 되는 걸 어째서 자꾸 쓰냐', '왜 실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걸 하냐', '돈이나 직접적인 성과가 나올만한 다른 분야의 글쓰기를 해보는 건 어떠냐'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 일도 다반사였다. 취미나 특기조차 실질적으로 득 되는 걸 해야 한다는 시선이 많으니까. 


내 경우에는 해외 살이를 하면서 1년 동안 브런치에 글을 썼는데, 가정 보육을 하고 책을 쓰면서 추가로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브런치에 글 올리는 걸 2~3명 빼고는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몰랐기에(이 공간에는 내밀한 이야기를 쓴 글이 많아서 말하지 못했다), 힘들어도 그 힘듦을 어디에 털어놓기가 어려웠다. 설명하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가늠이 안 되어서 말을 꺼내지 못한 이유도 있다. 악기 연주, 헬스 같은 취미는 경험해본 사람들이 많으니 정보를 공유하기도 쉽고, 어려운 부분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기도 쉽다. 그러나 글쓰기를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어려움을 털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번째 애환은 외롭다는 사실이다. 몹시 외롭다. 글쓰기는 결국 혼자 해야 되는 행위다. 노트북 앞에 앉아 홀로 생각하고 혼자 공부해서 흰 여백에 대고 타이핑을 해야 한다. 외로운 게 너무 싫어서 한국에 온 나인데, 귀국 후 석 달째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많다. 대화가 잘 통하는 누군가를 만나 하루 종일 수다를 떨고 싶은 욕구가 불쑥불쑥 샘솟는다. 그러나 지금 많이 자제하고 있다. 정해진 날까지 원고를 마감해야 하고, 그러려면 매일 정해진 분량의 글을 써야 되니까. (그렇지만 남편에게서 '지금의 상황은 모두 네가 벌인 일'이라는 핀잔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모두 내가 벌인 일이니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속도를 조절하며 글을 쓰는 게 유일한 답이다). 


 해외살이를 하면서 에세이를 쓸 때는 외로움이 더욱 심했었다. 에세이를 쓰려면 내 과거를 돌아보거나 주변의 많은 것들을 되짚어보면서 관찰해야 한다. 가령 인생의 구차한 날에 대한 글을 쓰려고 대여섯 시간동안 과거의 기억들을 헤집어 본 적도 있었다. 유쾌하지 않은 기억만 떠올리다 보니 정말 삶이 구차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올해 초에는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데다 정서까지 불안정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뭐 대단한 글쟁이라고 정서 불안까지 겪어가면서 글을 써야 되나'라는 생각도 가끔 했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을 거듭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기분이 가라앉거나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이런 종류의 외로움에는 여러 가지 해결방안이 있다. 함께 글을 쓸 누군가를 구한다거나 브런치에서 이웃분들과 의사소통을 활발히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된다. 나도 이런저런 마감이 끝나는 11월 이후에는 해결 방안을 생각해볼 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있다. 결국 글쓰기는 나 혼자 해야 하는 행위다. 외로운 시간을 견디지 않고서는 글 하나를 끝내기 어렵다.  


세 번째 애환. 글쓰기는 다른 행위에 비해 가성비가 떨어질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1분 안에 행복해질 자신이 있다. 그런데 글쓰기는 3~4시간을 해도 즐거움이 즉각적으로 오지 않는다. 몇 시간, 때로는 며칠을 집중해야 어쩌다 한 번 기쁨이 온다. 


 성과 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SNS에서 '글을 쓰고 책을 써서 네 인생을 바꿔라!'라는 식의 광고를 가끔 접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당장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고 내 인생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책을 출간해도 일상은 비슷하게 이어진다. 


 혼자서 쓴 첫 책(청소년 교양서)을 출간하고 나서, 이 책 쓰기라는 일 자체는 인풋 대비 아웃풋이 몹시 떨어지는 작업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혹시 오해가 있을까 싶어 이야기하자면 내 첫 책은 지금까지 5쇄를 찍었다. 출판계의 상황을 보면 결과가 나쁘지 않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역시 노력에 대비해 고려해보면 책 쓰는 행위 그 자체가 큰 보상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 책 한 권 내서 인생이 확 바뀐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니 '책을 내고 나면 너는 출판계의 신데렐라가 될 것이며, 인생이 한달음에 바뀔 것이다'라는 식의 광고글은 지나치게 믿지 않는 걸 추천한다.  






  누군가는 내 글을 읽으며 '어휴, 책도 내고 공모전 대상까지 받은 인간이 왜 이리 말이 많아.'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분명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도 몹시 운 좋은 케이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글쓰기에 진심으로 임한 만큼 갖가지 희로애락을 느껴본 나다. 글을 쓴 뒤로 '돈도 그다지 안 되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한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는 수도 없이 자주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굳이 더 듣고 싶지 않아서, 원고 투고나 작년 브런치 북 프로젝트 준비는 주변에 알리지 않고 혼자 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바쁜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글을 써본 셈인데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리 운이 좋아도 모든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게 반복된다. 브런치에 글쓰기도, 공모전도, 투고도, 책 쓰기도 열심히 해도 일이 괜찮게 풀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글이 술술 풀려 기분이 상쾌할 때도 있지만 도리어 분노나 우울이 밀려오는 순간도 있다 (며칠 전만 해도 청소년 교양서 원고를 수정하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너무 힘들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글을 처음 쓰는 사람도, 책을 몇 권 쓴 사람도, 베스트셀러 작가도 모니터에 뜨는 흰 여백 앞에서는 공평하다는 사실이다. 누구든 백지에 활자를 채워나가야만 글을 채울 수 있으니까. 


 애환을 상쇄할만한 글쓰기의 기쁨이 찾아오는 순간도 있다. 인스타그램에도 이미 쓴 이야기인데, 글쓰기가 주는 즐거움과 뿌듯함이 가끔 찾아온다.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올 때 느끼는 쾌감은 희소한 만큼 각별한 감정이다. 기똥찬 글감이나 아이디어가 생각나서 희열을 느낄 때도 있다. 본업이 아닌데도, 꼭 해야 할 일이 아님에도, 의무적으로 '뭘 쓰지? 오늘은 뭘 써야 할까'라는 식의 생각이 이어지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글을 쓰면서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에도 기쁨은 찾아 온다. 이건 브런치를 하면서 알게 된 기쁨이다. 내 창작물이 누군가에게 읽힌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나는 대체로 이전에는 혼자 덕질의 대상에 몰입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온라인에 글을 쓰면서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누군가와 교감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물론 반대의 경우, 누군가의 항의나 반론을 받아 마음이 힘들 때도 있기는 하다) 


책쓰기에도 나름의 장점이 존재한다. 일단 책이라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고 나면 주변 사람들이 괜찮은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봐줄 때가 있다. 내가 다소 특이한 생각을 입밖으로 내뱉어도 이전에는 사람들이 '쟤 좀 돌아이 기질이 있네' 정도로 반응했을 텐데, 가끔 '쟤 책 낸 저자잖아'라고 말하며 그럭저럭 받아주는 순간이 있다. (물론 가끔)


글을 쓰고 책을 쓰면서 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을 할 때도 있다. 일단 온라인에 글을 쓰니, 나처럼 글이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 어디에도 차마 털어놓지 못하던 내 세계를 이해받는다는 느낌,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강연이나 기고의 기회도 그렇지만 생각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때도 있다.   


물론 이 글쓰기 덕후의 삶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내 인생에서 덕질의 대상은 수시로 바뀌어 왔으니까. 그래도 이번 몰입은 오래가기를 바라고 있다.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글쓰기 덕후로 남고 싶은 게 지금의 바람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의식의 흐름대로 일기처럼 글을 썼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는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에 글을 올릴게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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