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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Sep 13. 2022

글쓰기와 줄행랑치기

<그림의 말들> 출간 후기와 서평 이벤트 안내입니다.


동네 커피숖에 앉아 키보드와 백스페이스를 번갈아 누르는 일은 이제 익숙합니다. 글이 영 풀리지 않아 양손 셋째 손가락을 튕기며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라고 누르는 일도요. 백스페이스로 그 문장을 거두어들이는 동작도 능숙하지요. 올여름 저는 고개를 옆으로 저으며 이 행위를 반복했어요. 동작의 횟수만큼 어디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명화를 주제로 한 에세이 <그림의 말들>의 원고를 수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난이도 백만 점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저는 작년에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이라는 명화 에세이를 낸 적이 있었고, 그림이 들어간 에세이 작업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 작업은 난항을 거듭했습니다. 출판사나 편집자와의 문제가 아니라, 제 머릿속 안의 싸움이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심리적 거부감이, 의문이 끊임없이 머릿속에 솟았거든요.


원고 작업할 때의 사진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제 몹쓸 상상력 때문이었습니다. 출간 후 제 자신이 느낄 스트레스가 명확히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결과에 매달리지 말자!라는 다짐을 많이 했고 의연한 척 글도 꽤 썼지만, 그건 주로 정신이 바로 섰을 때, 멘탈이 엄청나게 튼튼할 때 이야기입니다. 역시나 한 번씩 찾아오는 불안감은 가시지 않더라고요.       


 “책이 출간되면 책 나온 걸 어떻게 알려야 하는 걸까”

“이 원고가 책으로 나오면 과연 누가 봐줄 것인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다고, 소리 소문 없이 묻힐 수도 있는 원고를 쓰고 있는 것인가.”       


 과거 첫 책 출간을 하기 전의 저는 ‘많. 관. 부’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같은 걸 세상에 외칠 필요 없이 ‘글’만 알려지고 나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는, 그런 아름다운 상황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순수한 바람이었으나, 에세이 출간되고 나서는 그런 바람은 통하지 않더군요. 일단 세상 사람들이 나를 모르니까 내 새끼(내가 쓴 책) 도 모르는 그런 상황이 옵니다. 몇 달 전에도 이런 걱정을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여덟 살 난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엄마 책을 만들지 말고, 닌텐도나 포켓몬 빵을 만들어. 그럼 알리지 않아도 그냥 잘 팔려.” 그렇지만 제가 포켓몬빵이나 닌텐도 기계를 만들 재주는 없고 책을 쓸 줄 아니까,  쓴 책이 나오고 나면 스스로 잘 알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책 표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작년에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이라는 명화 에세이를 낸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이었기 때문에 교보문고 매대에 한 달 동안이나 전시되는 어마어마한 메리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책은 다릅니다. 출판사에서 해주는 홍보가 당연히 있을 테지만, 내가 내 책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는 그런 상황이 올 거라는 매우 합리적인 상상을 하게 되더군요. 경험상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으리라는 것도 직감했습니다.      


 심지어 이 책은 명화를 주제로 하는 인문교양 에세이입니다.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을 내고 나서 “그림 전공도 아니고 심리학 전공도 아닌데 비전공자가 왜 이런 카테고리의 에세이를 내는 거냐.”라는  식의 평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이 틀린 바는 없습니다.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우리나라에서는 인문 교양 카테고리의 책을 낼 때는 관련 전공이나 학위, 이력, 경험이 일정한 역할을 하긴 합니다. 책 출간 후 홍보를 할 때나 독자들이 책을 선택할 때도 이런 점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는 합니다. 어찌 보면 어느 정도 타당한 일입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작가의 이력을 먼저 보게 마련이거든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저는 원고 작업을 하면서 제 스스로에게도 계속 물었습니다. ‘내 본분을 벗어난 글을 쓰는 거 아닐까?’ '내가 이 원고를 쓸 자격이 있는 걸까?'라는 불안감이 솟더군요. 아무에게도 섣불리 말 못 하지만 내심 속을 끓이는 고민이기는 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책의 내용 때문이었죠. 인생! 참으로 거대한 말입니다. 삶이나 인생의 진리에 대해 함부로 논하는 사람을 저는 약간 경계하는 편입니다. 꼰대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꼰대들은 본인이 꼰대인 줄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그래서 더욱 진정성을 품고 열의를 다해,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유형의 분들을 꺼리거나 예민하게 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뒤집어 보면, 저 역시 그 누구보다 꼰대스러워지고픈 욕망을 마음속 깊이 품고 있다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훌륭한 척하거나 인생의 비밀을 아는 척하거나 초연하거나 담담한 척하고픈, 그런 모습으로 보이고픈 욕망이 제 안에 충분히 존재하니 더 예민해지는 거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글을 수정하고 새롭게 쓰려고 하면 머릿속 자아 중 하나가 ‘네가 인생에 대해 뭘 안다고 이렇게까지 글을 쓰는 걸까?’라는 말을 5분에 한 번씩 글 쓰는 자아에게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의문이 또다시 글쓰기에 어려움을 가져왔지요.       






 

 다양한 의문과 회의감이 머릿속을 차지하자 문득 줄행랑을 치고 싶었습니다. ‘계약이고 뭐고 아무래도 원고 그만 고치고 도망을 가야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더군요. 하지만 이 시점에서 도망을 간다면 참으로 민망한 일이 벌어집니다. 편집자분은 이전에 원고 작업을 함께 했던 분이고, 출판사는 내가 정해진 기한 안에 마감을 할 거라 믿고 계약을 했을 테니까요. 아수라 백작처럼 저 혼자 편을 둘로 나누어 도망을 갈까 말까를 외치면서 며칠을 보내는 상황이 왔습니다.



자아분열의 현장



그러다 갑자기 제 나이가 십 대나 이십 대도 아니고 서른도 아니고, 심지어 마흔을 넘었다는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이건 도망을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신을 바로 세우자. 적어도 도망은 가지 말자. 마음을 좀 다독이고 대안을 찾아보자. 다짐을 했습니다.


자격에 대한 고민이나 결과에 대한 불안감은 오히려 잠재울 방법이 있었습니다. 내가 비전문가니까  오히려 작품을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장점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그림을 선정할 때 이미 존재하는 해석을 다 찾아보고 자료조사를 해서, 그 밑바탕 위에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가기는 합니다- 그리고 책 안에는 제 전공에 해당하는 사회학이나 경제사 관련 내용도 어느 정도 넣었습니다.



그리고 마음도 다독였지요. 웃픈 일이지만 책이 히트 치지 않는 건 무조건 마음 아픈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당연히 책이 잘 되면 좋기는 하지만요) 책이 소리 소문 없이 묻힌다 해도, 내 이야기는 읽는 사람만 알고 아는 사람만 아는 사연이 된다고 생각하면 비교적 마음이 자유롭고 가벼워집니다. 지나친 정신승리일까요? 그러나 제가 경험해본 바에 따르면 글쓰기와 책 쓰기에는 의외로 정신승리가 중요합니다.


  더불어 이번 원고에서 중요시한 부분이 논리적인 글의 흐름입니다. 편집자분이 글을 전반적으로 읽으면서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거나 문단 하나가 글의 전체 흐름에서 튀는 경우에는 전부 피드백을 주셨어요. 그 부분을 대다수 수정하거나 바꾸었습니다. 온라인에 글을 쓸 경우 가독성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책이라는 매체에 글이 담기는 경우  좀 더 글 전체의 흐름이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온라인 글을 쓸 때보다는 글의 전반적인 흐름과 논리성을 염두에 두며 원고를 수정하는 게 중요한 일이 되더라고요.



'그림의 말들'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에세이의 장점을 되새기면서 마음을 다독이는 데 힘을 많이 썼습니다. 에세이의 엄청난 장점이란 이런 겁니다. 저는 오랫동안 제 똥멍충이 같은 면을 인정하는 게,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팠거든요.


 예민하고 내향적인 성격 탓으로 어릴 때 대다수 집단에서 우물쭈물 겉돌았었다는 사실이, 어릴 때 운동을 지독하게 못해서 놀림받던 기억이, 힘 들여서 낸 내 책이 몹시 안 팔리던 당시의 괴로움 같은 것들이, 해외에서 코로나로 1년 반 동안 가정 보육을 하며 스스로가 많이 무력하게 느껴졌던 순간이, 이따금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었어요. 따지고 보면 똥멍충이 같은 게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도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흰 종이에다가 써서 아무도 모르는 땅 속에 묻어두고 싶은 사실들이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에세이를 쓰며 제 똥멍충이 같은 면을 드러내면 좀 덜 아픕니다. 심지어 어떤 때는 글의 웃긴 소재조차 되고 읽는 분들께 은근한 위로가 되기도 하지요. 이런 면을 발판으로 독자분들께 도움 될만한 이야기를 건넬 수도 있습니다. 이건 확실히 다른 분야에서 경험하기 힘든 에세이의 마법, 매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에세이의 장점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되새기면서 원고를 봤습니다. 인생에 대해 섣불리 아는 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최대한 담담히 해내려고 노력했지요.        





그렇게 길고 지난한 여름을 보낸 끝에 <그림의 말들>이 탄생했습니다.


프롤로그 내용입니다


책은 출산과 비슷해서, 이번 책을 쓰고 난 후 저는 또 다시 조금 더 늙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마음고생도 꽤 있었지요. 프롤로그도 이런저런 이유로 세 번 고쳐 쓰느라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적어도 원고를 살펴볼 때보다는 마음이 편안하고, 저를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게 만들어준 시간을 글로 담아냈다는 것이 기쁩니다. 무엇보다  "네 새끼 너나 이쁘지"라는 이야기 들을 수도 있겠지만 책 표지랑 디자인이 예뻐서 마음에 들기도 하고요.  그리고 지난번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도 그랬지만 이번에는 한층 더 책의 분위기나 글의 완성도가 제 마음에 듭니다. 몸은 여전히 분주하지만 그래도 원고를 쓸 때보다는 안도감이 찾아왔습니다.


<그림의 말들>의 구매 링크입니다.


yes24

교보문고

알라딘



서평 이벤트 안내     


~~~ (마감되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제가 독자적으로 서평 이벤트를 해보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하는 것과는 별개로 제가 그냥 하는 것입니다) 제 사인이 담긴 신간을 5분께 보내드립니다. 제 프로필의 제안 메일을 눌러 주소, 전화번호, 성함을 알려주시면 사인과 함께 짧은 인사말이 쓰인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뷰는 2주 안에   

   

1. 브런치나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어떤 곳이든 SNS 공간 중 하나

2. 온라인 서점(한 줄 평이라도 괜찮습니다)      


두 군데에 남겨주시면 됩니다.      


다섯 분 마감이 되면 바로 마감되었다고 알림을 적겠습니다(마감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가 내일까지는 정신이 좀 많이 없어서 이웃분들 글은 모레쯤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ㅠㅠ 이래저래 죄송한 마음입니다.


다음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 글은 9월 27일(화)에 올리려고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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