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랑선생 Jan 31. 2023

완벽한 행복을 꿈꾸는 당신에게   

인생의 꽃길은 존재할까  

9와 4분의 3 승강장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


 

 얼마 전 영화 <프란시스 하>를 보았다. <결혼 이야기>를 만든 노아 바움백 감독의 2014년작이다. 영화의 주인공 프란시스(그레타 거윅 粉)는 무용수를 꿈꾸는 20대의 여성이다.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에서 소울메이트인 소피와 지낸다. 언젠가 최고의 무용수를 꿈꾸며 수습생 생활을 견디는 프란시스. 꿈이 있고 활발한 젊은이지만, 대개의 20대가 그렇듯 불안정한 조건과 녹록지 않은 현실에 부딪히며 좌충우돌한다. 


영화 <프란시스 하>의 포스터 @네이버 영화

 


여러모로 인상적인 영화였다. 영화 초반, 출판계에서 일하는 소피와 나란히 누운 채, 둘의 꿈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친구 소피(좌)와 프란시스(우)의 모습 

 

소피 : 좋아, 프란시스, 우린 세계를 접수할 거야 

 프란시스 : 넌 출판계를 씹어 먹는 거물이 되고 

 소피 : 넌 유명한 현대 무용수가 되고, 난 너에 대한 비싼 책을 낼 거야.

 프란시스 :우리가 씹던 애들도 관상용으로 한 권씩 사겠지.      

 


프란시스는 소피와의 우정도 영원할 것이며, 이 꿈같은 이야기가 언젠가 실현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후 그녀에게 펼쳐진 현실은 냉혹하다. 룸메이트였던 소피는 프란시스를 떠난다. 월세가 모자라 집에서 나오게 된 프란시스는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고, 급기야 무용단에서도 쫓겨난다. 영화의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이 나눈 꿈같은 대화가 다소 씁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꿈꾸는 프란시스의 모습 어딘가에서 내 20대 시절을 느꼈다. 현실에 발 딛고 있으면서도 발 디딘 것 같지 않은 감정이 수시로 찾아오던 시절. 어딘가 나를 위해 펼쳐진 환상의 세계가 마련되어 있을 거라 믿었다.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거나 뛰어난 능력을 갖추게 되면, 인생이 한 번에 달라질 거라는 상상도 했다. 한 발만 내디디면, 꿈을 이루면 그 완벽한 행복의 세계로 가닿지 않을까 믿었다. 해리포터가 9와 4분의 3 승강장에서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를 타면, 저 세계의 능력자가 되듯.


그 원대한 꿈은 희망도 안겨 줬지만, 때때로 나를 괴로움에 빠뜨리고는 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가끔 불만족감도 찾아왔다. 다른 이들은 자신을 위해 마련된 놀이동산에서 즐겁게 뛰노는 듯 보이는데, 나는? 나는 어째서 이렇게 즐겁지 않은 현실을 버티며 꾸역꾸역 지내야 하지? 젊은 시절 이따금 품던 의문이었다. 

 

30대 중후반의 성장통을 지난 뒤, '사회적 인정과 성공 = 완벽한 행복'이라는 등식을 되새김질하는 시간은 줄었다.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될 거라는 기대감 같은 건 많이 내려놓았으니까. 그러나 이제 능력치 키우기 대신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삶, 문제없는 삶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어떤 외부조건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평화로운 마음의 경지. 그런 걸 이루는 게 진정한 삶과 행복 아닐까? 


 그러나 이번에도 이상과 현실은 번번이 빗나갔다. 평온한 인생을 꿈꿀수록 마음을 뒤흔드는 사건이 벌어졌고, 그때마다 마음이 요동치는 나를 발견했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온전한 삶은 대체 오는 거야? 인생의 꽃길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건가? 




클로드 로랭, ‘그림 같은’ 풍경의 선구자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1600-1682). 풍경화의 대가로 불리는 인물이다. 프랑스의 독립 지역이었던 로렌 지방에서 태어나 '로랭'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본명은 클로드 젤레(Claude Gellée).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 이탈리아로 건너간다. 나폴리와 로마에서 그림 공부를 했고, 아고스티노 타시의 밑에서 그림을 배우며 요리사로 일하기도 했다. 알렉산데르 7세, 클레멘스 9세 등 교황이나 성직자, 귀족들을 위해 그림을 그렸는데 권력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로랭은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며 평탄한 삶을 이어갔다. 


  

클로드 로랭의 모습 

 



 그는 윌리엄 터너 등 후대의 풍경화가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교외 지역에서 그림을 스케치를 한 뒤, 작업실에서 상세한 작업을 거치며 완성작을 만들어냈다. 빛의 마법을 통해 자연 속 고전적인 풍경을 캔버스에 담아내었는데 그가 사용한 구도가 훗날 풍경화의 전통적인 구도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다음은 그의 대표작인 <시바의 여왕이 승선하는 항구>(1648)라는 그림이다.  

시바의 여왕이 승선하는 항구(1648, 클로드 로랭)  @wikiart


클로드 로랭은 신화나 성경의 이야기에서 풍경화의 소재를 찾고는 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시바의 여왕이 예루살렘의 솔로몬 왕을 만나기 위해 출항하는 장면을 담은 것이다. 진분홍색 튜닉을 입은 여왕은 계단을 내려가고 하녀들이 그의 뒤를 따른다. 항구의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인다. 


승선을 준비하는 시바의 여왕과 시녀들의 모습(좌), 분주히 움직이는 항구의 사람들(우)



 특이한 것은 배경이 되는 건물이다. 작품은 구약성서를 배경으로 하지만 건물은 로마식 건축물이다. 로랭은 이렇듯 적절한 풍경을 조합해 그림을 그렸다.  항구 풍경을 그릴 때 실제 경관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 로마의 고대 유적이나 고대의 건축물, 카피톨리움이나 빌라 메디치 같은 로마식 건물들을 항구 풍경으로 옮겨와 조합해 작품의 구도를 만들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로마식 건물의 모습 


사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내용에 따르면 시바 여왕은 낙타를 탄 채 사막을 여행해 이스라엘로 가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로랭은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환상과 실제 건물을 조합한 풍경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실재하지 않을 바다나 숲 등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풍경화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꿈속에 펼쳐지는 그림과 같다. 고대의 유적과 근사한 자연 풍경, 신화나 성서 속 사람들이 어우러져 이상적인 경관을 연출해 낸다. 


 그리고 이 클로드 로랭의 그림은 영국에서 일어난 '픽처레스크(Picturesque)'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그림같이 아름답다”라고 부르는 풍경을 구현한 운동이다.  건축가들은 로랭의 풍경화 속 그림을 따라 풀이나 나무가 우거진 정원에 고대의 유적을 딴 다리나 건물을 지었다. 이를 픽처레스크 양식이라 부른다.      


영국의 스타우헤드 공원의 모습. 픽처레스크 양식의 공원으로, 고대 유적과 비슷한 다리, 건축물을 세운다.  @wikiart


 

가끔 로랭의 작품을 보며 '그림 같은 풍경'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듯 아름다운 경관. 무질서한 현실 속 자연에 비해 안정된 구도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덜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빼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요소도 덧붙여져 있다. 예술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이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풍경이다. 아니,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에 그림 같이 아름다운 것일 테다. 


해가 지는 항구(클로드 로랭, 1639)


 현실 속 삶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가끔 인간은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우리가 희구하는 상상 속 세계, 이상적인 미래는 더없이 아름답다. 그러나 그 풍경은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꿈은 현실 도피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림 같은 삶은 없다 



 현실에 발 딛고 지내기 어렵고, 초라한 현실 속 나를 직시하기 싫을 때가 있다. 인생의 패잔병이 된 듯한 괴로움에 멋진 낙원으로 도망가고 싶은 순간도 찾아온다. 이제는 그럴 때마다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가득 찬 세상은 없다’고 중얼거린다. 인생의 픽처레스크, 그림과 같은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되새긴다.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꿈을 이뤄 모두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고, 동시에 누구의 비난이나 혹평도 받지 않으며, 내 성숙된 인격을 주변에서 알아주고, 돈도 많이 벌고 스트레스 없이 지내는, 해피엔딩의 삶은 존재하지 않음을 상기한다.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이 필요하고, 적당한 환상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 있을 꽃길에 대한 기대 때문에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지 못할 정도라면, 조금 아프더라도 현실을 직시하는 게 차라리 나을 수 있다.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본 뒤 거기에 과도한 자책도, 자격지심도 확대해석도 덧대지 않고 현실에서 바꿀 수 있는 구석을 찾는 게 포인트다.( 실천이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프란시스 하> 속의 프란시스 역시 영화 말미에 자신의 현실과 재능을 직시한다. 무용수가 아니라, 권유받은 사무직 직원으로 다시 무용단에 들어간다. 그러나 꿈과 이상을 내려놓은 것이 온전한 실패는 아니다. 영화 마지막에 프란시스는 자신의 안무를 무대에 올리며 새로운 재능을 펼친다.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제3의 길을 걷게 것이다. 


 꽃길로만 이루어진 삶은 없다. 마음에 드는 풍경만 붙여 넣은 다음 이상적으로 조합된 그림 같은 인생을 사는 것도 불가능하다. 상상 속 낙원 때문에 도리어 괴로움이 가중된다면, 떠올려보자. 살아가는 건 평안하고 그림 같은 인생을 누리는 게 아니라, 문제 있는 삶에 두 발을 딛고 걸어가는 것임을. 



1. 지금까지는 2,4주 화요일에 글을 올렸어요. 제가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앞으로는 매달 1,3주 화요일 저녁마다 글을 발행할게요. 


2. 그래서 다음 주(2월 7일 화요일)에는 글쓰기나 책 쓰기에 대한 글을 발행하려고 해요 : )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2월 보내세요! ^^ 

                     

매거진의 이전글 자아 탐색이 때때로 위험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