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도, 삶의 방식도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된 시대
우연히 중고등학생 아이들 서넛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맛이 서른한 가지 정도 되는, 바로 그 아이스크림이었다. 포장을 뜯자마자 한 아이가 묻는다. 야, 민초파 있어, 여기? 나 반(反) 민초 파인데 반 민초(민트초코에 반대하는 움직임)인 사람 손들어봐! 말을 듣자마자 너도 나도 손을 들며 민초파가 아님을 호소했다.
한 아이는 민트초코의 무자비한 치약 향을 지적했다. 치약의 맛을 어떻게 아이스크림 취향으로 인정하느냐는 얘기였다. 또 다른 아이는 ‘반민초가 국룰(국민 룰의 줄임말, 공식적인 규칙은 아니나 사회 통념상 보편적으로 퍼져 있거나 유행하는 규정을 말한다)’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어디까지나 농담으로 시작해 농담으로 끝난 이야기였다. 그러나 민트초코맛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나는 이 광경에 약간의 숙연함을 느꼈다.
장난과 같은 이 '편 먹기 취향 토론'이 이따금 씁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한쪽이 맞다고 마구 우기거나, 웃자고 시작한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상대를 설득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토론이 한없이 지루해진다. 반대파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대거나, 취향이 다른 사람을 설득해 굳이 같은 편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 때문에 피로감이 쌓이기도 한다.
맛의 영역이 아니라 삶의 모양새에 국룰을 적용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엔 더 그렇다. 나에게도 국룰 강요 같은 게 들어오던 시기가 있었다. 해외살이를 할 때였다.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에 복귀해야 할까, 해외에서 살며 주부 생활을 이어갈까 고민하던 시기였다. 우연히 이 고민이 대화의 주제가 된 날, 나보다 육아 선배인 분의 강력한 조언을 만났다.
“뭐 하러 돌아가서 일 계속할 생각을 해. 애는 아무리 커도 계속해서 엄마가 필요해. 중고등학생 돼도 마찬가지야. 한국 가서 일하면 행복해질 것 같아? 자기는 바쁘기만 하고 애는 불쌍해져. 다 환상이고, 어리석은 생각이야.”
이처럼 (요구하지 않은) 조언 및 강요를 들으면 대체로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호응하는 시늉을 한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척도 한다. 대신 귀와 머리를 닫고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기’ 스킬을 쓴다.
조언에 깔린 논리가 틀린 얘기만은 아님을 안다. 좋은 취지로 건넨 말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마음이 끌리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조언하신 그분은 세모고 나는 네모와 같은 관계다. 세모에게는 세모의 틀이 맞다. 그러나 네모인 나를 세모의 틀에 욱여넣어 봤자, 삼각형은 안 되고 ‘모서리가 부러진 네모’가 되어 버린다는 사실을 잘 안다. 탕수육 부먹/찍먹 같은 얘기는 그나마 재미라도 있지만, '엄마의 역할 수행 모습'에까지 국룰 적용을 하면 인생 자체가 재미없어지는 거 아닐까.
제임스 맥닐 휘슬러(ames Abbott McNeill Whistler.1834~1903). 1834년 미국의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난 예술가다. 화가이며 판화가로 활동했다. 어린 시절을 러시아에서 보냈고, 1855년 파리로 건너가 화가로 데뷔한다. 주로 런던과 파리에서 예술 활동을 했으며, 자유로운 삶의 방식, 호전적 기질을 지닌 인물이었다.
휘슬러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하던 화가였다. 풍경화나 초상화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렸으나, 그림 외적인 교훈을 주거나 이야기를 풀어놓는 데 집중하지 않았다. 예술 작품의 미학적인 측면을 중시해 색채와 형태의 배치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대표작인 <회색과 검은색의 배열, 제1번(화가의 어머니)>(1871) 역시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회색의 차분한 실내를 배경으로 화가의 어머니가 앉아 있다. 흰 모자와 검은 드레스의 단정한 모습이 어머니의 단아하고 우아한 모습을 돋보이게 한다. 작품을 보고 관람자들은 화가와 어머니에 관련된 수많은 사연을 떠올릴지 모르나, 화가는 무심하게도 작품의 제목에 ‘회색과 검은색의 배열, 제1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에게는 어머니의 초상이 의미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누구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라는 말을 남겼다.
휘슬러의 미적인 색채를 중시하는 경향은 1878년,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휘슬러가 그린 1875년작 <검정과 금빛의 야상곡 : 떨어지는 불꽃>(Nocturne in Black and Gold–The Falling Rocket)이라는 작품이 발단이 되었다.
작품 속에는 회색빛 검은 화면이 펼쳐진다. 밤하늘로 추정되는 검은빛 속에 화려한 금색의 향연이 펼쳐져 있다. 뚜렷한 형상도, 주제 의식도 한눈에 파악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그림은 2년 후 런던의 한 갤러리에서 200기니(당시 영국의 화폐 단위. 현재 가치로 약 2400만 원 정도)의 판매금액과 함께 전시되었다.
당대의 유명한 미술 평론가이자 사회 사상가였던 존 러스킨(John Ruskin)이라는 인물이 휘슬러의 이 작품에 주목했다. 러스킨은 고전 미술에 큰 가치를 두는 인물이었다. 예술의 사회적 ·도덕적 역할을 주목하는 평론가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시작되고 있던 라파엘 전파의 그림(주로 고전문학이나 전설에 바탕을 두고 그려진 작품이 많다)을 호평했다. 예술이 삶의 진리를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있어, 휘슬러의 작품은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러스킨은 월간지에 실린 글을 통해 휘슬러의 작품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날렸다. 그는 휘슬러의 작품을 두고 “대중들의 얼굴에 물감 한 바가지를 퍼부어놓고 200 기니를 요구한다”는 혹평을 늘어놓았다. 평론가의 냉혹한 평가에 고집 있던 화가 휘슬러는 분노했다. 분노한 나머지 러스킨을 명예훼손죄로 고발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1878년, 예술작품을 둘러싼 희대의 재판이 이루어졌다. 러스킨의 비평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가리는 재판이었다. 러스킨의 변호사는 “작품을 해치우는데 (knock off) 얼마나 시간이 걸렸냐”는 다소 기분 나쁜 질문을 했고 휘슬러는 이틀이 걸렸다고 답했다. 겨우 이틀 걸린 작업물의 결과에 200기니라는 엄청난 금액을 매겼냐는 질문에 휘슬러는 “그 작품에 내가 일생에 걸쳐 체득한 모든 지식이 들어있기 때문에 매긴 금액”이라는 답으로 응수한다.
이틀에 걸친 재판에서 판사는 누구의 손을 들어줬을까. 뜻밖에도 젊은 예술가 휘슬러가 승소하였다. 그러나 완전한 승리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판사는 패한 러스킨에게 단지 1 파딩(현재 가치로 약 100원 남짓) 정도의 금액을 휘슬러에게 배상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법정 비용은 양측이 반반씩 부담하게 했는데, 러스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곤했던 휘슬러는 법정 비용과 변호사 수임료를 위해 당시 가지고 있던 저택과 작품을 모두 팔았음에도 파산하고 말았다.
수많은 지식인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던 러스킨 역시 이 소송으로 자존심과 명예에 손상을 입었다. 소송비용을 청구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자신도 비평할 권리가 없다며 옥스퍼드 미술교수직을 사임했다. 결과적으로 재판은 양측 모두에게 상처를 준 사건으로 남았다.
예술작품을 둘러싼 전대미문의 재판을 되돌아본다. 러스킨과 휘슬러 중 어느 한쪽의 견해에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 되짚어 보면 러스킨의 혹독한 비평이나 행동의 잘잘못을 따질 수는 있다. 그러나 러스킨과 휘슬러의 예술에 대한 시각과 견해 자체를 두고 우월성을 가리기는 어렵다. 각각의 맥락에서는 틀린 얘기가 아니니까.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진리가 존재하는 것이므로.
아침형 인간의 습관이 크게 유행한 적 있다. 뇌과학자 러셀 포스터는 TED 강연에서 이 유행에 대해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단지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 이 농담 같은 말에는 날카로운 메시지가 들어있다. 차이와 다름의 문제에 ‘옳고 그름’ ‘정상-이상’의 잣대를 자꾸 들이밀거나 자신의 우월성을 뽐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호(好)-오(誤)의 문제를 옳고 그름으로 착각해 자기만 옳다고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 인간관계 속 대화를 ‘나와 동일한 의견을 지닌 사람 만들기’로 착각하는 이도 있고, 보편적인 국룰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들도 있다. 국룰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생태계 교란종처럼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물론 이런 글 쓰는 나라고 해서 그런 편협함과 어리석음을 완벽히 버린 게 아니다. 가끔씩 ‘나와 친한 저 사람은 어째서 나와 백만 킬로미터쯤 떨어진 생각을 갖고 있는가?' 의아한 마음을 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다. 세상은 다양한 인간의 총집합이라는 걸 의식적으로 상기한다.
취향이나 생활 방식이 상이한 사람을 만날 때, 그저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르니 흥미로운 사람’ 쯤으로 여기는 건 어떨까. (타인에게 해를 안 끼치는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는 굳건한 전제 조건이 있겠지만)
반민초파와 민초파가 갑자기 반민초파로 국민 대통합을 이룬다고 해서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게 아니다. 전 국민 모두가 인서울 아파트 40평대에 사는 걸 행복으로 여기게 된다거나, 대한민국 사람이 전부 미라클 모닝을 국룰처럼 따른다고 해서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게 아니고 (우리는 이미 이 획일성의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다) 주변인 모두를 ‘나랑 같은 편’으로 동화시키려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숨 막히는 곳이 되기 쉽다. 국룰은 국룰이고, 개인 취향은 개인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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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은 3월 7일(화)에 발행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