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적성을 찾아가는 방법
스무 살 되던 해 여름, 비디오 대여점에서 일했다. 생애 첫 아르바이트였다. 별다른 사건은 없었고 손님이 북적이지 않는 가게였다. 업무 매뉴얼도 간단했다. 1. 손님이 비디오를 가져오면 바코드를 찍고, 2. 비디오를 손님에게 건네준다. (단, 필요한 경우 비디오를 비닐봉지에 넣어 빌려준다) 3. 비디오를 반납하는 손님이 오면 다시 바코드를 찍고 비디오를 제자리에 꽂아 넣는다.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선 동네에 자리한 가게였다. 동네 주민들이 주요 고객층이었다. 포켓몬을 빌리러 오는 아이들, 주말을 맞아 영화를 보러 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가끔은 성인비디오를 빌리러 오는 고객들을 만났다.
어릴 적 나는 성인 비디오 코너를 보면서 저런 걸 자주 빌려 가는 사람이 있나 궁금해하곤 했다, 일해 보니 실제 그걸 빌려 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홀로 와 조심스럽게 비디오를 대여하는 이들도 있었고, 부부가 함께 와 자유롭게 빌려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날 홀로 온 어떤 손님이 수줍어하면서 성인 비디오를 들고 카운터로 온 순간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빨간색 큼지막한 제목이 쓰인 성인 비디오를 비닐봉지에 넣었다. 그 장면을 본 손님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검은 봉투에 넣어주세요. 나는 성인 비디오를 투명한 비닐 봉투에 넣는 중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아. 성인비디오는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검은색 봉투에 넣어줘야 하는구나. 안 그러면 봉투에 굳이 넣는 의미가 없지. 그런 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첫 아르바이트의 인상적인 기억 이후에도 몇 번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더 쌓고 대학 4학년 때 교육실습을 거치면서 깨달음이 왔다. 내 주변머리나 일머리가 높은 수준은 아니라는 걸. 초등학생 방학 캠프를 주관하는 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땐 학생들 버스 배정을 잘못해서, 항의 전화가 이어진 적이 있었다. 교육실습을 가서는 서류 속 도표 정렬이나 정리를 못해서 담당 선생님의 지적을 받았다. 함께 실습 간 동기들은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일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쉽지 않은 절차였다.
내 머리가 유독 나쁘다거나 멍청하다던가 그런 부정적 판단을 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주의집중 안테나가 늘 스스로에게 쏠려 있는 나였다. 흥미가 가는 일 아니면 뭘 꼼꼼하게 살펴보는 편도 아니었다.
여기에서 파생된 몇 가지 특성이 더 있었다.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 덕후 기질. 빠릿빠릿하지는 않음. 큰 틀에서 상황을 볼 줄은 알지만 업무를 할 때 정확성과 체계성이 떨어짐. 내 의견이나 생각을 남에게 정확하고 세세하게 말하는 걸 귀찮아함(어차피 말해도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커서). 머리회전을 끊임없이 하지만 행동은 느린 편임. 컵이 든 쟁반을 들고 1m만 걸어도 금세 떨어트려 박살 낼 수 있는 어설픔을 겸비함.
학창 시절까지만 해도 그런 특성은 개성이나 젊은이의 설익음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선 달랐다. 어쩌다 보니 대학 졸업 후 나는 정확한 서류 처리 능력이나 세심함을 요구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직업의 세계에서 워드프로그램 속 표 안의 내용을 일렬로 정리하지 못한다거나, 연말 정산 서류 제출에서 다섯 번씩 퇴짜 맞는 행정 능력의 소유자라는 건 되도록 숨기고 싶었다. 더구나 내 직장 업무 중에는 타인을 돌보는 일까지 포함되어 있다. 주변머리 부족하고 남에게 관심 없는 게 무능함으로 비칠 수 있었다.
덕분에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는 내 타고난 특성을 뜯어고치기 위한 날들로 점철되었다. 장기간에 걸친 인간 개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었다. 이 길고 긴 프로젝트를 몇 년 거친 후 나는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바뀌었다. 문서 파일이나 PPT를 규칙대로 정리하고, 번호를 매겨 명확하게 체계가 갖춰진 업무메시지를 보내고, 공문을 작성하고(물론 오타는 늘 있긴 했지만), 정해진 규율에 행동양식을 맞추고, 정확한 사실 관계를 남에게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인간으로 조금은 바뀌었다.
덕분에 직장 생활 십 년 정도 되었을 때에는 일머리도 있고 사회성도 있는 (척하는) 직장인이 되었고 자부심도 쌓았다. 남들보다 빠릿빠릿해진 건 아니지만 최소한의 일머리는 갖추게 되었으니, 꽤 고무적인 일이었다. 다만 내가 가진 기질이 좀 창피하게 느껴졌다. 창피함은 은폐로 이어졌다. 내가 가진 몇 가지 특성은 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쓸모없는 것으로 가급적 숨겼다.
이탈리아의 현대 예술가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 1934-1963). 1934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났다.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으며 '샘'을 만든 마르셸 뒤샹의 영향을 받았다. 20대 초반까지는 전통적 양식의 풍경화를 그렸지만, 점차 가위 등의 사물을 작품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실험적인 시도도 거듭한다.
1961년 만초니는 꽤 도발적인 작품을 내놓는다. 4.8 x 6.5cm의 평범한 통조림 캔 모양을 한 작품이었다. 제목은 <예술가의 똥>이었다.
캔에는 작품의 설명이 표기되어 있다.
예술가의 똥
정량 30그램
자연 상태로 신선하게 보존 제조 및 밀봉
1961년 5월 제조
캔 속에 만초니의 똥이 들어 있다는 이야기였다. 만초니는 총 90개의 캔을 제작하고, 1번부터 90번까지 작품 번호를 매겼다. 이 혁신적인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하나에 35그램 정도에 책정했다. 18K 금값이 30그램 정도의 값이었던 때였다.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도 있는 시도였으나 새롭고 특이한 것을 즐기는 이들은 늘 존재했다. 만초니가 젊은 나이에 요절한 후, 예술품 애호가들이 재미 삼아 이 혁신적인 작품을 사기 시작했고, 작품을 구매한 미술관도 있었다. 작품의 가치는 계속 올라갔다. 2007년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에서 이 전위적인 작품 중 4번을 사들였다. 3만 달러가 넘는 가격이었다. 다른 깡통은 밀라노 경매장에서 10만 8000달러(1억 2천만 원)에 팔렸고 2016년, 54번 깡통이 24만 2000달러, 3억 원 가까운 돈에 팔렸다.
만초니의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었다. 실제 만초니는 <예술가의 똥> 제작 이전에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고 나무조각에 고정시킨 <예술가의 숨>이라는 작품을 선보여 한 숨당 20센트의 값을 매겨 판매한 적이 있었다.
작품에 대한 주요한 궁금증 중 하나는 '진짜 만초니의 똥이 들어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만초니가 <예술가의 똥>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기에 풀기 어려운 의문이 되었다.
호기심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캔을 따는 사람은 없었다. 깡통을 따는 즉시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위험한 시도를 해본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1989년 캔의 소유자 한 명이 이 캔을 따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더 작은 깡통이 자리한 장면을 봤을 뿐이었다. 그러나 소유자는 더 작은 깡통을 열지 않고 호기심 어린 시도를 멈췄다. 그래서 깡통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작품 속에 ’ 석고 반죽‘이 들어가 있다고 증언한 동료 예술가도 있었다.
대체 만초니는 90여 개의 똥 통조림으로 무얼 표현하고 싶어 한 걸까. 예술가의 진정한 뜻을 알 도리는 없다. 다만 허영심과 자본주의에 물든 미술 시장을 풍자하고자 한 작품이라는 해석이 있다. 당시의 경제적인 호황기를 맞이한 예술품 수집가들은 부를 드러낼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사려고 했는데, 이러한 경향을 비판한 것이라는 얘기다.
통조림 안에 만초니의 똥이 들었는지 아닌지, 도대체 이 많은 똥 작품을 어떻게 제작했는지, 이것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모든 의문을 뒤로 물리더라도 이 작품의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똥도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 1917년 마르셸 뒤샹이 남성용 변기를 통해 예술계에 던진 파격을, 만초니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당신이 싼 똥, -그래 똥이라는 말이 좀 그렇다면 다른 말로 대체해도 좋다- 당신이 숨기고 싶은 기질, 특성, 그런 것들이 실은 예술작품에 버금갈 만한 무언가라고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나의 무언가를 고이고이 포장해 멋들어지게 판매하라는 혁신적인 얘길 하고 싶지도 않다. 만초니처럼 예술가의 뻔뻔함과 위풍당당함, 창의성을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다만 당신이 구리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다른 각도로, 좀 새롭게 볼 수도 있음을 얘기하고 싶다. 집중력이 약해 일을 하다 마는 성격이라면, 어찌 보면 순발력과 추진력이 빠른 것일 수 있다. 마트에서 더 좋은 우유를 고르는 데 20분씩 시간을 끄는 성격이라면 꼼꼼하고 신중한 스타일 일 수도 있다. 허세 기질이 있다면 남에게 자기 얘길 잘하는 타고난 이야기꾼일 수 있고. 내게 이미 주어진 똥을 금으로 바꾸겠다는 연금술사 같은 노력을 하지 말고, 차라리 나에게 적당한 캔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적재적소의 장소를 찾으면 똥도 단순히 배설물이 아니라 쓸모 있는 것이 될 수 있으니까.
나 같은 경우 내 구린 면을, 아니 구리다고 생각하던 구석을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내 덕후 기질, 나에게 집중된 안테나, 혼자 있길 좋아하는 특성. 그전에는 은폐하기 바빴던 모든 것들이 글쓰기에는 나쁘지 않은 데다, 쓸모까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려 마흔 가까운 나이에. 솔직히 나는 글쓰기의 그런 면에 가장 만족하고 있다. 예전에는 지독하게 싫어하고 감추던 나의 어떤 면을 덜 싫어하게 된 점.
물론 내가 적성이나 자신감 같은 단어를 호기롭게 외칠 입장은 안 된다. 고백하건대 몇 달 후 복직을 앞두고 내 자신감이 몹시 휘청이고 있는 상태니까. 내가 쌓아온 특성은 휴직 기간 동안 글쓰기를 하면서 많이 무너져 내렸다. 현재의 나는 원래의 나로, 주변머리가 좀 없고 생각을 많이 하고 음식을 잘 쏟는 인간으로 되돌아와 있다.
덕분에 직장으로 돌아가 내가 연출할 시행착오의 장면이 머릿속에 절로 떠오를 때도 있다 (이 상상을 할 때마다 식은땀이 난다) 그 순간에는 다시 내 어떤 부분이 싫어지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사이좋게 살아야 하는 인간이 난데. 내 자아랑 아웅다웅 다툼을 하고, 미워할 겨를도 아까울 만큼 인생은 빨리 지나갈 게 뻔하다. 사이좋게 지내는 게 유일한 답이다.
아무튼 '가슴 설레는 일을 찾아라'. '맞춤형 꿈을 찾으라'는 조언이 많지만, 그 수준에 도달하는 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비슷하다. 적성에 딱 맞는 일을 운 좋게 찾아서 죽을 때까지 즐겁게 지속하는 행운아는 극소수일 거라 생각하니까. 기대 수준을 좀 낮춰도 나쁘지 않다. 할수록 나를 점점 더 싫어하지는 않게 되는 일, 내 구린 면을 덜 개똥같이 느낄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것도 나름 괜찮은 차선책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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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청소년 원고 두 개를 같이 붙들고 있어서, 이웃분들 글을 자주 찾아가지도 못하고, 대댓글도 제 때 못 달고, 발행하는 글도 좀 두서가 없네요;;;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드려요. (나름대로 힘껏 노력을 하고 있지만, 마쳐야 할 원고가 있어서 정신이 좀 없습니다 ㅠㅠ)
다음 글은 3월 21일(화)에 발행하고,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에 글을 쓸 시간이 없을 듯싶어서, 글쓰기에 대한 글을 발행하려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