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더 킹:영원의 군주> 속 입헌군주제 설정의 문제점
김은숙 작가의 새로운 드라마 <더킹: 영원의 군주>는 평행세계와 입헌군주제라는 설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곤(이민호 분)과 정태을(김고은 분)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다.
가상국가 우르크에 파병된 군인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태양의 후예>.
고려시대의 무신이 영생을 사는 도깨비가 되었던 <도깨비>와 같이
이 드라마는 흥미로운 설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과 평행세계에 '대한제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한다는 가정이 그것이다.
'대한제국'은 주인공 이곤(이민호 분)이 황제의 자리에 앉아 있는 입헌군주제 국가다.
이 대한제국의 설정 중 가장 흥미롭다고 느낀 부분은 '부대찌개'가 없다는 점이었다.
무슨 뜬금포 같은 부대찌개 이야기냐고 물을 수 있지만
대한제국에 부대찌개가 없다는 설정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이곤의 설명에 의하면 대한제국은 대한민국과 달리
일찍이 발달된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고 개혁정치를 실시해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가 죽지 않고 왕이 되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데서부터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 시대도 거치지 않고 6.25 전쟁과 분단의 아픔도 겪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부대찌개는 6.25 전쟁 발발 이후 먹을 것이 부족해서 미군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재료로 사용하여 음식을 만들어낸 데서 유래한다.
그러므로 대한제국에 부대찌개가 부재한다는 것은, 이 입헌군주국이 대한민국이 겪었던 뼈아픈 근현대사를 전혀 겪지 않았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해 준다.
대한민국도 저런 순탄한 길만 걸었다면
지금 어떤 국가정체성을 지니고 있었을지 잠시 생각에 잠기게 하는 부분이었다.
게다가 분단을 겪지 않은 이 행운의 국가는 희토류(스마트폰 산업, 전자제품, IT산업 등에 필수 원료)까지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고, 왕실이 이 엄청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주인공 이곤은 600경에 이르는(!) 자산의 소유자다. (그런데 실제로 희토류는 채굴 과정에서 산업재해와 환경오염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라 선진국에서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개발도상국에서만 주로 개발이 이루어진다.)
아무튼 이 드라마에서 대한제국의 부자 황제 이곤은 평행세계에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형사 정태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곤의 숙적인 작은 아버지 이림도 주요 인물로 존재한다. 이림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의 인물들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바꿔치기하면서 끊임없이 반정의 음모를 꾸민다.
11화에서 이곤은 점차 이림의 음모를 깨닫고 본격적으로 그를 뒤쫓는다.
이림은 이림대로 대한민국의 정태을을 납치하며 대한제국에 데려온다.
11화의 마지막 부분, 납치되었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온 정태을은 이림의 수많은 부하들과 마주친다.
위기의 상황에서
"지켜라, 대한제국 황후 되실 분이다"라고 부하들에게 외치며 달려오는 이곤 -역시 남자 주인공인 것인가-
그런데 이 11회의 클라이맥스 부분이,
일단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러 오는 이민호의 간절한 모습이 멋있기는 했지만
조금 실망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일단 이곤이 말을 타고 자신의 부하들과 달려온다.
굳이 차가 아니고 말을 타는 오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갑자기 황제인 그가 칼을 휘두르며 이림의 부하들을 물리치고 여주인공에게 달려온다.
그래, 이곤은 황제가 맞고 이림의 부하들은 반정을 일으킨 인물들이 맞기는 하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배경은 21세이고,
대한제국은 입헌군주제라는 정치체제를 지닌 국가라는 점에서
이 장면이 놀라웠다.
입헌군주제는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 여러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고,
일본에도 존재하는 정치체제다.
이 정치체제에서 군주는 국가를 형식상 통치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정당의 대표가 총리 자리에 올라
실질적인 국정을 책임진다.
이곤처럼 군주가 군 통수권을 지니는 국가도 있기는 하고
의회해산권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현대의 입헌군주제 국가에서는 왕과 내각의 엄격한 권력 분립이 이루어져 있다.
입헌군주제의 핵심은 '입헌'에 있다.
군주의 권력이 무한정인 것이 아니라 헌법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 것이
입헌군주제의 핵심이다.
애초에 입헌군주제의 탄생 자체가 민주 정치체제의 발달과 관련이 있다.
영국은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이라는 두 차례의 시민혁명을 통해
왕권을 견제하며 입헌군주제를 탄생시켰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입헌군주제 국가는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군주라 해도 제 아무리 국가 최고 권력자라 해도 개인의 기본권을 침범할 수 없는 것이
현대 민주국가의 핵심이다.
(물론 실제 현대국가에서도 독재권력 아래에서는 종종 벌어졌던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방영된 드라마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이 드라마 속에는 최연소 여성 총리인 구서령이 있고
황제와 총리가 하는 일이 분리되어 있으니
대한제국 역시 현대적인 입헌군주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후가 될 정태을을 구하기 위해 황제인 이곤이
부하들을 이끌고 칼부림을 한다는 설정이 다소 무리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11화 중반부에서도 비슷한 의문이 든 장면이 있다.
당숙인 부영 군의 죽음을 파헤치다 이곤은 이림의 부하를 찾아내고
반항하는 그에게 황제의 말이 곧 법이라며 갑자기 참수를 명한다.
황제의 말이 곧 법이라니,
입헌군주제에서는 황제의 말이 곧 법이 아니다.
그건 근대 이전에 존재했던 전제군주제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또 제아무리 범죄자고 역적이라 할지라도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기본권이 존재하고,
재판을 거쳐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것이 대부분의 현대국가에서 지향하는 범죄 처벌의 방향인데
이렇게 황제라고 해서 길에서 반정 세력에게 칼을 휘두르고 참수를 명하는 것이
21세기 입헌군주제 국가에서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아마 이 드라마의 설정은 입헌군주제 중 '군주'라는 존재에 방점을 둔 것 같은데
<더 킹>의 11회에서는 황제의 권력 남용이 다소 심각해 보였다.
아무리 평행세계 판타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입헌군주제를 기본 설정으로 한다면
조금 더 세심하게 상황을 짰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이 드는 부분이었다.
<더킹> 외에도 그동안 <궁>, <더킹 투하츠> 등 입헌군주제 설정의 드라마들이 그동안 존재해왔다.
현재 대통령제를 취하는 대한민국과 달리 입헌군주제 국가가 존재한다는 설정,
왕과 왕세자, 왕족들이 존재한다는 설정이
특히 <궁>과 같은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매력적인 부분으로 작용한다.
굳이 재벌 2세 남주인공을 설정하지 않아도
진짜 혈족 자체가 왕족인 왕과 왕자들이 존재하니 그들의 사랑을 흥미롭게 다룰 수 있다.
<더 킹>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평행세계와 함께 대한제국이라는 입헌군주제 국가를 설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여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백마 타고 달려오는 황제'를 그리기 위해
입헌군주제라는 상황을 집어넣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의 상황 대비,
황제 이곤과 이에 맞서는 이림이라는 반정세력 간의 긴장감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입헌군주제라는 소재를 다루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판타지라 해도
21세기에 존재하는 민주국가, 아픈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국가로
대한제국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운만큼
그 설정에 구멍이 적기를 애청자로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