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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Mar 21. 2023

글쓰기 고민을 풀어봅니다.  

글쓰기를 위한 마음가짐

오늘은 글쓰기를 하면서 만나는 고민과 마음가짐에 대한 얘기를 남겨봅니다. Q&A형식으로 글을 남기려고 해요. 일단 제 글을 처음 보시는 분도 계실 테니 저에 대한 소개를 먼저 드리고 글을 시작할게요.  (오늘은 하고 싶은 얘기를 마구 풀어놔서 꽤 긴 글임을 미리 말씀드려요)


2019년부터 책을 써온 출간작가. 2020년 2월부터 브런치에 글을 썼고, 2020년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해서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이라는 명화 에세이를 냈습니다. 브런치를 통해 에세이를 3권 썼고, 경제와 사회에 관련된 청소년 책을 6권 썼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본업이 있고 현재 휴직 중입니다.


Q. 브런치의 조회수나 라이킷 수, 출판사 원고 투고 실패 등으로 멘탈이 흔들릴 때는 어떻게 하나요 

 

글을 쓰면 누구나 만날 수 있는 기분입니다. 이런 걸 극복하는 것에 관련된 글을 브런치에 많이 써 왔음에도, 여전히 마음이 많이 휘둘려요. 작년에 브런치 구독자가 하루에 7~8명이 빠져나간 날이 있었는데 그걸로 하루 종일 머릿속이 흔들리고 머리 끝이 쭈뼛 섰어요. 주변에서 보면 몇 천 명의 구독자가 있는데 그런 걸 신경 쓰는지 의아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구독자가 많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마음이 흔들리는 건 순식간입니다.

  

이런 때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마음이 휘둘리고 흔들리는 대로 놔둘 수밖에 없습니다. 나뿐 아니라 누구나 흔들릴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안이 돼요. 그리고 가끔은 ‘남이 뭐라던 난 그냥 내 갈 길 간다’ 정신도 필요해요. 약간의 또라이 기질이 있는 게 중요하고 이 기질을 발휘할 때 은근히 신이 나기도 해요.


  

책을 출간하고 싶으시다면 라이킷이나 조회수는 ‘연습을 위한 시험대’라고 대범하게 생각하시는 것도 좋아요. 왜냐하면 책을 쓰고 나면 냉정한 판매부수나 반응, 리뷰 글 등을 볼 때가 와요. 이때 더 괴롭고 급기야 돌아버릴 것 같은 순간도 오거든요 이윤주 작가님의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에 ‘괴나리봇짐에 내 책 천권을 넣고 전국을 돌며 책을 팔아야 할 것 같은’ 저자의 마음을 묘사한 부분이 있어요. 글의 주제가 예술과 수입에 관련된 내용이긴 하지만, 어쨌든 읽으면서 마구 공감했어요. 책 출간 이후에 비하면 라이킷이나 조회수는 조금 작은 시험대일 수 있을 정도로 괴로움이 많아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브런치에서 라이킷이 많고 조회수가 높다고 해서 꼭 좋은 글이고 근사한 글인  건 아니에요. 이곳에서 많은 글을 읽어보신 독자라면 대부분 아실 거예요. 아주 진부하고 뻔한 얘기일 수 있지만 진심이 담긴 글이 있고, 그 작가님의 솔직 담백한 매력이 담긴 글이 있어요. 정성을 쏟은 글도 누군가는 알아봐요. 읽는 사람 마음에 길게 남는 글이 있거든요. 숫자도 중요하지만 그런 것의 힘을 믿는 게 중요해요.     

  



Q. 에세이를 쓸 때 나 또는 주변인들의 얘기를 밝히는 게 꺼려져요. 어떻게 하죠?


 제 경우에는 책을 이미 출간한 적 있는 상태에서 브런치를 시작한 거라, 글이나 책을 써도 별달리 큰 화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후였고 그래서 거리낌이 없었어요. 게다가 전 이곳에 처음 글을 쓸 때 먼 곳 중동에서 해외살이를 하고 있었고, 본명이 아닌 '유랑선생'으로 글을 썼으니까요. 하고 싶은 말이 마음에 많이 쌓여 있는 상태였는데 이곳이 일종의 놀이터이자 대나무숲과 같은 곳이라 웬만한 이야기는 다 풀어냈어요.  


 그리고 에세이를 쓰다 보면 모든 걸 세세하고 자세하게 밝히지 않고 글을 쓰는 요령도 조금씩 익히게 돼요. (주변 사람의 이야기면 ‘지인’ 정도로 처리하는 방법도 있어요) 책을 낼 때는 글에 등장하는 분께 허락을 구하는 방법도 있고요.


 아무래도 직업이나 가족에 대해서 가장 조심하게 돼요. 저희 가족들은 사실 제가 글을 솔직하게 쓰는 것에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꽤 개방적인 편이라 거리낌이 없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가족들에게 상처가 될까 봐 조심해야 할 부분도 생겨요. 의외로 글쓰기나 책을 즐기지 않는 지인이나 친구들은 내 책이 나와도 끝까지 읽어보지 않거나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전 지인들에게 제 에세이를 선물로 줄 때 이런 사실을 떠올리며 위안을 얻는 편이에요) 필요 이상의 자기 검열은 조금 덜어내도 괜찮습니다.     

  


저도 사생활 밝히는 것 때문에 망설인 적이 있긴 해요. 작년 10월에 출간된 그림 에세이 <그림의 말들>에 가난에 대한 꼭지가 있었는데 처음에는 빼고 싶었어요. 어릴 때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제 사생활을 온라인에서 유랑선생의 이름으로 밝힌 건 괜찮았지만 솔직히 책에까지 넣고 싶진 않았거든요.


 실제 책을 만들기 위해 처음 편집자님께 처음 브런치 글 목록을 추려 보낼 때에는 그 꼭지글을 뺐어요. 그렇지만 책 전체의 밸런스를 위해서 그 이야기를 넣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고, 나중에 원고가 될 내용을 직접 보낼 때에는 그 부분을 넣었습니다. 다소 무모하고 이상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저의 경우에는 책이나 글의 밸런스, 완성도를 제 자신의 부끄러움보다 우선으로 두는 편이에요. 나는 굉장히 창피하고 낯부끄럽다 생각할 수 있지만, 의외로 남들은 내 글을 그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고요.  


 

Q. 글을 꾸준히 쓰면 글쓰기 실력이 정말 늘까요?  


저는 글쓰기 근육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 2020년 2월에 처음 브런치에 글을 썼는데, 그때에 비해 지금 현재 표현력이나 묘사하는 힘이 늘었어요. 브런치 시작 전에 책을 낸 적은 있지만 경제에 관련된 지식 글을 썼기 때문에 처음에 에세이를 쓰는 것이 많이 어색했습니다. 제 감정이나 개인적인 생각을 자연스럽게 글로 써내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쓰면서 계속 감정을 활자로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워졌어요. 글은 꾸준히 쓰면 확실히 늡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기억해 둘 건 꾸준히 쓰더라도 ‘내 글의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어떤 부분을 보충할 수 있을까’ 연구가 계속 필요하다는 거예요. 내가 내 글의 제1의 독자가 되어서 매주 올린 글에 대해 평가를 해보는 게 좋아요. ‘이번 주는 그림 설명이 부족했네’ ‘이번 주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는 게 좋았을 듯싶어’ 등등의 평가를 계속합니다. 내 글이 글러먹었고 나는 운도 재능도 없다고 생각하고 괴로워만 하면  거기서 한 발짝 나아가기 힘들어져요. 객관적으로 내 글을 평가하고 포기하지 않고 개선하다 보면 나아지는 부분이 반드시 있습니다. 글쓰기에도 메타인지가 아주 중요해요.      



Q. 글을 쓰며 다른 사람과 내 글이 비교되고 주눅이 들 때는 어떻게 하나요?   

  

 저도 그런 감정에 자주 휩싸여요. 타고난 글쟁이라고 생각되는 분들에게 주눅이 들고 질투심이 솟을 때가 많아요. 특히 유려한 표현이나 기발한 비유를 할 수 있는 능력, 특유의 감수성을 기가 막히게 활자로 풀어내는 분들 글을 보면 자주 괴로워져요. 저 사람은 왜 저런 감수성을 타고났고 나에겐 그런 게 없을까? 저 사람의 저런 표현력을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못 따라가겠지?라는 생각도 자주 해요.



그리고 저는 책 기획에 대한 욕심이 있기 때문에 온라인이나 인스타그램에서 기획이 근사하게 잘 된 신간, 컨셉이 잘 잡힌 도서를 발견하면, 질투심에 휩싸여요. 제가 기획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느낌이 오거든요. 아, 이 책은 정말 잘 되겠구나. 대박이 나겠구나. 좋은 평가를 받겠구나. 그리고 솔직히 제 예감은 거의 다 맞아떨어져요. 정말로 그 책은 주목을 받던 베스트셀러가 되던 호평을 받던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런 걸 볼 때마다 ‘아, 나도 이런 책을 써보고 싶은데. 왜 진즉에 이런 기획을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또는 ‘내가 쓸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게 아쉽다. 이 책은 너무 잘 되겠네. 질투가 난다!’라는 생각을 끝도 없이 하다가 홀로 고꾸라지곤 해요.


 그렇지만 그 지점을 인정하는 게 시작일 수 있어요. 제가 따라갈 수 없는 영역. 닿을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요. 어떤 부분에 있어 내가 재능이 없음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해요.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점에서 내가 쓸 수 있는 글과 쓰지 못할 분야를 구분할 수 있거든요. 욕심나고 질투 나는 사람의 글이 있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면, 그 분야의 글이 나에게 맞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건 원론적인 이야기인데, 누군가의 글이나 책의 성과가 빛나고 잘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잘 나가는 것이 부러운지, 그 사람이 글 쓰는 열정이나 능력이 부러운 건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어요. 우리는 쉽게 착각을 하거든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글 쓰는 사람의 이미지’ ‘뭔가 있어 보이고 잘 나가는 작가의 이미지’를 얻고, 다수의 사랑을 받고 중요한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클 수도 있어요.


그 마음이 잘못된 건 아니에요. 분명 글 쓰기 위한 가장 큰 원동력이 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도리어 마음이 힘들고 글이 나오지 않을 때는 먼저 깨닫는 게 중요해요. 아! 내가 그런 이미지를 갖고 싶은 거구나.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아주 큰 거구나라고 순순히 인정을 하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어요.




 그리고 지금 다른 사람의 빛나는 모습이 부럽다면 정신승리도 가끔 필요해요. 모든 사람의 빛나는 순간은 지나가게 마련이고 누구에게나 말 못할 속사정은 있거든요. 출간 직후에는 여기저기 내 책을 홍보해야 하니까 인스타에 글도 올리고, 칭찬도 받고 축하도 받고,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서 책 이야기도 나누어야 하고 그런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그런 순간은 대부분 지나가게 마련이에요. 


 저는 출간의 과정을 이미 아홉 번 거친 사람이에요. 이 출간 후속 과정(?)이 바깥에서 보기엔 멋지고 근사해 보이지만 내면으로 보기엔 결코 쉽지 않음을, 그 속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제 글이나 책이 주목을 덜 받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좋은 순간은 지나가고, 결국에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지금 빛나 보이는 사람의 현재와 저의 현재를 비교하는 게 조금 부질없다는 생각도 가끔은 해요. 부러워서 억지로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고 ㅎㅎ 이것 역시 정신승리일 수 있지만, 때로는 정신승리가 필요해요.

       


Q. 글을 쓰기 위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저는 처음부터 엄청나게 글을 잘 쓸 거라는 기대를 스스로에게 하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내가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보다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밑바탕에 깔고 있어요) 저는 퇴고를 할 수 있는 제 인내심을 믿는 편이에요. 자신이 쓴 글을 몇 번이고 고치고 다시 쳐다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고 고치는 절 믿어요.


보통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틀 정도를 소요해요. 초안을 쓰고, 다음 날 7~8번 정도는 고쳤어요. 그런데 사실 제 성에 차려면 이것도 부족하긴 해요. 흔한 일은 아니지만 글을 거의 서른 번 정도 고치면, ‘내가 이 글을, 이 글감을 가지고 놀고 있구나’라는 희열이 스칠 때가 아주 가끔 있어요. 억지로 정성 들이는 게 아니라 내가 활자를 그냥 가지고 놀고 있다는 느낌. 타이핑하면서 글 위에서 놀고 있다는 느낌. 그런 마음이 찾아오고 큰 자유를 맛볼 때가 있어요. 보통은 집중력과 시간이 부족해서 거의 느끼는 경우가 없지만, 그때의 기분이 최고라는 건 확실해요.



 

이건 좀 다른 얘기인데, 글을 쓰는 일도 다른 일처럼 등급(?)이나 순위 같은 걸 많이 나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브런치에 글을 쓰고 나서 출간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칭찬을 과도하게 받고 황송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출간 작가냐 아니냐, 구독자가 몇 백, 몇 천명이냐, 등단 작가냐 아니냐로 글 쓰는 분들도 계속 등급을 은근히 나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요. 책을 출간하고 저자가 되면 이런 등급으로 나뉜다는 느낌이 더 심해지기도 합니다. 책이 얼마나 팔렸느냐 베스트셀러 작가냐 아니냐에 따라 또 등급이 나뉘고, 어떤 때는 출판사나 편집자, 독자들이 나를 그런 등급으로 나누고 평가하는 게 아닌가 피해의식과 의구심이 솟구칠 때도 솔직히 있거든요.


 정말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타인에 의해 등급이 나뉘는 걸 거부해도 내가 나의 글이나 이야기의 등급을, 글 쓰는 내 처지의 등급을 나눌 때가 제일 많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구독자가 몇 명이니까, 내 글은 공모전에서 떨어졌으니까, 저 사람 글은 인정받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눅이 드는 때가 반드시 오게 마련이에요. 물론 이런 때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더 좋은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주눅이 들어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때로는 '등급으로 나뉘지 않는 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순간이 있어요. 아무도 내 글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을 때, 내 글의 현실이 너무 초라한 것 같을 때, 오로지 나만이 날 믿고 글을 써야 하는 순간이 와요. 이런 순간에 나는 쉽게 등급으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과 자부심이 필요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집필한 책의 숫자나 그런 외부 요소들을 거둬내면, 결국 두 가지 부분에서 자부심을 느껴요. 첫 번째는 제 속에 아직 글로 옮기고픈 이야기가 아주 많고 계속 샘솟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브런치에도 글을 많이 쏟아내 왔고 책도 꽤 썼지만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요.


 몇 달 전에는 <투명장벽 도시>라는 경향신문의 르포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노키즈존,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 노인세대가 소외된 키오스크 이런 것들이 도시 내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거든요. 언젠가 책으로 이런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세상이 쉽게 주연과 조연, 엑스트라로 나뉘는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좋은 구성의 에세이로 건네고 싶을 때도 있어요. 이렇게 저는 글로 하고 싶은 이야기로 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부자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제가 매주, 또는 2주에 한 번씩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면서 쌓아온 자신감이 있어요. 저만이 알고 있는 노력, 제가 쌓아온 시간의 단단함이 있고, 이건 숫자나 등급으로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남에게 근사한 글을 내보이기 위해, 구독자에게 책임을 다하기 위해 쌓아온 시간일 수도 있죠. 이곳이 무료로 글을 읽고 쓰는 공간이고 컨텐츠가 돈이 된다는 이 시대에 아무런 이득도 없는 듯싶어서 회의감과 허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글 쓰는 나 자신에게 부끄러움이 없기 위해 노력하며 글을 쓰고 쌓아온 시간이긴 해서, 남들이 과대평가하던 과소평가하던 이건 제가 저에게 부여한 자부심이니 쉽게 과장되거나 축소되거나 훼손되지 않는 영역이라고 생각해. 외부의 평가와 인정으로 쌓인 자부심이 필요할 때도 분명 있어요. 그렇지만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엄청나게 자주 흔들려서, 남들이 뭐라건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쌓아온 자부심이 필요할 때도 많아요.            



Q. 현재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에세이 쓰기에 고민이 있어요. 에세이는 저에게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다는 마음을 열어준 소중한 분야예요. 그렇지만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원고 작업을 하고 나서 감정 소모를 한꺼번에 많이 해서 힘이 들었습니다. 덮어놓았던 감정을 너무 많이 헤집고 활자로 옮겼다는 느낌에 솔직히 후회한 적도 있어요.


 그 후속 편으로 <그림의 말들> 작업을 하기 전에는 다시 감정 소모를 하는 게 두려워서, 원고에는 손도 못 대고 일주일 정도 그냥 울기만 한 적이 있어요. (편집자분께도 이 부분은 말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다행히도 <그림의 말들> 작업하면서 제 자신의 힘든 감정을 많이 가다듬고 볼 수 있게 되었고 용기를 얻었고, '하길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다만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어요. 에세이를 쓰면 감정적으로 많이 열린 상태, 감정 이입이 잘 되는 상태가 되는 게 조금 두려워요. <그림의 말들> 원고를 끝내고 청소년 원고를 쓰고 있는데, 주로 사회나 경제 관련 책이다 보니 비극적인 기사나 이야기를 자료로 많이 봐요. 고독사 이야기라던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노예선 바닥에서 짐짝처럼 실려가다 질병이나 더위로 죽었던 아프리카 흑인들 이야기 등을 찾아 보거든요. 상세한 이야기나 기사를 볼 때마다 감정 이입이 너무 많이 되고 힘들어서, 집중이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일단 제가 올해 11월~12월까지는 이미 계약되어 있는 원고를 써야 돼요. 5~6개 정도가 있는데 대다수가 청소년 지식책 원고예요. (사실 요즘에는 이것 때문에 브런치에 자주 들어오지 못하고 있어요. 대부분 올해 하반기나 내년 초반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그림 매거진에 글을 쓰는 건 책임감으로 부지런히 하고 있지만 이 역시 복직 전에 마무리를 짓는 게 좋을 거라 생각이 들어요. 본업에 돌아간 입장에서 내밀한 감정에 대한 에세이를 계속 쓰는 게 맞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거든요. 그리고 감정을 어느 정도 쉬게 하고, 내 이야기를 쓸 힘을 쌓으면 에세이를 쓰거나 성인 대상의 책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에세이는 정말 또 그만의 매력이 있고 감정을 다 헤집을 필요가 없는 글도 있어서, 언젠가 쓰고 싶은 마음은 있거든요.  


 저는 올해 9월에 복직을 앞두고 있는데 어떻게 글쓰기를 병행하게 될지 그것 역시 잘 모르겠어요. 저는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글을 4년간 쉬지 않고 써왔어요. 휴식한 적이 거의 없고, 어떻게 쉬는지 그 방법도 많이 잊어버렸어요. 이웃분들께, 또는 함께 작업하는 편집자분들께도 염려스러운 눈빛을 받은 적이 정말 많아요. (주로 저의 번아웃이나 흔들리는 멘탈 같은 걸 염려하셨어요) 솔직히 글쓰기와 휴식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추고 조절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정말 큰 고민이에요. 이 역시 찬찬히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복직하면 강제로라도 해결이 조금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Q. 글쓰기와 책쓰기를 시도하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


글을 쓰다 보면 한 번에 잘 되는 분들, 큰 대박을 터트려서 경제적 자유를 얻는다는 분들 얘기를 많이 읽고 듣게 돼요. 그렇지만 그건 소수의 얘기고 허상과 같이 떠도는 말인 경우가 많아요. 이런 얘기 말고 한 단계씩 한 발짝씩 나아가는 방법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제가 애초에 '이렇게 글을 쓰면 대박 날 수 있다'는 요령을 알리고자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아니에요. 세 발짝 정도 먼저 글길을 걸어간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별달리 흔들림 없이 걷는 모습이 보이고, 단계마다 적절한 응원의 말을 건네주면 오히려 큰 용기가 된다는 걸 알아요. 그런 생각에 글쓰기에 대한 글을 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글 쓰는 사람으로서 잘 나가고 싶고, 멋진 평가를 받고 싶고, 아는 체하고 싶고, 그런 욕구가 누구보다 심한 관종이에요. 그렇지만 그런 관종의 마음과 욕망을 약간 거둬내면 무엇보다 제가 생각하는 글이나 책의 완성도로 나아가고픈 욕심이 커요. 흥행을 하지 않더라도 독자의 마음에 오래가는 글이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정성껏 준비한 음식이 기억에 남는 것과 비슷해요. 챗GPT가 완성도 있게 글을 다 써준다는 이 시대에 뒤처지고 바보 같은 생각 같지만 독자의 마음 속에 오랫동안 잔향이 남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제가 제 스스로에게 부여한, 영원히 닿기 어려운 과제 같은 거예요) 글이나 책을 쓸 때마다 부족한 점을 고쳐서 한 단계씩 더 좋은 이야기꾼으로 나아가고 싶은 목표가 있거든요.


 사실 글을 쓰고 책을 쓰는 것도 요령과 전략이 필요한 순간이 많아요. 그렇지만 때로는 한 발씩 나아가는 마음이 큰 용기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런 마음가짐도 글쓰기에 적절히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덧.

다음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 글은 4월 4일(화) 저녁에 발행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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