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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Aug 18. 2024

열등감과 화해하는 방법

비교의식과 열등감이 나를 괴롭힐 때 

 

 만날 때 유독 농담을 주고 받기 어려운 유형이 있다. 지인 A가 그런 사람이었다. 자기 비하의 말을 종종 내뱉는 A였다. 나는 왜 이 모양인 걸까요? 난 맨날 이렇게 바보 같은 일만 저지르는 거죠. 나같은 외모는 진짜 살기가 어렵다니까요. 처음 몇 번은 A에게 말해줬다. 누구나 다 조금씩 바보 같고, 누구든 마음속에 멍청이를 품고 있다고. 멍청이가 됐던 내 일화를 들려준 적도 있다. 그렇지만 다음번 만남에서 A는 다시 비슷한 말을 반복하곤 했다. 


 나는 서글서글한 성격과 귀여운 웃음을 가진 A를 좋아했다. 그의 겸손함도 좋았다. 그러나 겸손과 자기 비하를 오가는 그 말에 뭐라 답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었다. 


 어느 날은 A에게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 란 책을 빌려줬다. 상위 1%의 뛰어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자리에 올랐는지, 그 비결을 흥미롭게 파헤친 책이었다. 몇 주 뒤 책을 다 읽은 A가 감상을 풀었다. 이 책을 보니 더 슬퍼져요. 얼마나 많이 노력해야 이렇게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아득하네요. 난 평생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자기 계발서로 읽은 적이 없던 터라 당황했다. 1만 시간의 법칙(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이론)을 널리 퍼트린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이 책을 노력보다는 운, 출생 시기, 환경의 중요성을 언급한 도서라 여겼기 때문이다. 답을 못하고 우물대던 기억이 난다. 


  A의 발언에 종종 난감해지긴 했으나, 뭐, 나라고 크게 달랐을까. 평소엔 괜찮아도 가끔씩 비교의식의 노예가 되곤 한다. 요즘엔 서점에서 새로운 책을 살펴볼 때 그렇다. 예전이라면 보지도 않았을 판권 표지를 찾아본다.  그 페이지에는 책의 초판날짜와 증쇄를 한 날짜가 나와 있는데, 창피하지만 그걸 살필 때가 있다. 아니, 이 책은 두 달 만에 2쇄를 찍었네. 아니 1년 만에 6쇄를 찍은 책이라니! 등등의 도서의 신원조사(!)를 하고 있는 나. 자연스럽게 내가 집필한 책의 결과와 다른 책을 비교하는, 저울질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비교의식과 열등감이란 키워드야 말로 모든 이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씨앗 같은 거 아닐까 싶다. 평소엔 땅 속 깊이 있지만,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마다 움을 틔우고 급작스럽게 자라나 마음을 뒤덮곤 하는.   


    


         


 열등감이란 개념을 처음 제시한 건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다. 우리는 종종 열등감을 ‘못난 감정’  '숨겨야 하는 느낌'으로 취급하나, 아들러는 이 감정을 모든 인간이 마주하는 보편적인 경험임을 밝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자연스럽게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열등감과 우월감 사이에서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 감정의 농도가 유독 짙어질 때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열등감에 시달려 병리적인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내 능력을 한결같이 과소평가하고, 타인과의 비교로 자신을 깎아내리면서 스스로를 괴로움의 늪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Love( Frederick sandys) @WIKIART 



 나에게도 열등감이 유독 거대한 덩어리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절대 우위와 비교우위란, 조금은 뜬금없는 경제학의 개념을 떠올리기도 한다. ‘절대 우위’는 원래 상품의 생산과 무역에 관련된 개념으로,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가 제시했다. 말 그대로 특정 상품을 더 잘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만약 A라는 나라가 휴대폰을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단시간에 많이 만들 능력이 있다면, 이 분야에서 절대우위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의 능력이나 재주에 빗대어 절대우위를 풀어볼 수도 있다. 당연하기 짝이 없는 예시지만(그리고 약간 어이없는 예시지만;;;),  손흥민 선수가 나보다 축구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 손흥민 선수는 축구라는 분야에 대해 절대 우위를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분야에 다른 이보다 뛰어나다 평가받는 사람들은, 해당 분야에서 절대 우위를 가진 셈이다.  


 그런데 절대우위 개념에는 맹점이 있다. 만약 다수의 분야에서 절대 우위를 가진 만능 인간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 굳이 협력할 필요가 없다. 가령 손흥민 선수와 나를 비교해 보았을 때 손흥민 선수가 나보다 축구도 잘하고 운전까지 잘한다면 나는 그를 위해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두 가지 재주만 비교해 본다면) 손흥민 선수가 혼자 경기장까지 운전을 한 다음 축구 경기에서 활약까지 하면 된다. 절대우위의 이론을 따라가면 경우에 따라 절대적인 승자와 패자, 쓸모 있는 쪽과 무용한 쪽이 나뉠 수 있다. 상호 협력의 필요성도 줄어든다. 



 

 절대우위의 맹점을 보완하며 나온 개념이 비교우위다. 또 한 명의 뛰어난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리카르도란 인물이 제시한 이론이다. 비교우위는 절대우위와 달리 상대적으로 상품을 더 잘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만약 A라는 나라가 B국가보다 휴대폰도 노트북도 잘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럼에도 다른 나라와 비교하지 않고 B국가가 가진 능력 안에서만 비교를 해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휴대폰과 노트북 두 가지 품목 중 상대적으로 더 잘 만드는 상품이 있을 것이다. 


 이건 사람의 재주에도 비유 가능하다. (실제 100% 그럴 테지만) 손흥민 선수에 비해 내가 운전 실력도 축구 실력도 부족할 수 있다. 그렇지만 두 가지 분야 중 상대적으로 내가 축구보다는 운전 실력에서 가능성이 엿보인다면 상대적으로 더 잘할 수 있는 운전을 해서 손흥민 선수를 도우면 된다. 이렇듯 타인과의 절대적인 비교 대신, 시선을 내부로 돌려 내가 가진 재주 중 상대적으로 더 나은 분야를 찾는 게 비교우위 전략이다.      


 길게 보면 인간의 진로나 적성을 찾는 것 역시 이 두 가지 개념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내가 어떤 분야의 상위 1%, 절대 우위의 입장이 되면야 좋겠으나, 세상 사람 모두가 그럴 필요는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당연하게도 어떤 분야는 상위 1%는 그 숫자가 적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상대적으로 잘하는 분야를 찾아 그 일에 주력하면 된다. 세상 모두가 손흥민이나 조성진, 김연아나 일론 머스크가 될 필요는 없으니까.  

  

 



 이런 방식의 비교가 늘 위안이 되는 건 아니다. 세상이 고유한 너의 장점을 찾아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는 주문을 연신 외쳐대도, 그게 마음에 도통 와닿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땐 좀 시니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봐도 좋다. 남들보다 못난 면이 있단 사실(객관적 진실)이 유독 슬픔이나 불안(감정)으로 연결되는 까닭이 뭘까. 


 면밀히 살펴보면 마음속 깊이 몇 가지 명제가 숨어 있을 수 있다. 가령 ‘내가 저 사람보다 못나서 슬프다’는 마음을 뒤집어보면 ‘나는 적어도 저 사람보다 잘나야만 한다’란 명제가 숨어 있을 수 있다. ‘내가 평범하기 짝이 없어서(또는 평범보다 못나서) 슬프다’는 얘기를 헤집어보면 ‘나는 남들보다 뛰어난 면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평범이나 그 이상은 되어야만 한다’는 규칙이 숨어 있을 수 있고. 


 이 명제와 규칙을 살펴보면 논리성이나 당위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일단 ‘평범’이나 '뛰어남'의 기준도 지극히 모호할뿐더러, 냉정히 말해 내가 원하는 분야에서 남들보다 반드시 잘 나고 잘 나가야 할 이유는 없다. 누구나 잘난 면과 못난 면을 가지고 있는데 '나는 이래야만 돼'라는 규칙을 스스로에게 적용할 경우, 도리어 열등감이 짙어질 수 있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아들러의 말대로, 도리어 내 자아상을 높은 제단 위에 올려놓아,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경우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20~30대 시절의 나는 내 직업적 능력에 매달리곤 했다 (외모나 부에 대한 관심보다 유독 ‘능력’에 대한 비교의식과 열등감이 강렬했다) 그 마음을 헤집어 보니 ”나는 무능력해서는 안 된다 “는 머릿속 명제가 있었다. 더 깊이 살펴보면 ‘내가 무능력할 경우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라는 막연한 불안도 자리해 있었다. 


그 마음속 규칙에 별다른 논리성이나 객관성이 없단 걸 깨달으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작디작은 존재일 때도 있고, 그래도 나름의 가치를 가진 존재임을 깨달으면 오는 평화가 있다. 내가 하찮으면서도 가치로운 존재란 모순된 명제를 받아들여야, 비교의식에서 오는 괴로움을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열등감도 비교의식도 무용한 감정이 아니다. 대다수의 감정이 그렇듯 직면하고 헤아리면, 그리고 실마리를 풀어가다 보면 거대한 덩어리가 아니라 작은 씨앗일 뿐이다. 열등감은 당신을 집어삼키지 않는다.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하다.      




안녕하세요 유랑 선생입니다. 오늘은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대해 다루어보았습니다. 


이미 글이나 책에서 여러 번 다루어 온 주제이지만, 그리고 저도 자주 느끼는 감정이고, 누구나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니만큼 또다시 글의 주제로 다루어 보았어요. 


냉정한 얘기일 도 있지만, 능력이나 재주, 매력,  운 그 모든 게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분배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단 모든 사람은 뿌리부터 줄기, 꽃피는 시기가 제각기 다른 식물에 가까운 거 아닐까 싶고요. 자신의 결핍이나 부족분을 느껴서 내 씨앗을 짓밟아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걸 원동력 삼아 독특한 매력이나 향을 지닌 꽃을 피워내는 사람도 있는 듯싶고요. 


 그리고 제 안의 열등감이나 비교 의식이 짙어질 때면 남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명제랑 누구나 다들 고군분투하면서 산다는 명제를 일부러 되새겨보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런 문장들이 큰 위안을 주더라고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날이 많이 무더우니 건강 조심하면서 한 주 보내시길요. 다음 글은 8월 25일(일)에(또는 그 전날쯤)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게으름 피우느라 글을 늦게 올렸어요;;;;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유랑선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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