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쓰기의 초기 시절 일입니다. 교정 과정에서 편집자와 30분 동안 6통의 메일을 주고받은 적 있어요. 책에 담을 통계의 출처 때문이었습니다. ‘부모가 자녀 1인을 키우는 데 쓰는 양육비’, 뭐 그런 통계 숫자를 실어야 했어요. A신문의 심층 기사에 담긴 통계 결과를 쓸 건지, B통계기관의 조사 결과를 활용할 건지 저와 편집자의 의견이 달랐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메일을 몇 번 주고받은 끝에 결국 편집자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죠.
숫자에 한없이 약한 주제에 경제 교양서를 쓰는 저는(지금도 한없이 약해서 책 작업 할 때마다 편집자의 피드백을 자주 받습니다. 슬프게도;;;) 그때 알게 되었지요. 아, 단 한 줄이라도, 단 하나의 단어라도 책에 들어갈 내용은 보고 또 보고, 곱씹어 봐야 하는구나. 책은 이토록 길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단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출간의 과정 중에서도 조용하고 치열하게 이어지는, 교정 단계부터 말씀을 드릴게요.
편집자- 저자 사이의 대화, 교정교열의 단계
교정교열은 수차례 이어지는 단계입니다. 짧게는 2~3개월에서 길게는 1년 가까이 걸리기도 해요. - 출판사나 편집자, 저자의 스케줄에 따라 이 기간은 달라집니다. - 저는 주로 세 단계를 적어놨지만 횟수나 단계는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닙니다. 원고의 종류나 완성도, 편집자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1) 초기에 원고의 방향을 전반적으로 고쳐야 하거나, 몇 단락의 내용을 고쳐야 할 경우, 편집자가 ‘개고’를 요청해요. 말 그대로 원고를 뜯어고치는 과정입니다. 이 꼭지의 글은 너무 튀어서 톤을 바꿔야 한다든가, 내용이 지나치게 어렵다든가,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어땠으면 좋겠다든가 등등의 다양한 피드백이 옵니다. 경우에 따라 몇 꼭지를 모두 갈아엎고 새로 써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쓴 책 중에 <1일 1 단어 1분으로 끝내는 경제공부>라는 도서의 경우, 타깃 독자에 비해 내용을 어렵게 써서 수개월에 걸쳐 원고 전체를 전부 다 고쳤습니다. 초고를 다시 쓴 셈이지요. <그림의 말들>의 경우, 편집자님의 피드백을 받고 한 단락만 세 번 거듭해 고친 적도 있어요.
물론 편집자의 개고 요청에 저자로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고칠 시간이 부족해 막막할 수 있어요. 그래도 제 경우엔 전반적으로 원고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방향이라면 그냥 고칩니다. 편집자는 가장 먼저 제 책을 읽는 독자이고, 좀 더 객관적으로 글을 평가해 줄 거라 믿기 때문이지요. 기본적으로 제 글을 성의 있게 꼼꼼하게 피드백해 주는 분을 편집자로 더 선호하기도 하고요. 일단 '먹이를 문 개'처럼 문장을 붙들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고쳐 보자는 주의에요.
하지만 편집자의 피드백 몇 마디로 내 글솜씨를 섣불리 비하하거나 좌절에 빠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편집자도 저마다 좋아하는 문체가 다르고, 나름의 취향이 있거든요. 편집자나 저자 중 한쪽이 무조건 옳다 단정 지을 일은 아닙니다. 조율을 잘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단 생각을 해요.
(2) 다음으로 책의 판형에 맞게 페이지 조절을 하고 그림도 넣어서 한글 파일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 교정을 할 때는 아래 그림처럼 메모를 덧붙이면서 원고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메모가 수십 개, 수백 개에 달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도 250개 정도의 메모가 담긴 원고를 받은 적 있습니다. (그 파일을 열자마자 너무 막막해서 자동으로 눈물이 터진 추억이 있네요 ㅎㅎ)
(3) 마지막으로 책의 본문 디자인이 얹힌 상태로 PDF 원고가 옵니다. 이런 걸 저자교, 최종교라 부르기도 해요.
본문 디자인이 얹혀서 이렇게 예쁘게(!) 원고가 옵니다.
저자교가 오면 이제 교정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주로 문장의 표현을 가다듬거나 오탈자를 찾는 데 주력해요.(이렇게 열심히 찾아도 책이 나오면 오탈자가 존재하는 게 신기하죠) 내용을 전반적으로 고치는 일은 저자교 이전 단계에서 끝냅니다. 디자인이나 책 내용의 배열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까요. 불가피하게 내용을 바꾸더라도 분량에 큰 변화가 없게, 글자 수를 맞춰서 수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자교는 책의 출간이 많이 남지 않은 시점에 주고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좀 더 빠르게 보고 편집자에게 마감해 넘기는 게 좋습니다.
이 교정교열의 과정이 때로는 하나의 거대한 대화처럼 느껴집니다. 편집자와 원고를 통해 개인적인 얘길 주고받는 일은 거의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한글 파일과 PDF파일을 교환하다 보면, 상대의 성향이나 생각, 일하는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어요. 긴장감이 커지거나 의견이 맞지 않아, 날이 설 때도 가끔 있지만, 이 과정은 대체로 조용하고 평화롭고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저자 프로필과 머리말 쓰기 단계
이렇게 저자교를 주고받을 때쯤을 전후해 저자 프로필이나 머리말(프롤로그)을 확인하거나 써달라는 요청이 옵니다. (물론 머리말은 처음 원고를 넘길 때 같이 써서 드려도 상관없어요. 저는 자꾸 까먹는 편이라 이때쯤 넘기긴 합니다;; ) 처음 책을 쓸 때는 이 단계에서 두근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내 저자 프로필과 프롤로그가 책에 실린다니!’ 그 자체가 큰 감격이었어요. 지금은 조금 부담스럽게 느낄 때가 많지만, 여전히 중요한 단계인 건 분명합니다.
책의 장르에 따라 저자 프로필의 모습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제가 쓴 책 중에서도 <어느 날 유리멘탈 개복치로 판정받았다>와 최근에 나온 경제 청소년 책 <자본주의 사회, 빈부격차는 당연한 걸까>라는 책의 머리말을 비교해 보시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왼쪽이 에세이에 쓴 프로필이고, 오른쪽이 청소년 책에 쓴 제 프로필입니다. 조금씩 다른 자아(?)를 내세우고 있지요.
프로필 작성하기 전에 같은 장르에 속한 책의 저자 프로필을 많이 봐두시고, 책의 특성이 잘 드러나도록, 또는 저자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게 쓰시는 게 좋아요.
머리말 역시 출판사나 편집자가 원하는 분위기나 책의 장르에 최대한 맞춰서 쓰는 편이에요. 에세이의 경우에는 온라인 서점에서 미리 보기를 통해 독자가 몇 페이지 펼쳐보고, 이걸 통해 책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으니 저자의 개성이나 글솜씨를 잘 보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청소년 책은 본업을 살려서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책이 어떤 면에서 독자에게 유익한지 생각하며 씁니다.
한 예로 <그림의 말들>을 쓸 때는 ‘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그림에서 배운 삶의 지혜’라는 콘셉트를 최대한 살려서 머리말을 썼습니다.
<그림의 말들>의 프롤로그 내용. 좀 더 부드럽게 이야기하는 투로 썼습니다.
2020년에 출간한 <최소한의 경제법칙>이란 경제 교양서를 썼을 땐 프롤로그의 분위기를 다르게 썼어요.
<최소한의 경제법칙>에 쓴 머리말 첫 부분. 이 책은 경제 교양서라 사실 중심으로 간결하게 문장을 쓴 편입니다.
당시 코로나 이후 경제 정책의 변동성도, 사람들의 관심도 커졌던 시기에 나온 도서였어요. 그래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는 최소한의 지식’이라는 콘셉트에 맞추어 머리말을 썼어요.
머리말에 나온 기획의 방향이 마음에 들면 편집자가 책을 홍보할 문구를 쓸 때 참고하기도 하고, 뒤표지에 쓰이기도 하니까 각별히 신경을 씁니다.책의 내용 중에서도 독자가 매력적으로 느낄 만한 부분이 무엇인지, 잘 생각한 뒤 쓰시는 게 좋습니다. (처음부터 이런이런 방향으로 머리말을 써달라고 말씀하시는 편집자분도 계십니다)
책의 대표 얼굴, 표지와 제목 정하기
이렇게 저자교, 프롤로그 등이 오갈 때를 전후해 책의 표지나 제목을 정하는 단계가 옵니다. 제목의 경우 저자가 의견을 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출판사 내부에서 책의 콘셉트이나 주요 독자층을 고려해 정한 다음, 저자에게 알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편집자나 출판사에 티 내지 않으려 하지만, 표지 선정이야말로 제가 가장 예민해지는 단계예요. 요즘에는 인스타그램 리뷰를 보고 책을 선택하는 독자가 많아서 표지가 무척 중요하거든요. 온라인 서점이나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책 표지의 느낌이 중요하죠.
보통은 디자이너분이 만든 표지 후보를 여러 개 주고 저자에게 어떤 후보가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아요. 출판사 내부에서 이미 최종 후보를 선정하고 저자에게 알려주기도 합니다.
저는 웬만하면 출판사에서 보내준 표지 시안에 OK를 외치는 편이에요 (남편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네가 미적 감각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표지에 아무 말 얹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요)
이렇게 표지 시안이 여러 개 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표지가 기대했던 느낌과 너무 다를 때가 있어요. 이상하게 출간의 전 과정 중에서도 표지가 기대와 다를 때 심적으로 많이 힘들더라고요.(14권의 책을 내는 동안 총 3번 정도 그랬네요.) 좌절의 늪에 빠지고 기력이 떨어져 정말 자리 깔고 누워버릴 때도 있어요. 다행히 앞의 세 번 모두 출판사에 의견을 솔직하게 말씀드렸고, 제 의견을 참고해서 디자인에 변화를 주셨습니다.
요즘에는 출판사나 저자가 책의 제목이나 표지 후보를 SNS에 올려서 이웃들의 투표를 받기도 해요. 이런 과정은 다수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나름의 홍보 효과가 있죠. 또는 크라우드 펀딩을 하거나, 가제본을 몇몇 독자에게 보내고 서평을 받아서, 책을 알리는 경우도 늘고 있습니다.
마무리 단계 - 인쇄, 제작 및 유통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편집자가 이제 인쇄에 들어간다는 얘기를 전해줍니다. 그리고 7일~10일쯤 후면 책이 출간되고 유통과 홍보의 단계가 시작됩니다. 10~20권 사이에서 저자 증정본을 보내주시기도 해요. 홍보를 위해 저자의 협조가 필요하면 마케터 분이 따로 연락을 주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책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알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죠. 저자가 책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발로 뛰고 강연도 잘 다니고 SNS에도 부지런히 책 소식 남기는 저자를 출판사에서도 선호하죠. (그래서 솔직히 출간 후가 더 힘듭...)
책 하나가 세상에 등장하는 과정은 이토록 길고 지난합니다.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걸리기도 하지요. 그렇게 들인 노력에 비해 책이 지나치게 안 팔릴 때도 참 많지만 ㅎㅎ 그래도 치열하고 성실하게 지나온 시간만큼은 추억으로 남습니다.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분들이 저자로 오래오래 남을 거라 생각하고요.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오늘은 출간의 단계에 대한 두 번째 글을 썼습니다.
제 경우 이 모든 단계 중 교정교열 단계에 특히 신경을 쓰는 편이긴 합니다. 어떤 출판사랑 작업을 할 때 마케팅이나 책 표지 등 다양한 면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할지라도, 편집자 분이 정성 들여서 제 원고를 봐주었단 느낌이 들면 감사한 마음이 더 크게 남더라고요. 다행히도 전 편집자 복이 많아서,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오늘 글은 너무 길고 자세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 요즘엔 제 오랜 고질병인 게으름병마저 도져서, 글 올리는 시간도 꽤 늦었습니다;;; 죄송하단 말씀드려요. 아, 그리고 출간의 단계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이나 메일로 문의 주셔도 좋습니다.
다음 글은 9월 8일(일), <다정한 교양>이나 <책 쓰는 마음>에 발행하겠습니다. 아직도 더위가 기승이지만, 그래도 선선한 가을을 기다리면서 즐겁게 하루하루 보내시길 빌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