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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Aug 25. 2024

출간의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1)

 첫 책을 집필할 때의 일입니다. 2018년 11월 초 초고를 탈고하고 편집자에게 원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날의 환희, 뿌듯함 등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원고 잘 받았다는 편집자의 답신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 거의 다음 해 1월까지 편집자에게서 원고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할 어떤 얘기도 오지 않았어요. 걱정의 달인답게 초조해졌습니다. 내 원고를, 편집자가 잊어버린 것 아닐까? 도대체 왜 아무 말이 없는 거지? 출간 계획에 문제가 생긴 걸까? 이러다 출판사에서 내 책 출간이 취소되는 거 아니야? 


 되돌아보면 질문 메일을 던지면 되는데 소심해서 연락을 하지 못했어요. 하염없는 기다림의 늪을 건너길 몇 달, 드디어 편집자의 원고 피드백이 왔습니다. 원고를 이런저런 방향으로 고쳐달라는 얘기였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원고를 고치고, 교정지를 두세 번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또 몇 주 간 연락이 없는 거예요. 오매불망 사랑하는 사람 편지 기다리듯 또 교정지를 기다렸는데,  어느 날 편집자의 청천벽력 같은 메일이 왔습니다.  ‘제가 건강 사정상 회사를 그만둡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원고의 작업은 ○○○차장님과 함께 하실 겁니다’ 이렇게요. 그때 2차로 멘탈이 붕괴되더라고요. 출간 취소 우려병(!)이 다시 한 번 도지더라고요. 


 지금은 압니다. 편집자도 1년에 처리해야 할 책 작업이 여러 개라 몹시 바쁘다는 걸. 출판사에도 출간 스케줄이 있다는 걸. 생각보다 편집자의 이직률(!)이 높다는 걸. 그렇지만 당시에는 모든 과정에 전전긍긍하고 불안했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잘 몰랐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출간의 전반적인 과정에 대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출간도 하나의 경험이고, 무언가 작은 팁을 갖고 있으면 경험을 할 때 커다란 도움이 되기도 하거든요. 직접 경험을 통해 매운맛 체험을 하는 것도 좋지만, 간접 경험으로 발 정도 담궈두면 그 팁 덕분에 훗날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하니까요.      





 출간의 첫 단계는 ‘책의 기획’입니다. 책의 전반적인 콘셉트와 방향을 잡는 걸 말해요. 이미 몇 번 말씀드린 바 있지만 책은 단순한 글의 모음집이 아니고, 책 전체의 내용을 하나로 묶는 기획과 콘셉트가 있습니다.  


 그 기획과 콘셉트의 방향을 한 줄로 축약할 수 있다면 더 좋습니다. 가령 ‘통계 숫자로 살펴보는 통계학자의 인문 에세이’(제가 방금 지어낸 기획입니다)라든지, ‘신발의 역사로 보는 청소년 인문학 책’(이건 제가 예전에 쓴 책 콘셉트) 등등한 줄로 줄일 수 있는 콘셉트이면 좋겠지요. 나중에 이런 콘셉트가 책을 홍보할 때 카피 문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기획이 현재의 출간 흐름과 맞아떨어지고, 저자의 이력과 연결되어 있으면 출간의 가능성이 더더욱 높아집니다.

 

최근에 출판사에서 원고 청탁할 때 받은 출간 기획서 양식 중 하나입니다. 제목과 기획의도, 주요 내용, 시장 동향 타깃 독자 등을 담습니다.


제 경우 이제 책 쓰는 경험을 몇 년 쌓았기에 출판사에서 원고 청탁이 먼저 오기도 합니다. 주로 메일로 오고, 출간 기획안이나 목차 가안 등을 보내주십니다. 때로는 이미 알고 있는 편집자분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가 출간 아이디어를 얻어서 새로운 기획에 들어가기도 해요.

 

제 경우 메일로 청탁이 들어오면 ‘왜 나에게 원고 청탁을 했을까’란 질문을 던져 봅니다. ‘내가 글을 짱!(?) 잘 쓰니까, 내 글에 편집자가 반했으니까, 나한테 원고를 청탁하는 거지’라는 식으로 자신감 넘치는 결론을 내면 잠시 행복하겠지만 원고 쓰는데 별 도움이 안 됩니다. 냉정하게 바라보는 눈이 필요해요.  


 물론 처음부터 제 글을 마음에 들어해서 절 저자로 염두에 두고 기획을 짜서, 출판사에서 원고 청탁을 주시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지만 제가 책을 내는 분야는 ‘기획에 가장 적합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에게 글을 맡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자의 전작이 있다면 그걸 보고 새로운 제안을 하기도 해요. 한 명이 아니라 후보 저자 몇몇에게 제안을 던져보고 제안을 받아들인 사람과 출간 계약을 맺기도 하고요.


가령 저에게 서양 명화를 다룬 청소년책 집필 의뢰가 들어온다고 생각해 볼까요. 그러면 ‘우리나라에는 명화를 다룬 글 쓸 수 있는 수많은 전문가가 있는데 왜 나에게 글을 의뢰했을까’ 질문을 던져 봐요. 제 본업이 교사니까 타깃 독자의 특성상 청소년 눈높이에 보다 더 맞는 책을 쓸 저자를 원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미술을 글감으로 하지만, 스토리텔링이 강조된 책을 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스토리텔링이 강조된 논픽션을 주로 책으로 쓰는 편이라서요)


 

이런 분석과정을 거치면 얻는 게 있어요. 편집자나 출판사가 원하는 기획 방향을 더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만약 편집자와 출판사가 원하는 책의 결이 내가 원하는 것과 미묘하게 다를 경우, 이 과정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조율을 해나갈 수도 있고요.


 출판사에 원고 투고를 하기 위해 출간 기획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예요. 저자로서 내가 쓰기에 적합한 기획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시는 게 좋습니다. 특히 나의 이력, 깊은 관심사와 관련된 글을 쓰시는 게 좋아요. 만약 내가 논술강사이고, 학생들의 문해력을 향상할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에 맞게 학부모나 학생들을 타깃으로 해서, 학습서나 자기 계발서를 쓸 수 있겠지요. 그전에 반드시 유사도서를 살펴보시는 게 좋습니다. 유사도서와 내가 쓸 원고 사이에 어떤 차별점이 있을지 찾으면서 책의 방향, 모양새를 잡아볼 수 있겠지요.


많이 쓰이는 출간 기획서 기본 양식입니다.

 

제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스토리가 있는 원고의 경우(소설이나 동화가 해당되겠지요?) 저자와 편집자가 기획 단계에서 시놉시스를 먼저 주고받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이야기 플롯을 어느 정도 잡고 집필에 들어가기도 한단 얘기를 들었어요.





 기획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으면 두 번째 단계로 목차와 샘플 원고란 걸 주고받기도 합니다. (투고를 했을 경우 이 과정을 생략하기도 해요. 그리고 출간 계약은 보통 기획안을 주고받는 단계, 샘플 원고를 주고받은 후에 이루어집니다.) 목차는 편집자가 짜서 저자에게 주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만, 저의 경우에는 경제나 사회 관련한 책을 많이 쓰기 때문에 목차를 제가 직접 짜고 책 구성도 직접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미리 편집자와 이야기를 주고받고 조율을 한 뒤 짜긴 하지만요.


 샘플 원고는 말 그대로  원고 전체가 아니라 한 두 꼭지 정도를 주고받는 절차입니다. (저자투고를 통해 책을 낼 때는 원고 투고를 할 때 샘플 원고를 미리 출판사에 넘는 셈이라, 출간 계약 후에 따로 이 단계를 거치지 않기도 합니다) 샘플 원고를 주고받으면서 원고의 전체적인 기획과 맞는지, 분량이나 용어의 결이 적당한지를 살펴봅니다. 글투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구성은 어떤 게 좋은지, 분량은 괜찮은지 얘기를 주고받습니다. 이렇게 주고받은 피드백을 참고하면 훨씬 더 좋은 원고가 될 수 있어요. 제 경우에는 같은 내용으로 글투를 두 개 정도 다르게 해서 샘플원고를 드리는 경우도 많아요. 그 글투에 따라 책의 분위기나 타깃 독자가 미묘하게 달라지기도 하거든요.

제가 투고할 때 보냈던 첫 책의 목차 가안(실제 책 내용은 많이 바뀌었습니다)과 당시에 보냈던 샘플 원고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책의 집필 단계입니다. 저자가 ‘자신과의 싸움’을 거듭하며 분투하는 단계죠. 어디에 원고를 쓰냐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전 그냥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에 원고를 씁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프로그램에 쓰는 원고를 쓰는 저자분들도 있어요.  원고 분량은 책마다 제각각이지만 청소년이나 어린이책의 경우 200자 원고지로 쳤을 때, 400~500매처럼 작은 경우도 있고(삽화가 들어가면 분량이 더 작아지기도 합니다), 성인 책의 경우 700~800매 정도에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책의 분량도 크기도 작아지는 경향이 있어요. 아마 스마트폰 사용으로 많은 독자의 집중력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제 집중력도 그렇긴 합니다만;;;)


한글 프로그램의 경우 원고 분량을 확인하시려면, 파일 - 문서 정보- 문서통계 탭에 200자 기준 몇 장인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글자 수나 A4분량으로 헤아리기도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저의 경우 편집자와 글 쓰는 일 외의 얘기를 많이 주고받지는 않아요. 집필은 결국 제가 시작하고 끝내야 하는 과정이니까요.  공과 사는 좀 구분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도 있어요. 일하는 사이로 만난 경우에는 서로의 정서적 교류도 중요하지만, 내가 맡은 일 똑바로 하는 게 최우선의 다정함이라 생각하고요. (이게 무조건 옳다는 건 아니고 제 가치관일 뿐입니다)


 물론 몇 권씩 같이 작업을 한 편집자분들과는 많이 가까워지기도 했고, 힘이 떨어질 때 서로 격려해 주는 사이가 된 분들도 있고, 연락도 정기적으로 하게 된 편집자분들이 이제 꽤 있어요. 이 분들과 만나서 책 얘기를 하는 것도, 글 쓰는 얘기 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고요.


그래도 일단 원고 일을 할 때는 편집자와 일 얘기를 하고, 의사소통도 메일로 주로 하고(사실 전 전화공포증이 있어서;;;) , 일 이외의 얘기를 메일이나 톡으로 많이 주고받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림이나 사진이 들어가는 원고를 많이 쓰는 편이에요.

 


 물론 소설이나 동화의 경우 다를 수 있어요. 며칠 전에 청소년 인문책뿐 아니라 청소년 문학을 많이 담당해 보신 편집자님을 뵌 적이 있어요. 소설이나 동화의 경우에는 스토리를 가진 글을 쓰다 막히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럴 때 작가가 편집자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길게 인연을 이어가는 경우도 많아서 저자와 편집자의 래포 형성이 조금 더 중요해진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에세이의 경우에도 저자의 내밀한 얘기를 주고받기 때문에 편집자와 저자 사이의 친밀감이 더 깊게 형성되기도 해요. (아, 그리고 에세이의 경우에는 숙제하듯이 한 달에 몇 꼭지씩 원고를 보내면서 중간중간 피드백을 주고받는 식으로 마감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든 저렇든 집필의 꽃은 원고 마감(두둥!) 입니다. 제 경우 원고 하나를 쓰고 마감하는 데 3~4달 정도가 걸려요. 저자에 따라 6개월에서 12개월까지, 더 많이 걸리는 분들도 있고요.


 예전에 지인 한 분이 '원고를 왜 이리 빨리 쓰냐. 공장형으로 일기 쓰듯 너무 막 쓰는 거 아니냐'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전 원고를 빠르게 쓰긴 하지만 절대 대충 쓰지는 않습니다. 내게 들어온 일을 건성으로 다루지 않고 나름의 연구를 거쳐 글을 쓴다는 제 원칙입니다. (물론 노력해도 기획 방향에 어긋나게 쓰거나 못 써서 편집자분의 빠꾸(?)를 먹을 수는 있지만 일단 열심히는 씁니다.)


  그리고 마감 부분에서도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굴긴 합니다. 되도록 늦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요.  만약 사정상 원고 마감이 늦어지게 된다면 반드시 편집자에게 먼저 연락해 괜찮은지 물어봅니다. 원고가 2주 정도 늦을 것 같다, 한 달 정도 늦을 것 같다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한 뒤에 글을 씁니다.


 그리고 출판사의 출간 일정이 빡빡해서, 또는 책의 특성상 마감을 꼭 맞춰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계절감이 중요한 책이 있지요. 가령 여름의 시원한 풍경을 담은 명화로만 구성된 책이 있을 수 있어요. 가을 느낌과 맞아떨어지는 독서 에세이를 쓸 수도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이슈가 되었거나 전염병의 역사 등 시기의 흐름에 맞춰 기획한 책도 있고요. 어린이 책이나 청소년 책의 경우 신학기의 시작,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 맞춰서 책 출간을 기획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 경우 정해진 시기에 마감을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적합한 타이밍을 놓치면 출간이 아주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한꺼번에 원고를 드리지 못하는 데 마감이 급박할 경우에는, 전체 원고를 1,2차로 나눠서 드리기도 해요. 편집자들도 저자를 판단할 때 글의 퀄리티와 원고 마감을 얼마나 맞추는가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니 이 역시 기억해 두시면 좋을 듯싶습니다.


 그리하여 초고를 끝내고 편집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렇다면 끝일까요? 아닙니다! 놀랍게도 새로운 시작일 뿐입니다. 교정과 출간 후반 작업의 첫 발걸음인 셈이죠.


 이 얘기부터는 다음 주에 글로 발행하겠습니다.


* 기타 출간계약에 관한 이야기

https://brunch.co.kr/@aring/233 

*출간 기획서 작성법  

https://brunch.co.kr/@aring/152




안녕하세요 유랑 선생입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책 쓰는 마음>에 출간 기획에서 초고 마감까지, 기획 출간의 과정을 다루어보았습니다.


실제로 첫 책이나 두 번째 책을 집필하면 디테일한 부분을 잘 몰라 헤매거나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분에 조금 도움이 되어 드리고 싶었어요. 저도 지금 내년에 본격적으로 집필 들어갈 원고의 샘플원고 작성 중입니다. (이 과정이 끝나고 피드백 주고 받은 후 출간 계약을 할 것 같습니다) 8월 끝무렵 까지는 이걸 작성해 보내야 할텐데 걱정이네요;;; 9월부터는 새 원고를 제대로 들어가얄 듯 싶고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주(9월 1일 일요일)에는 원고 교정부터 실제 출간까지 후반부를 다루어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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