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랑선생 Jul 18. 2024

겸업 작가의 세계

글쓰기와 자아분열

 새벽 다섯 시, 기차에서 펑펑 운 날이 있다. 그림 인문학 강의를 가는 길이었다.

 

전날 직장에서 업무 실수를 잔뜩 저지른 게 눈물의 원인이었다. 외부로 보내는 공문에도 오타를 한가득 냈, 사람 대하는 일에도 실수를 잔뜩 했다.


  그날 업무 멍청이가 된 느낌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저녁 아홉 시였다. (야근한 날이었다) 때마침 다음 날이 구미로 강의를 가는 날짜였다. 잠들었다 새벽녘에 깨서 강의 준비를 해야겠다 다짐한 채 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그날 한 업무 실수가 눈에 어른거렸다. 내일 강의는 어쩌지? 이 기분으로 강의도 망치면 안 되는데. 걱정과 불안과 자책의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밤을 거의 지새운 채 새벽 5시에 일어나 기차에 탔다. 이른 시간이라 기차 안이 적막했다. 아무도 없다는 안도감이 들자, 집에서도 삼키던 눈물이 쏟아졌다. 


 예전에 데이비드 호퍼 그림 속 여자처럼 근사하고 고독하게 기차에 앉아 있고 싶단 바람을 가진 적 있다. 여유롭게 독서도 즐기고. 그러나, 역시 꿈과 현실 사이엔 간극이 있다.  나는 그냥 기차에 앉아서 청승맞게 눈물을 줄줄 흘리는 여자가 됐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펑펑 운 건 흔치 않은 에피소드지만, 새벽 기상은 이제 내게  특별한 일이 아니다. 수개월간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중이니까.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바지런한 아침형 인간이냐고? 아니다. 나는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다. 밤에 혼자 깨어서 이것저것을 하며 놀면 도파민이 활성화되고, 머리가 핑핑 돌아가고 활력이 충전된다.


 이 내면의 올빼미형 인간을 조용히 누르고 반강제 미라클 모닝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글 쓸 시간과 여유가 부족해서다.

매일 새벽 보게 되는 책상 위 풍경. 이 풍경이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다.  



 아침 출근길까지는 분명 글쓰기 의욕이 살아 있다. 오늘 저녁엔 퇴근해서 꼭 글을 써야지 다짐한다. 그런데 직장에 가서 이런저런 문서를 읽고 처리하고, 동료나 학생들과 대화하고, 밥을 먹고 정신없이 일상의 의식을 치르다 보면 글쓰기 생각이나 의욕 따위는 사그라진다. 


 그저 퇴근길에 캔디크러시 하고(즐겨하는 핸드폰 게임이다. 2월에 시작했는데 벌써 1000단계를 넘었다), 집에 가서 소파에 드러눕고 싶다는 바람만 그득해진다. 귀가 후 저녁을 차리고 아이 숙제를 조금 봐주고 빈둥빈둥 유튜브 쇼츠를 보거나 캔디 크러시를 하다 보면 어느새 밤 열 시가 된다. 그 시간이 되어 아이가 잠들고 나면 그로기 상태가 되어, 아무 데나 누워서 뻗어버린다. 새벽 외에는 글 쓸 시간이 없는 거다.


 문제는 주어진 시간과 체력에 비해 내 글쓰기 욕심은 여전히 왕성하다는 것이다. 나는 1년에 원고를 2~3개씩 쓰고 책을 출간한다. 이 브런치 공간에 글을 쓰고 인스타에도 글을 또 쓴다.  올해도 남은 원고가 있고, 내년 상반기까지 원고를 두세 개 더 계약해 놓은 상태다.  


 이 만만찮은 집필 스케줄을  들으면 편집자들도 눈이 휘둥그레진다. 혀를 끌끌 차는 분도 있다. (어떤 편집자분은 나에게 ‘글쓰기 자판기’냐고, 되물었다.) 원고 쓰는 양을 좀 조절하라는 조언도 이어진다. 나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과 다짐을 자주 한다. 그럼에도, 글을 안 쓰고 있으면 ‘안 쓰는 고통’이 슬그머니 찾아온다. 이상하게도 활자를 마주하지 않고 일상을 보낼 때 오는 묘한 죄책감이 있. 


       



  물리적 시간 부족이 있다면 내면의 충돌도 있다. 글 쓰는 자아와 직장인 자아 간의 분열과 충돌이다.


 내 글 쓰는 자아타고난 기질과 맞닿아 있다. 의문과 호기심도 많고  발산형 사고를 하는 걸 즐긴다.


 가령 몇 주전 아이를 데리고 롯데월드에 갔다. 수많은 놀이기구 중  롤러코스터 이름이 French revolution(프랑스혁명)인 걸 보고 호기심이 솟았다. 어째서 French Revolution이라는 이름을 쓸까? 위아래로 움직이는 롤러코스터의 전복, 빠른 속도감이 프랑스혁명이 가진 의미와 맞닿아 있는 건가? 이런 걸 글 소재로 써보면 어떨까? (사실은 아무 상관도 없었음)


실생활엔 전혀 쓸모가 없지만  조금은 엉뚱하고 어긋난 생각을 하는 것, 무언가에 궁금증을 갖는 것이 내 글쓰기 자아의 큰 특징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성향도 그렇다. 글 쓰고 책 읽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러할 테지만 나 역시 빈틈없이 홀로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활자와 나, 둘만 있다는 느낌, 그 느낌이 좋아 글을 쓴다. 가끔은 외로움에 몸서리쳐도, 그럼에도 혼자서 무언가에 몰입해 있는 때가 내 최애 시간이다.





   그러나 왕성한 호기심이나 질문 던지는 습관, 홀로를 좋아하는 성향을 출근길에는 꾸깃꾸깃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내 본업은 교사다. 20대 초반부터 대략 10년간  교직 세계에 몸담았고, 긴 휴직 기간에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상태로 작년에 복직해 본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모든 직업의 세계는 복잡다단하다. 바깥에서 보기에 어떨지 모르겠으나, 교사의 세계 역시 그렇다. 더구나 이 일은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업이다.


 행정 업무의 비중도 적지 않다. 나 역시 하루에 적게는 너 다섯 개에서 많게는 10개 이상의 공문을 접수하고, 처리하고 기안한다. 작년에는 학생부 일을 맡았는데, 학교폭력 관련 공문과 안전 관련 문서, 재난 시 학교 구성원의 대피 장소가 어디인지 알리는 공문서를 작성하는데 하루의 대여섯 시간을 썼다.


 공문의 세계에 존재하는 규칙도 제법 많다.  기안을 할 때, 끝맺음은 반드시 ’ 끝.‘이란 글자로 해야 한다. 이 ' 끝'자를 쓸 때도 정해진 지침이 있다. 문서의 마지막 문장에서 두 칸을 띄어 쓴 다음, 끝. 자라고 써야 하는 것이다.  갑자기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다섯 칸쯤을 띄운 채 '끝' 자라고 쓰거나 기분 전환 하고 싶다고 내 마음대로 줄 바꿈을 한 뒤 문서를 끝내면 반드시 수정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문서 규칙의 세계. @https://blog.naver.com/sora_7817/221379549807


 공문 기안도 기한에 맞춰 올리는 게 중요하다. 교직원 회의나 교직원 연수, 안전교육을 할 때는 행사의 실시 자체도 중요하나, 행사를 실시하고 끝냈다는 걸 의미하는 증거자료(?)랑 내부결재 문서가 없으면 안 된다.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감사에 걸리니까. 내가 몸담은 세계에는 크고 작은 규칙이 많다.



 지침 많은 세계에서 버티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하나하나의 규칙에 너무 많은 의문을 품는 건, 특히 본질이나 의미에 물음을 던지는 건 금물이다. 이를테면 ’왜 공문서의 끝자락에는 끝. 자만 써야 할까, 이런 규칙은 대체 누가 만든 거야?‘ 따위의 질문을 던지며 사색을 거듭하다간 어떤 일도 처리하지 못한다. 약간은 기계적으로, 무심하고 빠르게 일을 처리해야 뒤탈이 없다.     

     

 업무를 처리할 때에도 되도록 기민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노력과 결과는 별개다. 노력하지만 잘 안된다. 일머리가 빠른 편은 아니라서, 공문에 들어갈 숫자에 오타를 내거나 메시지 공지사항에 실수하는 날이 많아, 늘 주의를 살핀다.


 이런저런 이유로 글 쓰는 자아는 직장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단 생각을 한다. 출근할 때 글 쓰는 자아를 마음속에 수납해 놓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글 쓰거나 책 쓰는 얘기도 잔뜩 하고 싶지만 가끔씩 편집자들을 만나거나 이웃분들을 만날 때만 하지, 직장에서는 되도록 삼간다. 그렇지만 가끔은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짓고 싶고 누군가와 글 쓰는 얘길 실컷 하고 싶을 때도 있다.





 글쓰는 자아와 직장인 자아는 계속 충돌 중이다.  물리적으로도, 내면적으로도.  여기에 '엄마자아'까지 더해지면 카오스 상태가 된다. 두세 개의 자아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어서, 지금은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언젠가 이 불협화음을 맞출 수 있을까? 오케스트라 화음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듯 이 세계에서도 적당한 화음을 찾을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오늘은 겸업으로 글 쓰는 일에 대해 적어보았습니다.


 주변에서는 직장과 육아를 하면서 글을 많이 쓰는 저에게 가끔씩 대단하다고 말씀해주세요. 바쁜 시간 중에도 글 쓰는 게 엄청나다고(!) 말씀해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계십니다.


 그렇지만 사실 제 내부 사정은 굉장히 엉망진창이고 복잡합니다. 시간도 부족하고, 글 쓰는 자아와 직장인 자아, 가정에서의 자아 사이의 분열이 매일 일어나고 여기저기에서 실수를 거듭하고 있거든요.ㅎㅎ 여기에 더해 글 쓰는 일에 욕심이 있어서 또 대충 하고 싶지는 않아서,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ㅎㅎ


 지금 이 글도 새벽 세시에 일어나서 쓰는데 정말 '내가 무리수를 두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구나'란 생각이 듭니다. 복직 후부터 시간 부족으로 이웃분들 글에 얼른 찾아가지 못하거나 댓글 다는 속도도 느려져서 그것 역시 죄송하고 아쉽더라고요. 정신 없이 일상을 보내다 보면 내가 글 쓰는 사람이 맞았나? 가끔은 스스로도 잊어먹어 고개를 갸웃거릴 때도 있고, 왜 나는 이 나이에도 여전히 자아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지?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서 생기는 일이라고, 스스로 좋게 생각하려고요.  


그나마 청소년 책 원고는 제 본업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 그럭저럭 쓸 수 있는데, 다음 달부터는 성인들이 볼 원고 집필을 들어갈 예정이에요. 이런 원고는 날카로운 촉이나 예민함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서 걱정이 많이 되지만, 어떻게든 해낼 수 있겠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글에 결론이 없고 제 고민과 그냥 떠도는 의문(!)으로 끝맺음을 해봤습니다.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단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다음 주에는 방학이긴 한데 월~수에 다른 학교에 가는 강연이 연달아 잡혀 있어서(그리고 가깝지 않은 곳에서 하는 강연이라) 목요일에 글을 올리는 게 무리수일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 주에는 한 주 쉬고 그다음 주인 8월 1일(목)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찾아와 읽어주시는 분들께 죄송하단 말씀을 드립니다.  


 비 피해 없이 하루 보내시길 빌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단 말씀드립니다.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유랑선생 인스타그램


 

          

이전 18화 출간 후유증에 관한 고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