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려 주변의 감탄을 받은 적 있다. 중학교 미술시간, 수행평가로 몇 시간 동안 그린 자화상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대여섯씩 줄을 지어 교실 앞에 나와 자신의 자화상을 들고 섰다. 미술 선생님이 평가 점수를 매기는 동안, 아이들의 실제 얼굴과 자화상을 비교, 대조하는 재미가 있었다. 본인의 모습을 조금씩 미화하거나 실제와는 다른 형상으로 그린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차례가 됐다. B4 크기의 스케치북을, 얼굴 옆에 들고 섰다. 내 작품을 본 친구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개성이 넘치는 화풍이라거나 뛰어난 예술성을 지닌 자화상이라서가 아니었다. 자화상이 실제 내 얼굴과 지나치게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웅성댔다. 어떻게 저렇게 자기 얼굴이랑 똑같이 그릴 수 있지.
당시의 나는 반에서 못생겼다는 얘길 곧잘 듣던 말라깽이 중2 여학생이었다. 학급의 일진 친구 한 명이 내 얼굴을 코앞에서 유심히 보더니 “진짜 못생겼네”라 말한 걸 들은 기억도 있다. 사춘기 시절이었으니 상처를 받았다. 겉으로 티 내지 않았지만 외모 콤플렉스도 좀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화상을 그릴 땐 외모 콤플렉스 같은 건 접어뒀다. 스스로에게 철저한 관찰자가 되어서 그림을 그린 기억이 있다. 두꺼운 안경을 껴서 더 작아진 눈, 야윈 얼굴(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나도 야윈 사람이었다), 살짝 튀어나온 앞니까지, 내 얼굴을 가감 없이 그려냈다. 덕분에 B4 크기의 스케치북 속에는 못생겼다고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얼굴이 고스란히 담겼다.
학급 전체의 감탄을 자아냈지만, 실기 점수는 평이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개성이 뛰어나거나 멋진 그림은 아니었으니 납득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나쁘지 않은 '자기 관찰자'였다. 스스로를 면밀하고 엄중하게 관찰하는 작은 인간이 내 안에 있었다. 자기 객관화라고도, 메타인지라고도 부르는 그것, 스스로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내 생김새나 깜냥을 판단하는 능력, 스스로를 추켜세우지도 비하하지도 않는 관찰자가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부터 마음속 관찰자의 쓸모를 다시금 깨달았다. 에세이를 쓸 때 특히 그랬다. 에세이를 쓰려면 내 마음과 생각의 모양을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 자학도 자뻑도 내려놓고, 미화도 비화도 거두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자세, 나의 행(幸)과 불행(不幸)에 대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제삼자처럼 바라보는 태도가 도움이 됐다. 이때 거리의 미학이 필요하다. 나에게서 지나치게 가까우면 자기 연민이나 지기 혐오를 호소하는 글이 되기 쉽다. 지나치게 멀어지면 글의 흥미가 떨어진다.
물론 나라고 해서 늘 자기 객관화의 달인이 되는 건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해 예전의 작은 불행이나 상처나 슬픔을 곱씹을 때가 가끔 있다. 가만히 그 마음을 들여다보다 '내 슬픔만 유독 깊고 고유하고 특별한 것'이란 생각에 압도될 때가 있다.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순간도 찾아온다. 이런 때는 아무리 담담하려 해도 글이 담담해지지 않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몇 달 전 sns에 짧은 서평을 하나 올린 시점이 그랬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란 책의 리뷰였다. 도입부를 내 이야기로 시작했다.
“가난은 내게 낯선 단어가 아니다. 가난한 집안의 아이였으니까. 어린 시절엔 네 식구가 가게 뒷방에 세간살이를 놓고 살았다. 학창 시절에는 교육비 지원을 받는 학생 중 하나였고. 임용 공부를 하던 때에는 마을버스비 250원이 아쉬워 도서관에서 집까지 30분 이상을 걸어 다니곤 했다. (...).”
단 몇 줄을 길어 올려 활자로 펼쳐냈는데, 그 첫 순간, 마음이 욱신거렸다. 심리적 저항감까지 있었는지 짧은 문단 하나를 쓰는데도 몇 시간이 걸렸다. 기묘한 일이었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다 여기던, 옛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끄집어내고 보니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 어딘가 여전히 아팠다.
처음 에세이를 쓸 땐, 스스로에게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혹시 내가 개인적인 아픔이나 상처, 자기 학대의 감정을 팔면서 글을 쓰고 발행하는 건 아닐까? 내 마음의 내밀한 걸 쏟아낸다면서 독자에게 부담을 주는 건 아닌지. 이 글을 본 사람들이 나에게 연민이나 동정을 보내지는 않을까?
지금은 스스로에게 품던 의구심이나 어려움이 많이 해소됐다. 몇 년간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몇몇 사실이 있으니까.
기쁨이나 슬픔, 행복과 불행의 구체적인 형태, 냄새, 질감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누구나 겪는 마음의 본질 같은 게 있다고 나는 믿는다. 희로애락이라 단순하게 뭉뚱그려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누구에게나 불현듯 미묘하게 스치는 감정이 있다. 그 섬세한 마음을 잘 관찰하고 잡아내 활자로 펼쳐낸 글이 있다. 그럴 때 독자는 공감과 흥미, 위안을 느낀다.
글 쓰면서 몸으로 익힌 몇 가지 요령도 있다. 아픔과 상처, 폭풍 같은 감정의 한 복판에 있을 때는 그 일을 활자로 즉시 옮기지 않는다. 글로 다룰 수 있을 때까지 마음속에 잘 묵혀두고 머리와 마음을 굴리며 그 일을 돌아본다.
글로 당장 옮기더라도 퇴고를 많이 해보기도 한다. 긴 시간, 수십 번 퇴고를 하면서 불필요한 접속사, 부사, 쓸데없이 덧대어진 말을 빼고, 언어를 가다듬으면 신기하게도 과잉된 감정이 가라앉는다. 담담하지만 흥미로운, 독자에게 글 쓴 이의 마음을 무작정 호소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글이 된다.
글을 쓰면서 애써 포장하거나 합리화하던 내 마음을 직시하게 될 때도 있다. 중학교 시절, 우리 반에는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던 친구가 있었다. 성적이 우수할 뿐 아니라 외모도 예뻐 친구들의 주목을 끄는 아이였다. 쓰는 언어도 반 친구들과 어딘가 달랐다. 백일장 시 부분에서 학년 전체 상을 타는 건 물론이었고.
마음속으로 나는 그 아이를 ‘고상한 척하는 가식을 지닌 친구'라 생각하곤 했다. 반면 나는 가식과 위선을 싫어하는 털털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자부했다. 20여 년 지나 글 쓸 일이 있어 당시의 마음을 다시 살펴본 적이 있다. 돌아보니 그때의 내 마음은 위선과 가식을 싫어하는 털털함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열등감과 질투에 가까웠다. 마음의 포장을 벗겨내고, 날 직시해 보니 스스로에게 팩폭을 당한 느낌이었다. 이런 과정을 매번 거쳐야 하니, 자기 직시는 내게도 늘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렇지만 그 직시의 순간, 날 내려놓을 때 오는 시원함이 있다. 글도 달라진다. 솔직한 인간의 글은 지루하기 어려우니까.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에게 느껴지는 투지 같은 것도 있다. 나를 끝까지 관찰하고 탐구해 언어로 잡아끌어낸 사람이 보여주는 힘. 그 용기와 힘에서 위안을 얻는 독자도 있다.
자기 성찰이나 메타인지 같은 심오한 말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 자뻑과 자학 그 중간 어디쯤에서 내 모습을 길어 올려 활자로 펼쳐낼 때, 포장된 마음이 아니라 생동하는 감정을 끄집어내는 순간, 에세이는 바로 그때 흥미로워진다.
이번 주에는 오랜만에 <책 쓰는 마음> 매거진에 글을 쓰게 되었어요. 에세이를 쓰는 건 제게는 늘 어려운 일이에요. 특히 저는 감정 소모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라, 마음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어려워해요. 그렇지만 내가 내 삶의 관찰자가 되고, 생각과 마음을 살피는 탐구자가 되어 그 결과를 활자로 펼쳐 내는 건 재미있고 뜻깊은 일이더라고요. 저에게도 독자에게도 그렇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에세이는 힘들지만 놓고 싶지 않은 일이에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립니다. 6월 첫 주에 원고 마감이 또 한 번 있어서 다음 주와 다다음주는 글 발행을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드려요 ;;;; (요즘 제 게으름이 극에 달했는지 원고 마감이 자꾸 늦어지네요;;;) 2주 후인 6월 13일(목)에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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