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랑선생 Jan 04. 2022

에세이 쓰기, 어떻게 할까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갖게 된 몇 가지 원칙  

‘글의 깊이가 조금 얕다’는 지적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청소년 지식책 원고를 투고했을 때 출판사 미팅에 가서 들었던 이야기죠. 당시에는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자료 조사를 열심히 했고, 이야기보따리를 한껏 풀어내 샘플 원고를 작성했다 생각했거든요.  


 이후에 다른 청소년 책들과 제 원고를 비교해 찬찬히 살펴보았어요. 당시 그 이야기를 해준 출판사와 인연이 닿지는 않았지만, 되새겨볼 부분이라 느꼈거든요. 이후에 이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전 이런저런 자료를 모아 이야기보따리를 한껏 풀어내는 데만 급급했거든요. 흥미로운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엮어 내는데 주로 관심이 있었어요(물론 여전히 글을 쓸 때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만의 시선으로 글감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과정을 거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글쓰기에 대해 저 혼자 이런저런 고민을 해보는 일이 늘었습니다. 조금씩 글 쓰는 요령을 터득해보고 싶은 마음이었죠. 브런치에 처음으로 에세이라는 장르의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직접 글을 쓰며 독자분들의 피드백을 살펴보거나,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며 요령을 하나씩 터득하는 게 저에게는 최선의 방도였거든요.


 일단 전 번뜩이는 재능이나 기발한 표현력을 갖춘 사람은 아닙니다. 찰나의 순간을 낚아채 멋진 글로 엮어낼 만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도 아니에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뛰어난 예술가들은 대체로 이런 재능을 갖추고 있더라고요.) 성실함이 제가 가진 최선의 미덕이라 생각했습니다. 장점이라 할 수도 있고, 한계라고 말할 수도 있는 지점에서 출발해 글을 써야 하니, 직접 부딪혀 요령이나 깨달음을 얻어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제가 에세이를 쓰면서 습득하게 된 몇 가지 원칙예요. 실은 원칙이나 노하우라 정의하는 것보다 제 고민의 흔적에 가깝다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대다수 분야가 그렇듯 글쓰기에도 정답은 없으니, 절대적인 요령이나 원칙이라 이름 붙이기는 뭐합니다.  글의 종류와 스타일에 따라, 글 쓰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모든 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참고사항 정도로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1. 메모를 많이 해본다.


 언뜻 생각이 떠오를 때, 좋은 글감을 발견했을 때 메모를 한 문장이라도 해두면 나중에 글을 쓸 때 수월합니다.

글쓰기를 위해 핸드폰에 적어 놓은 메모입니다. 왼쪽은 브런치 글을 위해 작년에 쓴 것이고 오른쪽은 2018년 첫 책(청소년 교양서) 쓸 때 적어놓은 메모예요


 개인적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타이핑하는 시간만을 ’ 글 쓰는 시간‘이라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글감과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자료를 뒤져보며 고민하는 시간, 이건 무조건 글 쓰는 시간에 들어간다고 생각해요.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일정 분량 써내지 못했다고 해서 글쓰기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생각과 고민의 시간이 길수록 좋은 글이 나온다고 느끼거든요.       


2. 스스로에게 질문을 많이 해본다.


  주로 제 생각이나 감정에 대한 글을 많이 쓰기 때문에 자문자답을 많이 해보는 편이에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인생의 큰 고민까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나는 왜 음식점에서 컴플레인을 못하고 우물쭈물할까?’ ‘모임에서 대화하고 나면 찝찝한 감정이 드는 건 왜 그런 걸까?’, ‘자존감이 쌓이면 인생이 바뀐다는 데 정말 바뀔까?’ ‘ 저 사람은 대화할 때 왜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는 걸까?’ 등등의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얻어 보려고 노력해요.   


 사실 에세이를 쓰기 전까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본 적은 거의 없습니다. '자신과의 대화'라고 하면, 주로  지시를 내리거나 머리를 쥐어박으며 구박을 하는 식의 소통을 주로 했거든요. 특히 스스로 취약점이라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들여다 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이 공간에 에세이를 쓰면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가령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회피하고 싶은 주제가 있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이 편치 않은 일이 있을 때 그 이유를 한 발 물러나 질문하며 생각해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나름대로 바람직한 변화라 느끼고 있습니다.            


3. 관찰과 발견, 연결 짓기를 자주 해보려 시도해 본다.


 에세이를 쓴 이후로 내 마음, 나를 둘러싼 상황, 사람들의 모습 등을 자주 관찰해보게 되었습니다. 의외의 발견을 할 때도 있어요. 때로는 엉뚱한 것, 사소한 일로부터 새로운 발견을 해보려고도 하고, 생각지 못한 분야와 글감을 연결 짓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아이와 공통 관심사를 가지려고 포켓몬 고 게임을 자주 하는데, 여기서 글감을 얻어보려 할 때도 있습니다. 몬스터볼로 포켓몬을 잡아서 키우는 게임이에요.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겠지만 포켓몬을 볼로 잡아서 수집하는(?) 게임입니다. 전 아직 24레벨;;;


 포켓몬을 키우면 더 센 종(種)으로 진화도 시키고 강화도 시킬 수 있어요. 특히 포켓몬을 진화시키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거든요. 힘도 세지고요. 게임 속 진화 장면을 보면서, ‘포켓몬이 진화하는 것처럼 내 모습을 완벽하게 다른 형태로 바꾸고 싶을 때가 있어. 그런데 원래의 내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나로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에 되려 힘든 적이 많았지.' 식의 생각을 계속해보는 거예요. 다소 거칠고 유치한 아이디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생각을 잘 다듬고 굴리다 보면 이런 것조차 글감이 될 때가 있어요. 


4.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넣어본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아도 훌륭한 에세이를 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그래도 제 경우에는 예시가 될만한 이야기를 풀어놓을수록 독자의 이해나 공감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가급적 집어 넣으려 하는 편이에요. 특히 첫 부분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넣는 편입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tv에서 본 장면,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 우연히 관찰하게 된 상황 등 구체적인 일화가 들어가면 글의 메시지가 독자에게 가닿기 쉽겠지요. 가령 ‘인생에 대한 깨달음’에 대한 글을 쓸 때 그냥 깨달음만 적어놓는 게 아니라 적절한 에피소드를 곁들이면 독자들이 글에 좀 더 공감하기 쉬울 거라 생각합니다.      


5. 나 자신을 어느 정도는 내려놓고 쓴다.


  원래 현실에서도 제가 하는 일이나 처한 상황을 부풀려 말하거나 미화하는 걸 싫어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렇지만 제 약점이나 찌질한 면을 드러내는 것도 가급적 피하려고 하는 성향입니다. 꽤 방어적인 성격이라 볼 수 있지요. 다만 브런치에 글을 쓸 때만큼은 제 찌질한 면을 드러내거나 부끄러운 속마음을 가급적 개방하는 편이에요.


 개인적 취향일 수 있지만, 에세이를 읽을 때만큼은 독자보다 윗자리에 앉아 바람직한 조언만 쏟아 내는 글은 흥미롭게 읽히지 않더라고요. 바람직하고 옳은 이야기만 풀어놓으며 날 가르치려 드는 친구를 만나면 즐겁지 않은 것처럼요. 솔직한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고, 모자란 구석도 적당히 풀어놓는 친구가 정감 가잖아요. 자신의 실패 경험이나 삶의 요령을 잘난 체하지 않고 조근조근 털어놓어 주는 선배에게도 마음이 가고요. 에세이를 읽을 때 그런 글을 보면 마음이 끌리더라고요.


 이건 나름대로 고무적인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내가 인격적으로 완벽하고 성숙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약간 모자라고 찌질해도 그걸 에세이로 쓰면 독자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무조건 솔직한 글이 좋다'라는 이야기를 하고픈 건 아닙니다. 다만 에세이 쓰기에 어느 정도의 진솔함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 누군가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데다 융통성마저 부족한 스타일이라 독자를 가르치거나 교훈을 주려는 글을 쓰기 쉬운 편이에요. 실제 그런 스타일로 글을 쓸 때도 있고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에세이 부분을 쓸 때에는 되도록 독자와 같은 위치에서 있는 그대로 쓰려고 노력합니다. 솔직한 마음을 빙빙 돌려 쓰기보다 직접적으로 글에 적는 편이고요. 솔직하게 쓸 자신이 없으면 그런 부분은 아예 글로 쓰지 않을 때도 많아요. 자기 검열의 늪을 피하는 건 지금의 저로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노력과 시도는 계속해보고 있어요.  


6. 초고를 쓸 때는 잘 쓰려는 마음은 놓아두고 시작한다.


 아무래도 처음 흰 여백을 마주하고 글을 쓸 때 가장 큰 부담이 옵니다. 글을 멋지게 꾸밀 수 있는 미사여구나 찰떡같은 비유를 넣고픈 마음이 솟아오르니까요. 한 마디로 잘 쓰고픈 욕구가 가득해집니다. 글을 통해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 박학다식하고 인생에 대해 좀 아는 멋진 사람, 고뇌에 가득 찬 예술가처럼 보이고 싶은 욕심도 자주 솟아올라요. (전 아는 체하고픈 욕구를 가진, 소심한 관종이니까요). 글쓰기에 욕심이 있으니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초고를 쓸 때만큼은 최대한 욕심을 놓아두려 하는 편이에요. 처음부터 그러면 글쓰기 부담이 커지더라고요. 애초에 글이 나오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고요.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을 쓸 때를 예로 들자면, 미술에 대한 지식 부분은 잘 쓰고픈 욕심이 그득해도 충분히 쓸 수 있습니다. 자료 조사를 충실히 하면 되니까요. 그렇지만 글의 앞쪽과 뒤쪽, 에세이 부분을 쓸 때에는 부담감이나 잘 쓰고픈 욕구는 가급적 내려두고 씁니다. '아무 이야기나 쓴다', '오늘 똥글이라도 하나 만들어본다'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부담 없이 글을 써볼 수 있더라고요.    

  

7. 생각이나 감정을 어느 정도 정리한 상태에서 글을 쓴다.


 처음에 제 이야기를 브런치에 쓸 때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고민의 상황, 감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태에서 모든 걸 활자로 풀어내려 했어요. (물론 고민이 샘솟는 문제나 감정이 끓어오르는 이야기를 글의 소재로 삼는 것 자체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진솔하고 깊이 있는 글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거든요.) 그렇지만 어느 순간 이후부터는 혼란스럽거나 감정이 끓어오르는 시기를 조금 지나, 그 문제를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상태에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되돌아보니 고민과 혼란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풀어내 즉흥적으로 발행한 글은 한 개 정도였어요.


 생각을 정리할 때에도 조심할 점은 있더라고요. 감정이나 고민의 정리가 ‘성급하거나 미화된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 게 중요했습니다. 가령 ‘어릴 때 상처 준 가족과의 일화’에 대해 쓰다가 생각의 정리 과정은 생략하고 마지막에 ‘그래도 가족이기에 그저 다 용서하고 사랑한다'라고 결론만 실으면 대다수의 독자들은 알아차립니다. 아, 이 사람이 속마음과는 다른 결론을 냈구나. 안전한 결말로 마무리했네. 아름답고 쉬운 교훈을 풀어쓰는 중이구나. 중간의 고민 과정이나 새로운 방식의 깨달음이 글에 드러나 있다면 얘기가 달라져요. 같은 결론이라도 독자들 역시 본능적으로 알아차립니다. 이 글감에 대해 글쓴이가 충분히 생각을 해보았다는 사실을요.


물론 결론을 굳이 넣지 않고 끝맺음한 글이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을 때도 많습니다. 여러모로 이 원칙은 케바케라고 볼 수 있어요. 저에게 유독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차마 말로 꺼내기 뭐한, 비관적이고 어두운 생각이 둥둥 떠다닐 때가 많거든요. 마음이 안 좋은 상태에서는 그걸 그대로 끄집어내 활자로 옮기고픈 욕구가 솟아날 때도 있긴 있지만, 전 그래도 읽는 분들을 많이 고려하면서 글을 쓰는 스타일이라 어두운 생각도 나름 순화해보려 노력은 합니다.  되도록 생각을 오랫동안 정리하거나, 관련된 책을 읽으며 제3의 결론이라도 끌어내 글을 써내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자연스러운 나를 드러내는 글이 더 매력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많습니다.

          

8. 퇴고의 힘을 믿는다.


 제 경우에는 퇴고를 여러 번 해요. 특히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5~7번 정도는 퇴고를 합니다(글을 쓰고 고치는 속도가 빠른 편이긴 합니다). 예전에 에세이 쓰기에 대해 고민할 시점쯤 우연히 고수리 작가님의 글쓰기 노하우 동영상을 본 적이 있어요. 동영상에서 글에 붙어 있는 접속사나 부사, 주어 등 불필요한 말을 빼면 글이 담백하고 담담해진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원래 글에 군더더기를 많이 넣는 편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퇴고를 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은 많이 빼기 시작했습니다.


 이 '빼기'의 과정에 의외의 묘미가 숨어 있더라고요. 접속사나 부사, 주어를 지우면서 글에 담긴 감정 과잉이나 자의식을 조금씩 내려놓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찌 보면 인생 속 마음가짐과도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자의식이나 피해의식 같은 군더더기 감정을 내려놓으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신경 쓰지 않으면 어법이나 맞춤법에 틀린 말을 자주 쓰는 편이라 퇴고에 공을 들이는 편입니다  (그래도 틀린 건 계속 나오긴 합니다. 글 발행하고 나서 깜짝 놀라 수정할 때도 많습니다) 퇴고하면서 글의 구성도 계속 바꾸는 편이에요. '내가 넣은 에피소드가 전체적인 메시지에 부합하는 이야기인가' '글의 구성 상 앞의 이야기를 뒤로 빼는 게 좋을까' '이야기 흐름이 자연스러운게 맞나' 등등의 생각을 거듭하며 글을 고칩니다.

브런치에 올린 글 중에서도 퇴고를 게을리하고 발행한 글이 중간중간 있어요. (독자들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제 스스로 확실히 만족스럽지 않더라고요.


 퇴고의 힘을 믿으면 글을 처음 쓸 때 마음속 불안감도 덜어집니다. 쓰레기 같은 초고를 써도 '고치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면 되니까요.




 이렇게 긴 이야기를 꺼내 썼지만 저 역시 여전히 글쓰기에 계속 고민이 있어요. 일단 독자에게 친절한 글을 쓰고픈 욕구가 큰 편이라, '여백의 미'라곤 1도 없는 글을 쓸 때가 많아요. 퇴고할 때마다 글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기도 하고요. 이야기보따리를 마구 풀어놓는 스타일이라 읽는 이들이 가볍게 접근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요. 앞으로도 개선해야 할 사항은 계속 나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제 글에서 계속 고쳐나갈 점이 보인다는 건 괜찮은 징조이기도 합니다. 글쓰기에 여전히 흥미와 욕심이 있다는 이야기고, 앞으로 공부하고 배울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참, 댓글로 글쓰기에 대한 생각, 고민이나 질문을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저도 며칠 전 이웃 작가님 댓글에 글쓰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거든요. 친절하고 상세한 답변을 달아 주셔서 도움을 얻었어요). 2022년에 글쓰기에 관심 있으신 모든 분들의 건필을 기원하며 이렇게 글을 마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