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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Jun 27. 2024

출간 후유증에 관한 고찰

저자가 되는 일에도 성장통이 있다

많은 이들이 출간(出刊)을 출산(出産)에 비유한다. 책을 쓰고 세상에 내어놓는 행위를 열 달간 자식을 뱃속에 품고 낳는 일에 비유하는 것이다.


둘 다 겪어본 입장에서 너무 다른 세계의 일이라 이 비유가 맞는 걸까 의문도 들지만, 분명 공통점은 있다. 둘 모두 후유증이 있다는 것이다. 출산 후 훗배앓이가 오거나 갑작스레 뼈마디가 시큰대듯, 출간에도 나름의 통증이 따른다. 정신적 통증이다.      


 첫 책을 냈던 때의 일이다. 편집자의 문자가 왔다. “이제 책이 나와서 온라인 서점에 등록되었어요. 저자 증정본은 어느 주소로 보내드리면 될까요?”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출간은 대체로 이 메시지로 시작한다. 지금은 이 문자나 메일을 받으면 '이제 결과를 대면해야 되는구나. 아 어디 멀리로 도망가고 싶다'란 마음이 들지만, 당시에는 큰 떨림과 설렘이 있었다. 마음만 떠는 게 아니었다. 손도 부들부들 떨렸다. Yes24에 들어가 내 이름을 검색해 봤다. 놀랍게도 내 이름과 책이 검색 결과로 화면에 자리한 게 아닌가! 아아. 이제 나도 셀럽(?)의 삶을 살게 되는 걸까? 설렘이 잠시 떠돌았다. 감개무량했다. 그러나 그 기대와 설렘의 지속시간은 5분에 불과했다

 

 정확히 5분 뒤, 비관주의자인 내 머릿속엔 걱정의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내 책이 나온 걸 누가 어떻게 알수 있단 말이지? 세상 사람들(!)이 날 모르는데?! 만약 우리 식구들만 책을 사줘서 대여섯 권 정도만 팔리면 어찌해야 되는 거지? 출판사가 비용을 들여서 내 책에 투자를 한 건데, 판매량이 나오지 않으면 회사 운영에 손해를 끼치는 건가? 등등. 다채로운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돌았다.




 

 이것이 바로 출간 후유증의 시작이었다. 원고를 집필할 때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후유증.


 대체로 첫 책을 집필하는 저자는 ‘내 이름 박힌 책을 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집필에 몰두할 목표가 뚜렷하니 글쓰기의 동력이 된다. 가끔은 설레는 상상도 머릿속에 찾아든다. “책을 출간했는데 갑자기 베스트셀러로 대박이 나는 거 아닐까?” “급작스레 유명해지면 어떻게 하지?” 등의 상상도 가끔 한다. 이 기우가 현실로 구현되는 경우도 있다. 첫 책이 대박 나서 출판계의 신데렐라로 거듭나는 경우다.  


 그러나 반대의 상황이 훨씬 많다. 출간을 해도 일상의 삶은 이어지고, 사람들은 내 책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고, 내가 내 책을 알려야 하는 상황도 온다.


 첫 책의 경우 지인들에게 ‘나 책 냈다’고 널리 알리는 일이 가능하다. 지인들도 진심으로 축하를 해준다. ‘네가 저자가 되다니!’ ‘네 책 꼭 사볼게’'아니, 바쁜데 언제 이런 걸 썼어' 등등의 따스한 응원과 격려와 칭찬의 말이 오간다.


의외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지인도 있다. 어떤 때는 주변인의 이 시큰둥한 반응에 야속한 마음이 찾아온다. 결혼식을 치른 사람이 ‘내 결혼식에 와준 사람과 외면하고 오지 않은 사람’으로 주변인 은근히 나누는 것처럼, 첫 책을 낸 저자가 지인의 목록을 ‘내 출간을 축하해 준 사람’과 ‘축하해주지 않은 사람’으로 슬쩍 분류하는 일도 생긴다.


 그러나 이런 절차도 두 번째 책을 낼 때부터는 반복해야 할까 망설이게 된다.  강매도 아니고 '나 또 책 냈다'라고 알리는 게 조금 민망해지기도 한다. 지인이 아니라, 책에 걸맞은 적절한 타깃 독자를 염두에 두고 원고를 써야 하겠구나.  깨달음을 얻게 되기도 하고.  


 

 온라인 서점에서 내 책 판매지수를 살펴보는 것도 출간 후유증의 주요한 증상 중 하나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yes24나 알라딘, 교보문고에서 내 책을 거듭 검색하는 의식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 미묘한 숫자 변화에 하루의 컨디션이 왔다 갔다 할 때도 있다. 그러다가 다른 베스트셀러가 눈에 띄면 그 저자를 남몰래 질투하거나 부러워할 때도 있다.


 가끔은 누군가 SNS에 올린 내 책에 대한 혹평을 발견하고 비탄의 바다에 빠지기도 한다. 누군가 이런 내 모습을 본다고 상상하면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것 같지만, 내 생각에는 책을 낸 저자 97.7% 정도는 겪는 일이니(개인적으로 추측한 숫자) 크게 부끄러워할 건 없다.


 갑자기 출판사에 책 반응이 어떤지 질문을 던지고 싶을 때도 있다. 편집자나 마케터에게 은근슬쩍 질문을 건넬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이것조차 망설여진다. 만약 편집자가 무심하게 ‘별 반응이 없어요’라는 말을 건넨다면 어쩌지? 그 답에 더 상처받을 나를 상상하면서 질문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 경험상 책 반응이 진짜 좋으면 편집자가 먼저 말을 건네는 경우가 대다수이긴 하다 –


 가끔은 마케팅을 이런 방식으로 할 거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편집자나 출판사도 있고, 마케터분이 따로 연락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별다른 얘기가 없는 경우도 있어서, (대체로 내가 책을 내는 청소년 분야는 좀 더 그런 경향이 있다) 괜스레 애가 타는 때도 있다.    





 출간 후유증 증상을 주절주절 늘어놨다. 그러면 이 증상을 빠르게 극복할 적절한 대처나 치유법이 있을까. 읽는 분들께 죄송하지만, 책을 여럿 출간한 나 역시 명확한 치유책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 일에도 '시간이 약'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통용된다. 몇 달 지나면 날 달뜨게 했던 출간의 희열과 비애가 자연스레 사그라지니까.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지만, 내 나름의 미온적 해결 방도도 찾았다. 몇 주 정도 후유증을 앓은 다음, 재빨리 다음 원고 작업에 착수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고민거리로 원래의 고민거리를 덮어버리는 방식인데, 의외로 효과가 있다.


 나는 줄기차게 이 방법을 쓰고 있다. 첫 책을 출간한 것이 2019년 4월인데, 5년 정도 시간 동안 책을 거의 열세 권 냈으니까 집필을 쉰 적이 없다. 다음 원고 마감에 대한 걱정으로 출간 후유증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솔직히 똑똑한 방법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어떨 땐 좀 멍청이 같단 생각도 들고- 새로운 원고를 더 쓰고픈 욕심과 맞물려 이 방식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5년간 출간한 책(청소년책 + 교양서) 의 사진이다. 사실 지난 달에 한 권 더 내서 13권인데 책 사진이 없다. 아무튼 나는 출간 후유증도 13번 앓은 격이다.



 물론 이 방식에도 부작용이 있다. A원고의 출간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B원고를 써야 하는 일이 . 출간 소식으로 정신이 흩어져 B 원고에 집중도 안 되고 안절부절못하다가 급기야 마감까지 늦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내 경우 쉬지 않고 원고를 집필하는데, 타고난 완벽주의 기질 때문에 글을 대충 쓰는 것도 싫어하니, 무식한 전력 질주를 하게 된다. 덕분에 체력 소진이 만만치 않고 번아웃도 여러 번 겪었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출간 후유증 치료제는 명확하다.  ‘책 판매량이나 반응이 좋은 것’이다. 반응이 좋으면 출간 후유증은 비교적 짧고 즐겁고 흥분된 상태로 지나간다. 그러나 이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니 차치해 두자. 다만 숫자나 눈에 보이는 결과가 치유책을 마련해주지 않더라도, 의외의 지점에서 치유되는 경우도 있다. 독자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는 댓글이나 서평을 읽는 경우다.

 

내 경우 그림에세이 <그림의 말들> 원고가 그랬다. 두 번째 그림 에세이였기에 집필 과정에서 고민과 번민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던 원고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마음속 나만의 작은 확신은 있었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오면 - 결과는 어떨지 모르겠고, 책을 별로라 할 사람도 있겠지만- 분명 어떤 독자에겐 도움이 될 것이다. 마음과 정성을 쏟은 글이니까. 그 작은 확신으로 버티며 원고를 쓰고 손질하고 다듬었던 기억이 난다.


 예상대로 이 책의 출간 후에도 여지없이 출간 후유증은 찾아왔다. 그런데 어느 날 내 인스타그램 DM으로 한 정신과 의사분이 댓글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감사 인사였다. 이 책 내용을  병원에 오는 환자들에게 소개해주셨다는 얘기였다. 환자들에게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줘서 고맙단 말씀을 건네주셨다.


그때 찾아온 뿌듯함이 있다. 정확한 표현법을 찾지 못한 뿌듯함. 아, 내 글이 필요한 독자에게 가닿아 제 역할을 다 했구나. 그래도 뚜벅뚜벅 제 길을 걸어가 쓸모를 다 한 거구나. 숫자로는 표현 불가능한 치유약도 세상에는 있었던 것이다.      





 최근 편집자들과 미팅을 할 때마다 ‘출판 시장이 진짜 어렵다. 책이 너무 안 팔린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소수의 유명 저자가  도서 말고는 이제 책이란 건 잘 팔리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오간다. 활자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듯 느껴지는 이 시기에 나는 왜 흩어지는 정신을 붙들며 원고 쓰기에 매달리고 있을까. 허공에 대고 열심히 삽질하는 듯한 이 기분은 뭘까 란 의문도 오가는 최근이다.   

   

 그래서일까. 이제 새로운 원고 집필에 들어갈 때 ‘계란으로 바위 치기’란 문구를 떠올리게 된다. 집필은 그럭저럭 즐겁지만 출간 후를 상상하면 오는 막막함이다. 가끔은 의문도 솟는다. 이 계란으로 바위를 내리치는 행위를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때로는 생각을 바꿔본다. 기왕에 계란으로 바위를 칠 바에야 되도록 좋은 계란을 고르고 키워봐야겠다는 오기를 품는다.(출판사나 편집자분들은 싫어할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필요한 사람의 마음에 가닿을 튼실하고 좋은 계란. 바위에 부딪히고 깨질지언정 그래도 제 쓸모를, 제 역할을 잘 해낼 결과물을 품고 낳는단 마음. 겉으로는 무용해 보일지라도 꽤 쓸모 있는 치유제 아닌가.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

오늘은 출간 후유증에 대한 글을 써보았습니다. 의외로 책을 낸 많은 저자들이 겪는 현상이라, 오늘 한 번 글을 적어보았어요. 출간 후유증을 겪으면 갑작스레 모든 게 허무해지고 공허한 마음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다음 원고나 글을 쓰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책 내는 경험이 쌓이고, 제 역할을 잘하고 있단 믿음이 생기면 솔직히 이 후유증의 기간도 짧아지고 무뎌지긴 합니다. 그러려니 하면서 다음 원고나 잘 쓰자 ㅎㅎ.  마음이 든다고 할까요. 아무튼 무뎌지는 것도 꽤 도움이 된답니다. 그리고 출간 후유증을 겪으면서 '내가 이런 이유 때문에 글을 썼구나' 내지는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글을 써봐야겠다'는 마음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새로운 방향을 찾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죄송한 말씀드려요. 제가 최근에 원고 마감이랑 학교 업무로 바쁜 기간이 한꺼번에 와서;;; 글쓰기 쉽지 않은 상태예요. 다음 달쯤 또 새로 청소년 책이 한 권 더 나오지 않을까 싶고  다른 진행 중인 원고들도 기획 단계에서 목차를 짜거나 그림 파일 정리해서(이제 초안 넘긴 원고의 경우예요) 드려야 하는데 너무 늦고 있습니다ㅠㅠ. 정말 출퇴근과의 병행은 어렵긴 하네요. 그래서 죄송하지만 다음 주는 한 주 쉬고, 7월 11일(목)에 글을 발행하려고 합니다. 정말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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