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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Mar 28. 2024

책 쓰기의 편익과 기회비용

책쓰기로 얻는 것과 잃는 것엔 무엇이  있을까

 ‘책을 써보세요. 당신의 인생이 180도 바뀝니다’ 종종 SNS에서 눈에 띄는 광고 문구다. 누군가는 책을 쓰며 인생이 바뀐다 말한다. 누군가는 인생의 수많은 이벤트 중 하나일 뿐이라 하며 손사래를 친다. 어느 쪽이 진리일까. 나도 가끔 궁금해진다.


인생이 바뀐다는 건 (+)와 (-)의 셈법으로 따질 때 책 쓰기의 결과 가운데 (+)가 가득하고, 득과 실을 따질 때 득이 우세하단 의미일 텐데. 그렇지만 모든 선택에는 좋은 결과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내 지론이다.  얻는 것과 잃는 것, 득과 실, 편익과 기회비용. 모든 게 존재하지 않을까.




 나에게도 기회비용과 편익을 재는 양팔저울이 있다. 책을 쓰면서도 가끔은 이 저울에 무게를 가늠해 본다. 책 쓰기의 제1의 편익은 뭘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책을 쓰며 내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말하는 건 경제적 수익이나 인기, 주목받는 삶, 뭐 그런 것 아닐까.


 그러나 책 쓰기로 인생이 180도 바뀔 정도가 되려면 참으로 많은 행운과 노력과 타이밍이 따라야 한다. 출간한 도서가 빵빵 터지는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책을 쓴 후 자기 홍보를 멋들어지게 해내 셀럽이 되는 사람도 있겠지. 나 역시 책 쓰기나 글쓰기로 수입을 얻거나 강연 기회를 얻기도 한다(글쓰기를 지속적인 업으로 삼고 싶어 유독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렇다고 책 쓰기로 월 1,000만 원-요즘 최고 유행어-수익을 얻는 사람이 되었다고 셀럽이 됐다는 과장된 얘길 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에게 이상한 환상을 심어주는 게 싫다.


 

 그 외에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 경우 경제적 수익을 책 쓰기의 제1의 편익으로 삼진 않는다. 돈의 중요성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수익만 바라보고 책을 쓴다는 건 월 천 수입을 얻기 위해 매일매일 로또를 사는 것과 비슷한 행위다.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곤 노력 대비 성과의 비율, 가성비가 극히 떨어지는 일이다.


 '내게 맞는 일을 찾았다는 것'. 그게 책을 쓰면서 느끼는 제1의 즐거움이고 편익이다. 본업과 비교해 보면 이런 점이 더 두드러진다. 사람을 대하면서 수업과 생활지도를 수행하고 행정적인 서류와 씨름하는 게 내 본업의 특성이다. 규칙과 숫자로 가득한 공문을 대하는 일에도, 타인을 지도하는 일에도 어느 정도의 꼼꼼함과 명쾌함, 자기 확신이 있는 게 좋다. 그 외에도 빠른 판단 능력, 사회성, 사람을 대하는 온기, 음계 ‘솔’ 정도의 톤으로 유지되는 목소리 등등을 갖추면 더욱 좋고.(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연령대가 어린 대상을 가르치는 일을 하려면 '솔' 높이까지는 아니더라도 '파' 정도의 목소리라도 가지는 게 장점이 된다)

 

그러나 나는 명랑함이나 명쾌함보단 그 대척점에 서있는 기질을 갖춘 편이다. 낮은 텐션, 자기 의심으로 미끄러지는 성향, 머릿속에 그득한 호기심과 의구심, 복잡하고 느릿한 사고, 관조적인 태도 등등. 본업을 시작할 즈음부터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단 사실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딱히 비극적인 일은 아니다. 날 제외해도 대한민국에 적성에 안 맞는 일 하는 사람이 99만 명 이상은 되지 않을까?) 그러나 성인으로 먹고살려면 어떻게든 직장에 적응해야 했다. 남보다 1.2배 정도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게 내 신조이기도 했고. 노력하고 적응해서 남들만큼은 본업에 익숙한 인간이 됐다.


그러나 노력이 타고난 품성까지는 바꾸지 못한다. 애를 써도 달라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십 년째 일을 해도 내 텐션은 높아지지 않았고, 의심이나 질문 가득한 성향도 바뀌지 않았다. 타고난 기질이나 성향을 많이 누르면서 일을 했다. 가끔은 의심이 솟았다. 이 일이 과연 내게 맞는 걸까? 맞지 않는 퍼즐에 내 몸을 우겨 넣고 있단 느낌도 이따금 찾아 왔다.  


 다행히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내게도 잘 맞는 일이 있다는 걸. 직장에서 열심히 숨기고 감추고 바꾸려고 했던 그 성향이 글쓰기엔 제법 도움이 된단 사실도 깨달았다. 글을 쓸 때는 내 기질을 창피하게 여길 필요도 없었고, 부족하단 걸 들키지 않으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몸에 잘 맞는 옷을 입고 뛰는 것처럼 많은 게 자연스러웠다.

 


 자기표현의 욕구를 채우는 즐거움도 책 쓰기의 편익 중 하나다. 고상하게 자기표현의 욕구라 했지만 뭐, 이 표현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기 과시의 욕구아는 체하고픈 욕구도 포함되겠지. 일단 책을 썼다고 하면 사람들이 대체로 뭔가 속알맹이가 가득 찬 사람, 재능 있는 사람으로 봐주니까 (마음속으로) 괜히 으스댈 때도 있었다. 나처럼 내현적 관종인 사람이 있다면 다양한 욕구를 쓰기로 채울 수 있다 말하고 싶다. 그러나 유의점도 있다. 과시하고 멋져 보이고픈 욕구만으로 책 쓰기를 지속하는 건 어렵다. 다른 사람 앞에서 으스댈 수 있는 시간보다 글이 나오지 않아 자기혐오나 죄책감에 빠지는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으니까.  


 활자의 씨실날실을 엮어서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것도 내겐 주요한 즐거움이다. 지식의 부스러기를 묶고 엮는데 특히 큰 재미를 느낀다. 이를테면 내 감정을 반 고흐나 르누아르의 그림과 묶어 설명하거나, 인간사 새옹지마의 경험을 경기변동 그래프과 엮어 활자로 풀어낼 때 즐겁다. 요즘에는 정물화와 경제사를 엮는 원고를 쓰는 중이다. 이런 원고를 쓰려면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 중세 유럽 흑사병의 유행, 자본주의의 역사 등 관련 있는 지식 요소를 적당히 엮고 버무려 글 하나를 완성해야 한다. 퍼즐을 맞추는 과정과 비슷하게, 이야기를 어떻게 엮고 풀어나갈지 상상하는 과정이 좋다. 수많은 글쟁이들이 책을 쓰면서 나와 비슷한 즐거움을 느끼지 않을까? 이야기를 엮고 풀어나가는 데서 오는 희열, 이야기 보따리를 푼다는 즐거움은 다른 것과 비교 불가한 것일테다. 


 



물론 즐겁고 행복한 순간만 찾아오는 건 아니다. 책을 쓰면서 치르는 비용와 대가가 분명 존재한다. 


내게 있어 제1의 복병은 외로움과 고립감이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정반대였다. 타인과 부대끼는 게 제일 버거웠다. 직장 동료와 적절한 스몰토크도 해야 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도 해야 하고 아이들 설득도 해야 하고. 누구나 직장 생활을 하면 그렇겠지만 가끔은 비상식적인 사람을 만나 상처받는 일도 겪었다.


 그러나 책 쓰는 일은 사람과의 상호작용 빈도가 낮은 업무다. 물론 편집자를 만나거나 책을 홍보하는 일에는 사회성이나 자기표현 능력이 필수지만, 원고 쓸 때는 사람 대할 일이 많지 않다. 머리를 굴려서 생각한 바, 공부한 바를 활자로 전환하면 된다. 편집자나 출판사와도 대개 메일로 소통한다. 인간관계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은 환상적인 생활로 느낄만한 일이다.


 그런데 휴직으로 전업 작가 체험을 몇 년 했을 때, 나는 외로움에 취약한 인간, 고립감에 치이는 사람이 됐다. 말할 사람 없이 몇 날며칠 노트북과의 대화만 지속하다 보면 시시껄렁한 스몰 토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문득 생각난 농담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도 얘기할 동료가 없어서 핸드폰 메모장에 적는 날도 있었다. 홀로 머리만 굴리는 생활을 계속하니 자아까지 비대해졌다. 기분의 환기가 되지 않으니 별거 아닌 일에도 감정이 속절없이 날뛰곤 했다. 



글쓰기 전의 나는 스스로를 상식적이고 무던하고 건전한 인간의 전형이라 생각했었다.(착각이었다)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자 예민하고 불안한 자아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애써 쓴 책이 팔리지 않거나 글의 조회수가 나오지 않아서 갑작스러운 좌절을 만날 때도 있었다. 원고를 채우는 일 속에도 감정기복이 오고 갔다. 늘 그런 건 아닌데 가끔은 원고에 적절한 단어 하나를 고르는 일에도 예민함이 극에 달해 신경이 곤두설 때가 있다. 한창 글을 쓸 때는 이런 증상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늘 고민했다. 그러나 이제는 '해결'에 중점을 두진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당연히 치러야 할 비용 아닐까. 요즘엔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제대로 된 휴식도 많이 포기했다. 나는 천성이 게으른 인간이다. 부지런한 사람을 늘 동경해왔지만 한결같이 움직임이 느렸다. 다만 하고픈 일이나 해야 할 일을 만나면 독기를 보이기도 한다. 이 독기를 미친 듯이 발휘해서 지난 4~5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글을 써댔다. 그러나 이제 슬슬 한계가 오고 있다. 특히 복직하고 나서부터는 일상 유지만으로 피로해서 원고 집필이 어려워지고 있다. 매일매일 내 게으름과 독기가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느낌이 든다. (지금 이 글도 새벽 1시 반부터 일어나 쓰고 지우고 쓰고 퇴고하며 채워나가고 있다) 하루하루 미션 임파서블을 찍고 있는 느낌도 들고. 도대체 휴식과 글쓰기의 조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게 조율이 가능하긴 한 건지 여전히 답을 모르겠다.





 내 편익과 기회비용을 지루하게 늘어놨다. 그래도 당부하고픈 게 있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 저울은 그 모양새와 가중치가 다르단 사실이다. 똑같이 책 쓰기란 행위를 하더라도 누군가는 편익에 큰 비중을 둘 테고 다른 누군가는 기회비용을 크게 느낄 것이다. 이 무게를 재고 가늠하면서 책을 계속 쓸지 쓰지 않을지 각기 자신만의 판단을 내리는 게 좋지 않을까. 결국 내 마음속 저울이 어떤 모양새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내게 걸맞은 최선은 나만 알 수 있는 거니까. 다른 사람의 선택이나 인생 솔루션을 무조건 따라 할 필요 없이 (참고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내 기회비용과 편익을 스스로 재어봐야 하는 이유다.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오늘은 책 쓰기의 편익과 기회비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저는 책 쓰기로 얻은 것이 많은 운 좋은 사람이지만 이 일이 정말 힘들 때도 있긴 해요. 저에게 있어 글쓰기는 지긋지긋하게 힘들면서도 대체할 수 없는 행복을 주는 일이란 생각을 자주 합니다. 개인적으로 얻는 (심리적) 편익이 더 크니까 이 일을 지속하는 것 같아요.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다음 주에는 글을 연재하긴 하겠지만 다른 브런치북을 열어서 거기에 글을 올릴 수도 있을 듯싶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제가 글 쓰면서 얻는 큰 재미 중 하나가 지식의 부스러기를 엮어 글을 쓰는 것이에요. 이 브런치북도 연재하는 데 나름의 즐거움이 있고 행복하지만, 아무래도 지식을 엮어서 이야기하는 재미는 조금 떨어져서,  다음 주에는 방향을 조금 바꿔서 다른 브런치북에 글을 실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물론 이 브런치북에도 연재를 계속 할테지만 글 소재가 이제 좀 떨어지기도 해서 ㅠㅠ 다음 주에는 다른 브런치북에 글을 한 번 실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아무튼 다음 주에는 4월 4일 목요일에 글을 올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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