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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Mar 21. 2024

출간 계약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  

첫 출간계약의 추억

 처음으로 출간 계약서를 마주하던 기억이 납니다. 무려 ‘등기 우편’으로 출판사에서 보내준 서류였어요. 순수하게 기뻤어요 누군가 내게 함께 글 쓰는 일을 하자고 제안하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기쁨이 두 배가 되었지요. 더구나 출판 계약서에는 저자가 ‘을’이 아니라 ‘갑’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서류상이지만 ‘갑’이 되다니 괜스레 우쭐해졌습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 출판사로 다시 보내는 길. 의기양양했던 제가 기억납니다.


 그렇지만 막상 출간 계약서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어요. 알 수 없는 용어와 숫자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에요. ‘배타적 발행권’ 이건 정확히 뭐지? ‘발행부수’‘판매 부수’는 무슨 의미인 거야. 그러나 예비저자는 세심하게 굴지 않았습니다. 출판사랑 계약했으니 다 된 거 아닌가 뭐. 그게 끝이었어요.


 그렇게 2~3주간은 홀로 마음속 환호성을 지르는 시기를 보냈어요. 내가 단독으로 책을 내는 저자가 되다니!  이제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의기양양했지요.


여기저기 출간 계약을 했다고 떠벌리고 싶단 마음도 떠돌았습니다. 당시 저는 해외 생활을 하던 주부였어요. (돌아보면 단단한 오해지만) 어쩐지 세상으로부터 푸대접받는다고 느끼던 때였고요. 보복 심리처럼 ‘나는 책도 출간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사실을 세상에 소리치고 싶었던가 봐요. 우습지만 이 마음이 원고 집필의 큰 동력으로 작용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되돌아보니 책 쓰기를 해 온 4~5년의 기간 동안 순도 100%의 기쁨을 누렸던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 출간의 모든 과정에서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시기를 보냈고, 지금도 보내고 있거든요. 




 의기양양함이 사그라지고 불안감이 찾아온 건 몇 주 뒤였어요. 원고를 쓰는데 불현듯 두려움이 솟더라고요. (이후 경험을 쌓아보니 원고가 제 때 써지지 않을 때마다 이 증상이 줄기차게 찾아왔습니다.) 나름 알려진 출판사인데 나 같은 초보 저자 나부랭이(?)랑 진심으로 출간 계약을 맺은 게 맞을까? 계약서 주고받은 뒤로 출판사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는데, 계약금(선인세)도 입금되지 않았는데, 내 원고를 책으로 내준다는 약속을 잊어버린 거 아닐까?


계약서를 다시 유심히 들여다봤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다른 사람이  블로그에 올려놓은 ‘출간계약 후기’를 보니 계약서에 간인을 찍는다고 했는데, 가 도장을 찍은 계약서에는 간인을 찍지 않은 거였어요. 간인을 안 찍어서 혹시 계약이 취소되는 거 아닐까? 아직 원고 계약금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이상한 상상을 잔뜩 했습니다.


출간 계약서의 사진(좌)와 간인 찍는 법(우)


 ‘질문하지 못하고 홀로 상상의 나래 펼치기’는 제 오랜 주특기예요. 버스 대기 줄 앞사람에게 “이거 88번 버스 타는 줄 맞나요?”라는 질문조차 하지 못하는 인간이거든요. 삶의 어떤 순간에는 놀랍도록 대담하지만 어떤 시기에는 입도 떼지 못하는 양극단을 달리곤 요.


상상의 나래 속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적는 건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불쾌한 결론으로 끝나는 각본을 상상하 며칠을 끙끙 댔어요. 만약 질문을 건넸는데 편집자에게서 ‘맞습니다. 계약은 취소입니다! 원고 보내지 않으셔도 돼요! 답이 오면 어쩌지? ‘편집자가 내 원고의 존재를 아예 잊었으면 어쩌지?’ 싶더라고요. 주변에 책 낸 사람이 없는 터라 어디에 묻지도 못하고 더 끙끙댔지요.


 그렇게 며칠간 불안함에 떨다가  조심스럽게 메일을 작성해 보냈어요. 계약금은 언제 들어오며 간인 찍지 않은 건 괜찮은 건지  조심스레 물어봤지요. 금세 답이 돌아왔어요. '원래 저희 출판사는 서류에 간인을 찍지 않는다'는 간략한 답이었어요. 계약금  입금은 무부에 얘기하는 걸 잊었다며 며칠 안에 들어올 거란 말도 이어졌지요.   


 제가 유독 소심해 벌어진 에피소드였습니다. 편집자도 ‘이 저자는 뭐 이런 걸 묻지?’라고 의아해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출간 계약 이후 생각보다 많은 예비저자들이 소심한 시기를 겪습니다. 투고를 할 땐 출간 계약에만 성공하면 세상 모든 걸 얻은 듯하지만, 정작 계약 뒤 불안감이 스물스물 기어 나올 때가 있거든요. 첫 책 원고를 쓸 때는 그래도 나름대로 ‘나는 곧 저자가 될 사람!'이란 기쁨에 취하지만, 출간과정에서, 또는  출간 후에  감정기복이 극에 달 가능성도 높고요.


      



 몇 년 간 경험을 쌓은 뒤,  이제 출간 계약을 맺을 때 살펴보는 계약서의 주요 부분있긴 합니다. 일단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다는 건 책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을 출판사가 부담할 거란 이야기와 같아요. 저자에게 책을 제작한 비용을 부담하라고 하는 경우는 없어요. 1쇄 나오면 책을 몇 권 사라고 강매하지도 않고요. 대신 원고 저작권료로 저자에게 인세라는 걸 줍니다. 초보 저자의 경우 인세를 책 정가의 6~9%까지 주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나 대개 기본 인세 비율은 10% 정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계약서를 살펴볼 땐 숫자가 등장하는 부분을 상세히 보면 좋습니다. 특히 책 발행 후 판매 수량을 언제 보고하고 인세를 언제 지급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가령 어떤 회사는 상반기, 하반기를 나누어 인세 정산보고를 하고( 대개 1~2월, 7~8월 정도에 이루어집니다) 그다음 달 말까지 인세를 줍니다. 어떤 출판사는 1년에 네 번, 분기마다 정산보고와 인세 지급을 하기도 해요. 증쇄를 할 때마다 인세보고를 하는 출판사가끔 있어요.


 인세를 주는 기준이 ‘판매 부수’인지 ‘발행 부수’인지 중요한 기준입니다. 가령 책이 다 팔리고 증쇄를 하게 되어서 2000부를 더 찍게 되었을 때 그 즉시 발행한 만큼 인세를 주는 경우가 있어요. 이 경우 출판사는 인세 지급을 ‘발행부수’를 기준으로 하는 거예요. 이건 드문 경우이긴 합니다. 대체로 분기마다 책을 시장에서 ’ 판매한 부수'를 세고, 이걸 기준으로 인세를 지급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계약금인 선인세 역시 계약 한 뒤 2주 안에 주는 경우도 있고 다음 달 말(익월말)까지 입금을 해주는 경우 등 천차만별이에요.


 

그러니 ‘출판사가 이때쯤 인세는 언제 주는 거야?라고 나중에 난감해하는 것보다 계약을 할 때 미리 출간 계약서를 잘 들여다보는 게 좋습니다. (물론 판매 부수 기준으로 인세 입금이 되었는데 그 작고 귀여운 액수에 깜짝 놀라거나 실망하는 경우도 있어요. 밖으로는 섣불리 말 못 꺼내도 저 역시 가끔 겪는 일이고, 많은 저자들이 겪는 상황입니다)

 

그 외에도 책을 내면 저자에게 책을 몇 권 증정해주는지(보통 10~20권 정도를 주고, 그 이상으로 저자가 책을 구매하고 싶을 때는 특별히 책 정가의 70% 정도로 판매하기도 해요), 원고 인도일(원고를 넘겨야 하는 날짜)은 언제까지인지 살펴보는 것도 좋습니다. 마감을 잘 지키는 건 꽤나 중요한 일이니까요. 이 원고를 출판사에서 발행할 수 있는 권한과 계약의 유효기간이 몇 년간 이어지는지도 살펴보는 게 좋아요.


 중요한 건 이 난해한 문서를 지나치게 과장해서 해독할 필요도, (돈 얘기니 중요치 않다며) 지나치게 소홀히 대접할 필요도 없단 겁니다. 문자 그대로 보고, 궁금한 건 편집자에게 질문하면 됩니다. 첫 계약이라 모르는 게 많고 소심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리고 다음 책, 또 다음 원고를 쓰면서 출간 계약도 익숙해질 일이라 생각하시면 좋아요. 그 작은 생각에 원고를 집필할 용기도 더불어 솟거든요.


출간계약에 대한 더더욱 시시콜콜한 이야기

1. 출판사에서 계약서를 등기우편으로 보내주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에는 전자 문서로 사인해 보내는 경우도 많다.  

2. 출판사에서 우편으로 2부의 계약서를 보내주면 서명 날인한 다음 한 부를 출판사에 보내면 된다.(저자와 출판사 한 부씩 갖는 것)

3. 출판사 계약서의 기초가 되는 표준출판계약서가 있다.  문체부, 한국 저작권 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 사이트에 올려져 있으니 비교해 살펴봐도 좋다. 말 그대로 표준이지만, 대다수 정상적인 출판사는 이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출간계약서를 만드니까. 각 항목의 의미를 잘 모르겠으면 다음 동영상의 설명을 참고해 봐도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T9wlK38ZEE8  )


p.s.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 )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저는 3월 신학기라 정신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 어제 마침 경상북도의 한 연수원에서 미술로 보는 인문학 강의가 잡혀서 오랜만에 일상에서 벗어나 기차를 타고 다녀왔어요. (저의 브런치 글 독자라고 말씀해주신 연수 담당자님이 제안을 주신 거였어요.) 오전 강의라 어제 새벽 5시 반 KTX 기차를 탔습니다. 오랜만에 본업을 벗어나 ’ 글 쓰는 사람‘으로 강의 가는 건 정말 기쁜 일이었어요.


 그렇지만 강의와는 별개로 그 전날 직장에서 업무 실수 연발  여운이 있었어요. 세세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본업과 글 쓰는 사람, 엄마로서 뭐 하나 제대로 역할을 못 하고 있단(때로는 주변에 민폐를 끼치고 있단) 마음 떠도는 최근이었거든요.


평일에도 주말에도 쉬지 않고 수업준비를 하고 학교의 행정업무 처리도 하고 원고도 쓰며 지내고 있는데,  원고는 원고대로 밀려 출판사에 죄송하단 말을 드리고,  학교에선 좌충우돌 업무 실수를 계속하다 보니  어쩐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헛발질하고 있단 마음도 들더라고요.


 '나름 노력하며 사는 데 왜 이렇게 허덕이는 마음이 드는 걸까?‘ ’왜 마흔이 넘어도 나는 어째서 이토록 머뭇거리고 서툰 사람인 걸까?‘아니 대체 이렇게 원고를 열심히 써도 이걸 누가 읽기는 할까 '이번 주만 출근 안 하고 어디 쥐구멍 같은 곳으로 도망갈 순 없을까(?!)' 엉뚱한 물음표가 한꺼번에 밀려왔어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칠 간 참던 눈물이 갑자기 터져 나왔습니다.  문득 막막해졌나봐요. -책 몇 권을 내도, 겉보기에는 열심히, 멀쩡히 지내는 것처럼 보여도 스스로가 멍텅구리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계속 오더라고요.- 


그렇게 눈물을 한참 흘리다 갑자기 스스로가 조금 웃기단 생각이 들었어요. 5시 반에 기차에서 펑펑 우는 에피소드라니! 이건 나중에 글에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 그 후 다행히 강의도 무사히 끝냈친절하신 연수 담당자님과 다정한 대화도 나누면서 기분 전환이 되었고요.


그렇지만 괜찮은 글을 쓸 여유는 충분치 않아 오늘은 설명에 가까운 시시콜콜한 글을 쓰게 되었어요. 독자님들께 여러모로 죄송하단 말씀드립니다.


다음 주에는 바쁜 일도 조금 끝날 것이고, 조금 더 독자분들께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글 발행할 거란 약속드립니다. 다음 글은 3월 28일(목)에 발행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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