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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Sep 29. 2024

저자 강연의 세계

기습 위로(!)를 받은 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날, 허겁지겁 동대문에 위치한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림 인문학 강연 날이었다. 강연 장소인 도서관 지하 2층으로 향하는 길, 긴장감이 찾아왔다. 강연 준비를 제대로 다 하긴 한 건가. 폴 세잔 얘길 제대로 PPT에 넣었던가? 피카소 얘기로 강연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려나. 피로도 몰려왔다. 간밤에 강연 예행연습을 하며 PPT를 새벽까지 계속 수정하느라 잠을 거의 못 잔 상태였다.


동대문에 위치한 답십리 도서관에서 하는 '길 위의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 중  두 차시를 진행했다.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니다. 좋은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 욕심은 한 가득이지만 타고 나진 못했다. 세상에는 어쩜 저렇게 말을 잘할까 싶은 입담꾼들이 있다. (대학 동기나 직장 동료 중에도 있었다.) 자전거나 새우깡 같은 작은 소재로 얘길 시작해도 관련 에피소드를 10분 이상 펼쳐놓을 수 있는 사람들. 어조와 성량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흥미롭고 긴박감 있게 얘길 풀어헤치는 스토리텔러.    

   

아쉽게도 나에겐 그런 깜냥이 없었다. 본업으로 가르치는 일을 십 년 넘게 했고 지금 하고 있음에도, 즉흥적인 얘기로 한 시간 수업을 때우는 건 불가능하다. 철두철미하거나 계획적인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그저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할 얘기가 생각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는 학교에 수업 들어가자마자 어떤 반 아이들이  ‘오늘은 수업 진도 나가지 말고 선생님이 지내던 중동 지역 얘길 좀 해 달라’고 말했다. 수업 한 시간이라도 쉬고픈 아이들 바람도 이해했고 나도 할 수만 있다면 그럴 용의가 있었으나, 불가능했다. 흥미롭게 할 만한 얘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중동에서야 바깥에 덥고 건조하고 모래 바람 불고, 돼지고기 못 먹고 그랬지 뭐.’ 무미건조한 단 두 마디 말만 떠올랐다. 모래 폭풍이 세차게 부는 풍경을 흥미롭게 묘사하고, 돼지고기를 못 먹는 중동 생활을 재치있게 풀어가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준비 없이는 흥미로운 얘길 할 수 없는 '한정된 입담꾼'이라  아이들을 실망시켰다





결국 나는 철저한 준비형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하는 운명이다. 강연이든 수업이든 다른 사람보다 준비를 (정말) 많이 해야 하는 운명. 자의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강의 준비에 철두철미해져야 하는 유형. 이런 스스로에게 짜증이나 피로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별 수는 없다. 강연 중 던질 농담, 시간 배분, 주제를 연결할 얘기, 세세한 사항을 전부 계획하고 준비를 해놓는 수밖에.

     

강연 준비를 하는 모습. PPT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가르치는 본업 덕에 쌓인 자잘한 노하우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강연 대상을 미리 파악하고 연구해 두는 절차다. 미리 강연 담당자에게 신청한 인원이 오는 건지, 어느 정도 연령대 분들이 오는지 확인을 해두고 강연 대상에 맞게 공감대를 이끌어낼 얘기나 쓰는 단어의 난이도를 어느 정도 정해놓는다.


 가령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라면 출퇴근의 애환을 중심으로, 교사 분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교사로서의 애환을 언급하면서 시작하는 식이다. 도서관에서 오전에 하는 강연은 퇴직자분들이나 육아하는 주부들도 많이 오시니 이 경우엔 육아의 고단했던 시절 얘기나 정체성 혼란의 시기, 새로운 정체성 찾기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인다.  


 학생들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면 학교에서의 에피소드를 언급하면서 얘길 꺼내면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리고 고등학생 대상의 저자 특강을 할 경우엔 아이들 생활기록부 기재에 도움 될 방향으로 특강 내용을 준비할 때도 많다.( 현실적으로 생활기록부 기재 내용이 대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

     




 마음 내려놓기의 과정도 거친다. 강연 준비를 하는 시점에는 내 농담에 모두가 까르르 웃고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주는 장면을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기대와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강의의 특성, 청중의 성향, 내 책을 이미 읽은 독자가 왔는지 아닌지에 따라 분위기나 호응도는 제각기 달라진다.



작년에 다녔던 학교와 기관 강연 행사의 모습

  

10여 년간 가르치는 일을 해보고, 지난 몇 년간 강연을 다닌 경험으로 내린 결론이 있다. 수업이든 강연이든 진행을 해보면 청중 중 20%~30% 정도의 무조건 호의적으로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책을 읽고 와주거나 첫눈에 강연자를 좋아한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주는 분들. 그러나 내 강연에 무심한 시선을 던지거나 책상을 쳐다보는 분들도 10% 정도는 있다. 불편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이들도 있고.      


 강연을 하다 보면 이 무심하고 부정적인 반응의 그룹에게 눈길이 자연스레 가게 마련이다. 100개의 선플보다 1개의 악플에 신경이 쓰이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진리가 그렇듯 어딜 가든 나를 이유 없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은 싫어하는 게 아니라 나와 결이 다르거나 그날 컨디션이 안 좋은 사람일 수 있다) 그 중간, 어디도 아닌 사람들도 있고. 원래 어떤 그룹을 만나든 대부분 그렇다.


 그래서 강연을 할 때는 청중 모두의 호감과 열띤 성원을 이끌어내고 싶다는 기대감을 조금은 내려놓는다. 최대한 성실하고 치밀하게 준비를 하되, 강연 반응이 무조건 좋을 거란 기대치는 낮추기. 이것이 나의 강연 준비 원칙이다. (사실 글을 쓰고 발행할 때 역시 비슷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오랜만에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서관 강연이라 그랬던 걸까. 노하우와 팁을 조금은 축적하고 있음에도 이번 강연은 유독 긴장이 됐다. 때마침 강연장에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기에 머쓱한 마음도 있었다. 겉보기에 씩씩한 척을 해도 전형적인 내향인이라 낯가림이 있고, 주목받는 것도 살짝 민망해하는 편이라 더 그랬다.


 그러나 이번엔 다행인 점이 있었다. 강연 전부터 호의적으로 날 바라봐주시는 어르신들이 앞쪽에 앉아 계셨다. “이름 보고 남자 작가님인 줄 알았는데 여자 작가님이네(본명 때문에 이런 오해 자주 받음)” “작가님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스몰토킹을 조금씩 건네주셨다. 덕분에 쫄보의 불안감이 조금 풀렸다.


 예상대로 적극적인 청중의 분위기는 강연자를 흥나게 한다. 열띤 분위기로 들어주는 분들이 많았다. 타고난 스토리텔러도 아닌 내가 개인적인 얘길 조금씩 풀어놓을 정도로. 복직하고 나서 줌(ZOOM)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몰라서 비대면 수업에 실수하고 운 얘기, 육아나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충, 해외에서 느낀 정체성 혼란 등을 중간중간 양념처럼 곁들여가며 2시간 강연을 끝낼 수 있었다.

 

이번 강연 모습. 사서 선생님께서 정말 열심히 행사 준비와 진행을 해주셨다.



 강연이 끝나자마자 긴장이 풀렸다. 간밤의 부족한 수면으로 기력이 많이 빠진 상태였고 정신이 조금 혼미했다. 그렇지만 곧바로 학교로 출근해야 하는 입장이라 (오전 지참을 쓰고 오후에 출근을 해야 했음) 강연의 여운을 누릴 시간이 없었다.


 짐을 주섬주섬 챙기는 중이었는데  가장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들어주시던 어르신 한 분이 갑작스레 질문하신다. “이제.. 그거 극복이 됐어요?” 잠시 멈칫했다. 무슨 일의 극복을 말씀하시는 거지? 내가 머뭇거리자 어르신이 옅은 미소를 띠며 말씀을 이어가신다. “요즘 교수님들도 다 똑같대. 줌으로 수업하고 그런 게 다 적응이 어렵대.” 


 그제야 알아챘다. 복직 후에 줌을 잘 다루지 못해 힘들었다고 말했던 걸 말씀하시는 거구나. 어르신의 마지막 말이 이어졌다. “다 극복할 수 있어요. 작가님. 괜찮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작가님만 어려운 게 아니야  ”  


순간 기분이 묘해졌다. 마음에 작은 파동이 일어난 느낌.


 강연 직전까지 내가 쭉 궁리하고 고심했던 건 주로 ‘효과적인 내용 전달 방식’이었다. 화가랑 그림 설명을 어떻게 할까, 명화 얘기를 어떻게 풀어갈까. 늘 그렇듯 기술적인 것만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여담으로 건넨 내 개인적인 고민, 어려움 역시 전체 강의 내용 흐름에 맞춰 양념처럼 곁들여서 푼 것이었다. 그런데 기습적으로, 예상치 않은 위로를 받았다.      





 

생각해 보니 강연이나 강의도 사람 만나는 일이다. 온기를 주고받는 일. 평소의 나는 이 ‘온기’라는 단어나 따스한 마음, 다정함이란 말을 깊게 새기거나 신뢰하는 타입이 아니다. 마음은 가변적인 거니까. 흐르고 변하는 것이라 생각하니까. 마음보다 머리 굴리는 데 익숙하고. 타인의 감정도 가슴보다 머리로 헤아리는 인간에 가깝다.  


 그런데 낯선 장소에 가서 강연을 하다 보면, 처음 만난 이들이 건넨 말에 갑작스러운 위로나 격려를 받을 때가 있다. 차별의 언어에 대한 학교 강연을 하는데, “제 마음속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없애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돼요. 작가님, 어떻게 없앨 수 있어요?”란 질문을 건넨 학생을 만났을 때 그랬다. 작년 그림 인문학 강연을 끝낸 뒤에도 비슷했다.  한 분이 눈물 글썽이며 다가왔다. 힘든 시기를 지나느라 슬픈 그림이며 음악을 일부러 접하지 않았는데 강연에 나온 그림 보고, 슬픔으로 슬픔을 위로할 수 있단 걸 알았다’는 얘길 건넸을 때도 마음에 미세한 울렁임이 있었다.


 사람의 온기로 실타래 풀리듯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풀어헤쳐지는 날이 있다. 오늘도 그런 날, 이따금 찾아오는 그런 날이구나 싶다. 기습 위로를 받은 날. 덕분에 몽글몽글한 마음을 움켜쥔 채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오늘은 강연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봤어요. 지난주와 지지난주에 도서관에서 그림 인문학 강연을 해서 그 후기(!)처럼 글을 써보고 싶었거든요.


 책을 쓴 덕분에 3~4년간 학교나 도서관, 다양한 기관이나 기업에서 강연을 해왔어요. 특히 이번 그림 인문학 강연에서는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화가들을 유독 많이 소개했는데, 그러면서 저의 힘들었던 얘기나 외로웠던 얘기도 가감 없이 곁들여 했네요. 들어주러 오신 분들이 따스한 분위기로 호응해 주셔서 가능했던 일 같습니다. (사서 선생님께 '도서관 강연 진행하면서 손꼽을 만큼 열심히 강연 준비해 온 강연자’였단 칭찬도 받았답니다.)


 아! 그리고 책을 쓰면서 편집자라는 직업 세계를 조금 알게 되는 것처럼, 강연을 하면서 사서분들을 제법 자주 만나게 되었어요. 책에 대한 이분들의 애정도 알게 되었고,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이 직업 세계에도 즐거움과 고충이 공존한단 사실을 짐작하게 되기도 했고요.


 이렇게 새로운 직업 세계를 조금씩이나마 알게 되는 건 저 개인적으로 뜻깊은 일이랍니다. 세상 보는 시선을 넓히는 느낌이 들어서요.  이번엔 특히 글 쓰기를 이어가거나 꿈꾸고 계신단 분들도 강연에 와주셔서 서로 응원을 주고 받았습니다. (저 역시 강연 들어주신 분들께 응원과 격려를 받으면서 힘을 냈네요)  


 아무튼 글을 쓰는 덕분에 좋은 분들과 좋은 일들을 많이 만나게 되네요. 독자분들과 글로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고요.


 오늘도 이렇게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다음 글은 <다정한 교양>이나 <책 쓰는 마음>에 10월 6일(일) 발행하겠습니다. 선선하고 행복하게, 주말 마무리하시길요 : ) 휴일도 마구 즐기시고요. 감사합니다.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유랑선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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