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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Oct 27. 2024

끝까지 쓸 수 있다는 믿음

'글을 계속 써도 될까?'란 질문이 찾아올 때

 하얀 여백에 커서가 깜빡입니다. 오늘 새벽 세시부터 수십 분 응시한 장면. 아득하고 막막한 마음이 찾아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이따금 두렵게 느껴지는 장면

 

이런 기분이 처음은 아닙니다. 글을 쓴 후로 수 백 번 어쩌면 천여 번 넘게 마주한, 익숙한 순간이죠. 머릿속에 바스락대는 생각을 도무지 활자로 붙잡을 수 없는 날, 걱정과 불안이 몸집을 불리고 생각이 이리저리 흩어져 글이 풀리지 않는 날. 오늘이 그런 날인가 봅니다.      




 돌이켜보면 글쓰기를 하며 자부심에 벅차올랐던 날이 있었습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탄 걸 알게 된 날. 집필한 책이 10쇄를 찍어 환호했던 때, 브런치에 쓴 글이 어딘가에 노출되어 하루에 수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던 순간, 강연에 가서 환영과 박수를 받거나, 원고 청탁이 연속해서 들어오던 날. 여러모로 운 좋았던 날이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조심스레 고백하겠습니다. 영광의 날은 커다란 빵 속의 건포도처럼 드문드문 존재할 뿐이란 사실을요. 헤아려보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뭅니다. 오히려 글을 쓰며 초라한 나 자신을 마주한 날, 글이 나오지 않아 힘겨웠던 날이 더 많아요. 출판사에 보낸 원고를 거절당했던 순간, 몇 달을 끙끙 앓으며 쓴 원고가 책으로 나왔는데 판매량이 저조해 막막한 마음이 찾아온 날, 원고 집필이나 기고 요청을 받았다가 일방적으로 취소당한 날, 누군가가 남긴 내 책의 가혹한 리뷰를 우연히 읽은 날. 대부분의 날들은 쉽지 않은 순간으로 채워졌습니다.  


 

외부상황의 변화보다 더 힘든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빚어낸 질투와 불안이 마음에 침습해, 머릿속을 휘젓는 날입니다. 누군가의 글이나 책을 봤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훌륭하고 아름다워 감탄한 날이 있었습니다. 빛나는 자리에 오른 누군가를 엿보며 부러움을 곱씹는 날이 있었지요. 그 감탄과 부러움이 묘한 질투심으로 변하는 순간,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그 지점에는 닿기 어렵단 걸 문득 깨닫게 되죠.


 이 마음은 불안과 회의라는 다음 단계로 뻗어나가곤 했습니다. 이토록 시간과 노력을 쏟아 글을 지어내도 누가 읽기나 할까? 재주와 필력의 한계란 게 있는데 과연 내가 이 원고를 완성할 수 있을까? 이미 같은 주제를 다룬 책이 무수히 많은데, 내 시시콜콜한 글을 담은 책까지 세상에 더해야 할까? 이 글을 쓸 자격이, 과연 내게 있을까?


 글을 짓거나 책을 쓰다 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의문입니다. 글을 쓴 지 6년이 되어가지만 이 물음이 완벽히 사라진 적은 없어요. 이런 마음이 찾아온 날이면 엉뚱한 딴짓으로 도피하거나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우두커니 책상 앞에만 앉아 있습니다. 어떤 일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이 소진되는 날이죠.


         


 


글 쓰던 초기에는 말해 뭐 하겠어요. 마음속을 떠돌고 휘젓는 감정에 지쳐 제 풀에 나가떨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4~5년 전, 누굴 만나지도 않고, 육아나 살림에 정성을 쏟지도 않고 밤마다 노트북 앞에 앉아 (돈벌이로 직결되지도 않는) 글을 써대는 사람이 저였습니다. 그 때문인지 주변의 질문도 참 많이 받았죠. 왜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해? 너 진짜 여유롭구나. 글 쓰는 일 말고 영어 회화나 재테크처럼 쓸모 있는 일에 신경 쏟는 게 어때. 차라리 돈이 될 만한 글을 써보는 건 어떨까. 특별한 악의나 무시가 담긴 말은 아니었어요. 걱정과 선의와 호기심이 담긴 조언이 대다수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소한 말이 자그마한 바늘이 되어 마음을 콕콕 찌르곤 했어요.

      

  그 작은 바늘보다 더 무서운 건, 내가 나에게 보내는 거대한 화살 같은 질문이었어요. 왜 이다지도 무용(無用) 한 일에 매달리는 사람인 걸까?  한 아이의 엄마이자 주부로서 묘한 죄책감이 솟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낳은 작고 소중한 생명체에게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엄마라니. 아이 돌보는 일이며 살림이며 당면한 삶의 과제가 한 가득인데, 거기에 마음을 쏟지 못하고 타이핑을 해대는 내 모습이 싫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글쓰기의 쓸모에 대한 물음이 찾아왔습니다.  흰 여백에 활자를 꼬박 채워도 그 쓸모를 인정받을 수 없는데, 돈벌이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슨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이 일에 매달리고 있을까. 결국 이 모든 회의와 질문은 한 가지 물음으로 귀결되곤 했습니다. ‘계속 글을 써도 되는 걸까’. 결론도 없는 이 지독한 짝사랑을 놓아줘야 할까 란 말을 되뇌었지요.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깨달음이 찾아올 때가 있어요. 그 무용한 글쓰기가 결국 날 토닥이고 위로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말이죠. 새벽 서너 시쯤 오롯이 홀로 앉아 활자와 나만 존재한단 걸 실감하는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지어낸 문장에 키득거리다 슬퍼하며 몰입하는 순간, 비로소 내가 나로 숨 쉰다는 느낌을 만납니다. 그럴 때면 마음 속 기쁨이 차오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글쓰기로 작고 초라해진 마음을, 글쓰기로 위로받고 구원받는 거죠.        


글을 계속 써도 될까?라는 질문을 만났을 때, 그 모든 회의와 몹쓸 질문을 끝내는 답은 내 안에 있었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나는 계속 글을 쓸 거라는 답, 랫동안 글을 쓸 사람이란 답.  아무리 심사숙고를 하고 머리로 셈을 거듭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결론은 어차피  정해져 있으니까요. 자존심이 상해도, 스스로의 한계를 뻔히 알아도 ‘쓰고자 하는 열망’을 손에 쥐고 자음과 모음을 이어 붙여 무언갈 만들어낼 스스로를 아니까요.      


  결론이 나와 있다면 ‘글 쓰는 날 믿어줘야 한다’는 명제에 이릅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 성공을 하거나, 대단한 글을 써낼 거란 자신만만함에 바탕을 둔 믿음이 아니에요. 그저 내가 끝까지 이 글을 써내고 완성할 거란 믿음입니다. 쓰고 고치다 보면, 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서 그 글이 독자의 마음에 가닿을 거란 믿음, 대단한 얘기가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귀 기울이는 게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내 글을 읽어줄 거란 확신이지요. 이 믿음은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최선을 다해 써보자'란 용기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요즘 쓰고 있는 원고가 너무 막막해서(!) 달력에 적어놓은 글귀입니다.


내가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대단찮은 글쓰기를 하는 이 노력과 시간이 무용한 건 아닐까. 만약 글을 쓰다 이 질문에 이르셨다면 옳은 길을 찾은 겁니다. 그 쓸모없음으로, '세상이 말하는 무용함'에 맞서는  글을 쓰는 행위니까요.  활자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시간만이 '쓸모없음'에 맞서 싸울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오늘이 마침 브런치북 프로젝트 공모전 마감 마지막날이더라고요. 그래서 글 쓰는 마음에 대한 얘길 오랜만에 써서 발행했습니다.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글쓰기는 훨씬 더 힘들고 고단한 일이더라고요. 제가 글을 쓰면서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와 회의감과 불안을 만나보았기 때문에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브런치에 쓸 글의 첫 문장을 쓰거나 원고 쓰는 일을 시작할 때에는 특히 힘겨운 마음이 떠돕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쓸 수 있다는 믿음이, 쓰고 고치다 보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글을 쓰다가 너무 힘드실 때는 어차피 나는 오래오래 글을 쓸 사람이야란 문장을 되새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참, 그리고 강연 소식을 하나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에 있는 김영삼 도서관에서 11월 10일(일) 오후 2시, 지하 2층 난쏘공실에서 20분을 모시고 강연을 해요. 제가 올해 <자본주의 사회, 빈부격차는 당연한 걸까?>란 논술토론 책을 출간했는데, 이 내용과 관련한 강연입니다 (저와 같은 시리즈로 책을 출간하신 승지홍 선생님께서 11월 3일(일) 같은 장소에서 '인구위기' 주제로 강연을 하십니다)      


강연 배너입니다. 좀 민망한 사진이네요;;;

 유랑선생보다는 제 본업(교사)에 좀 더 가까운 입장에서 하는 강연이라 이 공간에 알리는 게 맞을까 고민을 좀 했지만, 그래도 다루는 주제가 뜻깊기도 하고, 아담한 공간에서 하는 강연이라 좀 더 반갑게 듣는 분들 마주할 수 있겠다 싶어 일단 말씀을 드려요.

(논술이나 교육과 관련된 강연이긴 하지만, 마침 이 강연을 하는 공간의 이름이 ‘난쏘공’ 실이라 강연의 시작을 조세희 작가님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겠단 구상을 세우는 중입니다 : )          


강연 신청 링크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역 주민 아니시더라도 신청 가능하다고 해요)             

https://lib.dongjak.go.kr/dj/module/teach/detail.do?group_idx=57&teach_idx=4543&menu_idx=32&category_idx=0&searchCate1=16&large_category_idx=0&category_idx=0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11월 3일(일)에 발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11월 3일까지만 글을 발행하고, 브런치 글을 몇 주 쉴 수도 있을 것 같단 죄송한 말씀을 미리 드립니다. 공교롭게도 11월에 거대 업무와 원고랑 강연 몇개가 몰려 있어서요.)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유랑선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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