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가 어려울 땐, 기명절지도

서로의 미묘한 차이가 느껴질 때

by 유랑선생

내 배우자의 이상형은 ‘밝은 여자’다. 이 사실을 내 지인들에게 말하면 대개 의혹 섞인 시선으로 날 쳐다본다. 지인 한 명은 몇 초간 침묵하다 대뜸 물었다. "너 혹시... 남편한테 사기 쳐서 결혼했니?" 의심할 만도 하다. 결혼 전 싱글벙글 잘 웃는 편이었지만(나름 '해맑게 웃기 기술 보유자'다), 내 내면이 늘 밝고 화사한 건 아니었으니.


남편 역시 내게 말한다. “넌 사고방식이 좀 어두워.” 이 단정적인 얘기에 반박하고 싶었다. 어둡단 말 대신, 삶의 이면을 들여다 보고 비판적 성찰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 말해 줄래. 란 말로 점잖게 항의도 했다. 밝음과 어둠을 나누는 이분법의 잣대가 뭐냐 진지하게 묻기도 했다. 그러나 내 항변이 상대에게 먹힌 적은 별로 없다.

결혼하고 깨달은 사실이 있다. 내 반려의 취향과 성향이 놀랍도록 나와 다르단 점. 남편은 감각형(S)의 극단에 해당하고 나는 직관형(N)의 극단에 서 있다.(양극단에 서 있다는 것만 같다.) 남편의 관심사는 재테크와 부동산이고 근래 몇 년 간 내 최대 관심사는 글쓰기다. 배우자는 친절하고 디테일한 설명이 상대에 대한 친절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간단명료한 설명이 배려라 생각하는 인간이다. 아이의 학원 스케줄이며 숙제, 키 크는 약을 살뜰히 챙기는 배우자에 비해, 숙제를 봐주다가 20분쯤 지나면 꾸벅꾸벅 조는 나는 섬세하지 못하단 평을 듣는다. 관계지향적이자 F(감정형) 성향인 남편과 개인주의자에 T(사고형) 나 사이에는 늘 미묘한 간극이 존재한다.


몇몇 차이는 농담처럼 지나갈 만한 일이었으나, 우스갯소리로 넘기기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대개의 한 쌍이 그렇듯 우리 부부도 서로의 간극을 이기지 못해 할퀴고 상처 준 적이 있었다. 각자의 질감이 유난히 다르단 걸 깨닫고 좌절한 날도 있고. 그 때마다 생각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좁혀지지 않는 간격인 건가. 부부란 모름지기 비빔밥속 재료처럼 융합되어야 하는 사이 아닌가. 이 이질감은 ‘미완성’의 증거 아닌가.


비단 부부관계뿐만 아니었다. 부모와 자식, 오랜 친구, 사회에서 만난 수많은 타인과 마주 앉을 때 이질감으로 작은 실망이 올 때가 있었다. 나이 먹을수록 나와 결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슬슬 피하기도 했다. 사람 사이의 미묘한 균열을 느끼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이가 마흔이 넘어도 역시 관계 맺기는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았다.






기명절지도. 원래 일제 강점기의 화가 안중식의 정통 화단 작품이나 생활 장식성에 따라 민화로 분류되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갖가지 사물이 화면에 보인다. 오래된 질감의 청동그릇과 사기 화병이 고요히 자리 잡고 있다. 화병 아래 바닥에는 방금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듯한 꽃과 과일, 채소들이 제각각의 모양대로 흩어져 있다. 한 자리에 있을 듯하지 않은 정물들이 자리 잡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림의 정체는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다. 기명(器皿)은 진귀하고 기이한 옛 그릇을 말하며 절지(折枝)는 도자기에 꽂힌 꽃가지를 뜻한다. 한 마디로 중국 고대의 청동기(고동기 古銅器)나 도자기, 각종 그릇, 꽃가지, 과일과 채소 등을 곁들인 동양의 정물화 양식이다.


이 동양식 정물화 전통은 중국 송‧명‧청대의 박고도(博古圖)와 청공도(淸供圖)라는 그림에서 비롯됐다. 박고도는 고대 청동기나 도자기 같은 고귀한 기물을 주로 그렸던 그림을 뜻한다. 청공도는 서재에 어울리는 고아한 문구류나 문재, 지팡이 등을 담아 문사들의 취미를 시각화한 그림이다. 중국의 전통에서 유래된 기명절지도는 빈 공간에 별다른 배경 없이 이런저런 물건을 늘어놓은 스타일을 취했다.


창덕궁에 소장된 기명절지도 가리개. 기명절지도는 궁중에서 쓰인 병풍에 담기기도 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으로 민화는 아니다.

사실 그림 속 사물과 식물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쌓인 상징과 의미를 품고 있다. 고동기는 중국 고대 청동기로 만들어진 귀중한 기물이다. 제사에 쓰이던 물건으로 왕권과 번영, 동시에 꽃이나 과일과 함께 그려지면서 부귀와 장수, 다산 등 염원과 소망을 뜻하기도 했다. 각종 문방구와 책은 학문의 깊음과 벼슬을 동시에 나타냈다. 문사들이 세속에서 벗어나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며, 악기를 연주하고, 화초를 가꾸는 등의 청아하고 풍류를 벗어난 고고한 취미를 반영하기도 한다. 그림에 존재하는 꺾인 꽃나무도 저마다 다른 의미를 지닌다. 모란은 부귀를, 석류와 포도처럼 씨 많은 과일은 자손의 번성을, 수석(壽石)은 수명(壽命)을 뜻한다.


원래 중국 전통 정물화의 영향을 받은 기명절지도를 조선의 양식으로 재해석한 인물이 있다. 조선 후기의 천재화가로 불리는 오원 장승업(1843~1897)이다. 10대에 그림 양식의 후원을 받고 그림을 독학해 화명(畵名)을 널리 떨쳤다. 덕분에 40대에 임금(고종)에 의해 궁에 초빙되어 감찰 직위를 받고 왕실의 작품을 제작했지만 자유로운 성정을 버릴 수 없었다. 결국 화가는 방랑과 술에 빠져 궁중을 떠났고, 자유로이 살다 54세에 사망한다.


장승업의 기명절지화(좌)와 이 화가를 소재로 한 임권택 감독의 2002년작 취화선의 포스터(우)

장승업은 산수화와 인물화 등에서 두루 재능을 뽐냈지만, 특히 기물절지화에서 당대의 양식을 확립했다고 평가받는다. 청대 화풍을 소화했지만 이를 자신만의 양식으로 풀어냈는데 고동기나 화초, 해산물을 지그재그 구도로 배치하고 수묵에 채색을 더해 그림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화가는 그림 주문을 즉흥적으로 받아도 술상이 있으면 곧바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옷을 벗어던지고 책상다리를 한 채 절지와 기명을 많이 그려주었단 기록이 있다. 그의 자유로움이 그림에 투영되었음을 넌지시 알려주는 일화다.


장승업이 그린 기명절지도의 화려한 색감과 장식성, 장수나 출세를 비는 길상성은 미술 시장의 새로운 수요층에게 널리 사랑받았다. 19세기 후반, 사회 중심 계층으로 급부상한 중인층과 농업 및 상업으로 돈을 번 신흥 부유층의 취향을 저격했기 때문이다. (장승업의 그림 고객이자 후원자 중에는 왕과 고관대작, 문인 사대부뿐 아니라 오경연 오경석 형제와 같은 역관을 했던 중인 출신도 있었다.)


새로운 시대를 주도한 이들의 뜨거운 소망과 욕망이 담긴 그림이었기에, 기명절지도 특유의 색감과 장식성이 생겼다. 이는 사물들의 자유로운 배치로 이어진다. 그림의 목적이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길상성의 구현이었기에 시공간을 초월한 사물들이 하나의 화면 안에서 새로운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기명절지도 10폭 병풍 @국립민속박물관




계절과 재질, 쓰임새가 저마다 다른 기물들이, '염원'이라는 목적 아래 모여 기명절지도는 기묘한 균형을 이룬다. 무뚝뚝한 청동기 옆에 화사한 모란이 피고, 울퉁불퉁한 괴석 옆에 보드라운 석류가 놓인 모습. 이 우아한 부조화 속에서 그릇은 꽃이 되려 하지 않고, 꽃 또한 괴석의 단단함을 탐내지 않는다. 각자의 고유한 모양을 지켜낼 때 비로소 그림의 입체감이 살아난다. 같지 않기에 균형이 생기고, 제각각이기에 함께 있어도 어수선하지 않다.


어쩌면 이 기묘한 조화와 균형을 사람 사이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마다 타고난 물성과 재질은 모두 다르니까. 지그재그로 놓인 그 '다름'에 '틀림'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저 사람은 나와 다른 용도로 쓰이는 그릇임을 인정하지 못한 채, 내 방식대로 쓰거나 바꾸려 하면 어김없이 금이 간다.


인간관계의 극적인 해법이나 멋들어진 결론은 없을 것이다. 서로를 바꾸려는 노력을 멈추고 그저 각자의 자리에 서로를 놓아두기로 할 때 관계에도 비로소 숨 쉴 만한 틈이 생기는 것 아닐까. 억지로 섞여서 하나가 되려 애쓰지 않아도,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 자리에 있어도 괜찮다는 안도감. 기명절지도 속 사물들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으면서 한 폭의 정물화로 완성되듯, 서로를 고치려 들지 않는 무심하고도 정다운 거리 덕분에 우리는 하나의 배경 안에 머물 수 있다.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오늘은 인간관계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글을 저희 부부 이야기로 시작했는데요, 음.. 생각해 보면 저희 남편의 이상형에 제가 평생 부합하지 못할 것 같긴 한데 ㅎㅎㅎ 모두들 어느 정도 알다시피 우리가 완벽한 이상형과 짝을 맺고 반려로 지내는 건 아니니까요.


기명절지도는 동양의 정물화 양식에 가깝기 때문에 작년에 집필해 출간된 <정물화 속 세계사>란 책에 담은 내용도 기억이 났습니다. 서양 정물화가 주로 해골이나 꽃을 그려 인생의 무상함, 부질없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기명절지도는 복(福)을 구하는 길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우리나라 민화가 전반적으로 길상화로서의 기능을 하는 그림이 대다수입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내세관이나 사고방식의 차이였던 건가? 요즘에는 그런 의문도 가지고 있습니다. 새롭고 흥미로운 탐구 주제네요.


다음 주에는 조금 더 정리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흠.. 몸이 막 좋지는 않아서 ㅎㅎㅎ글이 정돈이 잘 되지 않았어요. (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 돌보고 원고랑 메일만 쓰고, 1주일에 한 번만 외출하며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건강이 막 좋지는 않은 게 이상하네요 ㅎㅎ ) 죄송하단 말씀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2월 되세요!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유랑선생 인스타그램



이전 03화먹고사니즘이 버거울 땐, 모란도(牡丹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