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일 땐,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

화려한 도약이 어렵게 느껴질 땐

by 유랑선생

6년 전 일이다. 원고 투고를 했는데, 아침부터 핸드폰으로 출판사의 반려 문자를 받았다. “출간 방향이 맞지 않아 저희와 함께하기 어렵다”는 뭐, 나름 익숙한 메시지였다. 메시지 자체는 괜찮았는데, 단체 문자의 느낌이 물씬 났다.


머리로야 상황을 이해했다. 아마도 출판사의 바쁜 직원이나 편집자가 수많은 투고 원고를 열어봤을 테고, 바쁜 나머지 이 원고에 일일이 응답하며 반려 메일을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테지. 출근하자마자 이 일을 해결해야겠다는 압박감이 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업무 처리의 흐름 속에 단체 문자를 보내준 게 아닐까. 8시 17분쯤에.


은근한 투덜거림을 뱉긴 했다. 아니, 뭐 아침부터 반려 문자를 보내. 출근 직전에 애인한테 차인 느낌 가상 체험하라는 건가. 머리로 이해했고 입으로야 우스갯소리 불평을 내뱉었지만, 마음속에 슬그머니 열패감이 솟았다. 한 회사의 사보 편집기자에게 일방적 기고 제의를 받았다 일방적 취소를 당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클라이언트가 더 이름 있는 저자를 원해 작가님께 간 제안을 취소한단 내용이 담겨 있었다.)


거절에 대한 맷집을 제대로 키우기 전이기도 했다. 글쓰기를 일로 삼고 싶다는 열망이 최고조에 달할 때이기도 했고. 그러나 '글쓰기에 대한 짝사랑' '열망'이라는 말로 모든 걸 덮기에는 복잡다단한 욕구가 엉켜 있었다.


물론 활자로 이야기를 펼쳐놓고픈 욕구가 제일 밑자리에 존재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조지 오웰 말대로 '날 과소평가하는 세상에 앙갚음하고픈 욕구'도 일부 있었다.(너처럼 평범한 사람이 무슨 글을 써라는 눈빛에 은근히 보복하고픈 마음이었다) 박완서 작가님 에세이에 적힌 '중년 여인의 허기증' 같은 것도 날 부채질했다. '작가'라는 좀 있어 보이는 이름표를 달고픈 욕망도 존재했겠지. 무엇보다 육아와 살림 속에서 갈수록 희미해지는 자신을 세상에 증명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어디든 날 찾아주는 곳에서 마감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타이핑 뿐이었다. 이 일이 내 적성에 맞는다는 걸 깨달았지만 본격적인 일로 만드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아이가 흘린 음식이나 옷가지를 주우면서, 식탁 위에 노트북을 놓고 문장을 쓰고 또 쓰고 고쳤다. 가끔은 의문이 밀려왔다. 이렇게 하면 멋진 삶이 찾아오는 건가? 그런데 비약적 성장을 못한다면? 그러면 이 모든 게 의미 없어지는 건가.


6년 지난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용실 펌 기계 아래에서 글을 고치거나 하루에 3~4시간만 자거나, 출근길 버스에서 타이핑을 하며 원고 마감을 맞추는 미친 날들을 보냈다. 덕분에 글쓰기는 반쯤 업(業)이 됐다. 그러나 어떤 글이나 책은 써도 도통 반응 없는 경우도 많다. 삶도 크게 바뀌진 않았다. 우아한 일상보단 산발을 한 채 타이핑 하는 시간이 대다수다. 그것 때문일까. 지금도 답을 찾지 못한 채 이따금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제대로 도약하지 못하면, 그 노력은 뭐가 되는 걸까. 모두 허무한 시간이 되는 걸까?




제자리걸음이 계속되어 막막할 땐 힘찬 도약의 장면을 살피는 게 어떨까. 물고기가 용 되는 꿈을 화폭에 담은 그림,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를.


어변성룡도(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한국민화뮤지엄 소장

이 그림은 중국의 등용문(登龍門) 고사와 연결된다. 옛날 중국 황하 상류에 용문이라는 협곡이 있었다. 물살이 세서 물고기조차 급류를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곳이었다. 이른 봄이 되면 수많은 물고기들이 용문에 모였다. 그 가운데 가장 용맹하고 힘센, 단 한 마리의 잉어만 용문을 통과해 힘차게 도약한다. 이 선택된 존재는 몸을 크게 한번 흔든 뒤 용으로 변했다. 세상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오르고 명망을 얻는 것을 센 물살을 견디고 노력해 등용문(登龍門)에 비유했다.


옛 동아시아에서는 자손을 낳게 되면 교육을 시켜, 과거에 합격에 출세 길에 오르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진사(進仕)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출세의 첫걸음이라 생각해 이를 등용문이라 불렀다. 조선에서도 사대부 남성들은 과거 시험에 통과해야 가문을 빛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고기가 용이 되는 신화는 곧 과거 급제, 입신출세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약리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등용문 고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그림이 어변성룡 또는 약리도(躍鯉圖)라고 불리는 그림이다. 해가 떠오르는 시간, 거센 물살 속에서 잉어가 물결을 일으키며 공중으로 힘차게 뛰어오르는 모습을 그린 민화. 그런데 그림에는 용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용이 되기 직전, 힘차게 뛰어오르거나 지느러미를 세차게 흔드는 물고기가 등장한다. 잉어의 비약을 보며 감상자는 용으로 승천할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


민화에서는 이 약리도의 구성이 더욱 다양해졌다. 산 대신 떠오르는 붉은 태양과 넘치는 파도를 배경 삼아 도약하는 물고기를 등장시키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과거시험 수험생의 공부방에 그림을 놓거나, 시험을 앞둔 이에게 이를 선물했다. 약리도는 합격 기원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약리도에 근사한 성공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옛 중국에서는 등용문에 반대되는 말로 점액(點額)이란 말이 있었다. 상처를 입는다는 의미의 점(點)과 용문에 오르려고 급류에 도전하다 실패해 바위에 부딪쳐 이마가 깨져 피를 흘리고 떠내려가는 물고기를 뜻하는 액(額)을 결합한 단어다. 말 그대로 용 되기에 실패해 바다 밑에서 노니는 자들을 뜻한다.


여기까지 알게 되면 또 다시 물음이 남는다. 용이 되지 못한 채 평범함의 물살을 가르게 된 '점액'은 생존 경쟁에서 낙오된 패배자, 낙방자 일까? 아니면 언젠가 용이 될 거란 희망고문을 품은 채, 평생 도약만 반복해야 하는 슬픈 존재인 걸까?


약리도. 민화가 아닌 일반회화로 분류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하지만 한 가지 인정해야 할 엄연한 사실이 있다. 거친 물살에 몸을 던지는 대다수 잉어는 용이 되지 못한다. 평범한 물속을 헤엄치다 삶을 마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거센 물살을 가르는 것이 오로지 용이 되기 위함인 걸까. 그걸 유일한 답으로 본다면 결과가 좀 씁쓸해진다. 어쩌면 우리는 '도약‘이라는 말에 솔깃해, 수면 아래의 시간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건지도 모른다.



한 때는 단 한 번의 투고 성공이, 한 권의 책이 성공하면 날 용으로 만들어줄 문이 활짝 열릴 거라 믿었다. 그러나 삶에 그런 단판 승부의 도약은 쉽게 오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글쓰기의 고단함과 일상 사이에서 파닥거리는 물고기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반복되는 시도 속에 내 지느러미는 조금씩 두꺼워졌다. 성패에 상관없이 꾸준히 움직이는 법을 조금 배웠다. (결과에 의연해지진 못했지만)


한 가지 더 얻은 건 있다. 냉소가 줄었다. 치열하게 움직여본 만큼 타인의 치열한 몸짓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됐다. 쓰고자 하는 열망과 단 한 글자도 써지지 않는 순간, 그 사이에서 숱한 밤을 보내는 글쓰기 초심자의 마음을 결코 비웃지 않는 인간이 됐다.


어변성룡도 @영남대학교 박물관



어쩌면 실패해 바위에 부딪쳐 이마가 깨지고 피를 흘리는 건 예정된 수순일지 모른다. 그래도 초라한 실패의 과정에서, 우린 새로운 걸 얻기도 한다. 타인의 상처 입은 이마를 알아볼 수 있는 눈. 용문의 급류에서 홀로 승천하는 대신 깊고 평범한 물 속에서 서로의 지느러미질을 바라봐주는 것. 타인의 도약을 냉소하지 않게 된 기묘한 체념이야말로, 우리가 거센 물살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유일한 진실 아닐까.



안녕하세요 유랑선생입니다. 오늘도 글이 늦어서.. 죄송하단 말씀드립니다. 흑흑 ㅠㅠ


오늘은 글쓰기와 원고 투고에 대한 이야기로 도입부를 써봤어요. 이 공간에 너무 많이 쓴 주제지만, 그래도 쓸 때마다 새롭네요 ㅎㅎ 확실히 글 쓰면서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 줄었어요. 특별히 큰 성공을 해서 위풍당당해져서 그런 것도 아니고, 완벽하게 의연해진 것도 아니지만, '그래 뭐, 까이면(?) 되지. 누가 날 신경 쓰겠어' 정도의 맷집이 조금 더 자랐거든요.


그리고 거절당해도 상대가 저에게 큰 유감이 있어서 거절한 게 아니라, 그냥 타이밍이 안 맞아서 그런 경우도 있고, 정말 출간 방향이 안 맞아 거절하기도 한단 걸 알게 됐습니다. (실제로 원고 투고했을 때 거절당했던 출판사랑 나중에 손발을 맞추게도 되고 그렇더라고요. 저도 출판사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을 때 비슷한 이유로 거절을 하게도 되고요. )


물론 이렇게 쿨하게 생각하다가도 이 분야에서 자존심 상할 일이 생기거나, 글이 지독히 안 나오거나 원고 마감 때문에 일상 자체가 꼬일 때에는 인지 왜곡이 생겨서 '에라,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늘 이 주기가 반복됐고, 앞으로도 반복될 것 같아요. 이게 제가 얻은 거의 유일한 깨달음이네요.


오늘은 너무 긴 얘기를 덧댔네요. 다음 주에는 조금 더 빨리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 추운데 감기 조심하세요!!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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