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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Jul 21. 2020

생활기록부 '장래희망'란의 함정

꿈은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이어야 한다

생활기록부 장래희망란에 멈칫하게 되는 이유  


학교에 근무하며 아이들을 가르칠 당시의 일이다. 생활기록부를 기록 점검하는 학년 말의 교무실은 북새통이었다. 아이들의 교과 세부 특기사항과 동아리 활동, 행동발달특성사항 등을 적고 확인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린다. 차라리 순수하게 내가 아이들의 활동을 관찰하고 적는 기록란이 나을 때도 있었다. 어떤 기록란은 아이들에게 내용을 받아 그 내용을 토대로 적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제 때 못 내는 경우도 흔했다.


 독서기록란과 장래희망란(생기부에 적힌 대로 말하자면 '진로희망'란)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많은 아이들이 진로희망으로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다 '교사' '공무원' '회사원'등의 직업 중 하나를 적어냈다. 고등학교에서는 그나마 조금 더 구체적인 직업을 적어 냈지만(대학 수시 때 생활기록부 진로희망란이 중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중학교에서는 많은 아이들이 저 세 가지 직업 중 하나를 대충 적어냈다. 아마도 교사나 회사원, 공무원 외에는 보아온 직업이 많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유튜버정도가 인기 장래희망에 추가되었으려나.


 가장 난감한 경우는 '선생님, 전 꿈이 없어요'라고 하는 아이들이었다. 간혹 '백수'나 '건물주'를 적어내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 경우에는 다른 것을 생각해 보라 설득한 뒤 돌려보냈다. 아이들은 생각나는 직업이 없어 난감해 보였다.  


갑작스레 생활기록부의 진로희망란이 생각난 것은 최근 김경일 교수님의 유튜브 강의를 들었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 어떤 방식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은지 알려주는 강의였다.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10개의 세부적인 단계로 계획을 쪼개라는 이야기와 함께,  장기계획을 세울 때에는 '명사형'이 아닌 '동사형'으로 목표를 정하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가령 많은 이들이 25세-'대학 졸업생'이 된 후 30세-'교사''공무원', '의사', '비행사'가 되어야겠다는 식의 목표를 세운다. 그런데 이렇게 마감기한을 정해놓은 명사형 꿈과 목표에는 함정이 있다. 정해진 기간 안에 명사형의 직업이나 명함을 얻기 위해 성취에 연연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목표를 위해 실행하는 일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또 명사형으로 한정되어 있는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봐 조바심이 나서 마음이 괴롭고, 꿈을 위한 노력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일도 많다.


 시간이 지나 명사형 직업이나 꿈을 이루지 못할 경우 꿈이 좌절되었다고 생각하게 되는 일도 많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너 꿈은 뭐니? 장래희망이 뭐니?'라는 물음, 학교생활기록부 진로희망란에 적히는 간단명료한 단어들은 오히려 꿈에 대한 고정관념과 좌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붓 대신 가위와 색종이를 든 예술가, <왕의 슬픔>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20세기 초 야수파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강렬한 색채와 형태로 인간의 순수한 기쁨과 슬픔을 화폭에 그려낸 화가다. 

이 분이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 @ 출처 : 위키피디아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감정을 자유롭게 화폭에 그려내던 마티스에게도 예술가로서의 위기가 온 적이 있다. 암 수술을 하여 건강이 나빠지고 몸이 극도로 약해진 70대였다. 이미 심각한 관절염까지 그를 괴롭히던 차였다. 관절염을 앓던 초기에는 손에다 붓을 묶어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갈수록 이것조차 힘들어졌다. 칠순이 넘고 병상에 누워있는 화가가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좌절의 순간에서 그가 찾아낸 것은 가위와 색종이였다. 조수들이 '과슈'라는 불투명 수채화 물감으로 커다란 종이를 색칠해주면, 마티스는 가위를 가지고 색종이를 원하는 모양으로 오려내어 큰 종이 위에 붙였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노화가가 붓과 캔버스 대신 택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1937년부터 숨지던 1954년까지 약 17년 동안 스테인드 그라스, 책 표지, 장식화 , 태피스트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색종이 연작을 남겼다. 그는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서 붙이는 행위를 조각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도 그는 자유로운 색채 감각을 뽐낼 수 있었다.

1950년대 니스 자택에서 색종이를 오리며 작품 활동 중인 마티스의 모습 @ 출처: 한겨레 일보(2014.6.16 기사) 

색종이 연작 중 1952년에 제작된 <왕의 슬픔>이라는 작품은 특히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운데에 기타를 들고 있는 검은 형체는 무희와 오달리스크에 둘러싸인 왕을 나타내나, 한편으로는 마티스 스스로를 의미하기도 한다. 기타를 들고 웅크리고 있는 왕의 모습은 휠체어에 탄 자신을 의미한다. 그는 예술가로서 평생 사랑해온 여성 모델, 음악, 춤 등에 이별을 하는 스스로를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20세기 예술가의 위대한 자화상중 하나로 꼽힌다.

마티스가 말년에 색종이로 제작한 작품, <왕의 슬픔>(1952)                 @    출처: wikiart




장래희망란을 넓히며 나를 사랑하는 법 


  

 마티스가 인생의 장기 계획을 '화가'라는 이름에 가둬두었다면 어땠을까. 그는 붓을 잡을 수 없는 위기의 순간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예술적 영감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꿈을 명사 안에 가둬두면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하기 쉽다. 가령 30세 내에 교사가 되겠다 꿈꿨던 사람이 그 직업을 얻지 못하면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스스로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남겠다'라고 생각하면 학교에서 교사가 되지 않아도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요즘에는 유튜브를 통해, 글을 통해 강연을 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도 많다. 그 외에도 '작가'라는 꿈 대신 '글을 쓰겠다', '비행사' 대신 '하늘을 날겠다', '요리사' 대신 '요리를 하겠다' 등의 동사형 목표를 세우는 것이 꿈을 향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준다.


나  역시 스스로를 명사형 꿈 안에 가둬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가르치던 학생들에게도,  우리 아이에게도, 나에게조차  '너 장래희망이 뭐니? 앞으로 꿈이 뭐야'라는 식으로 물어보며 계속 특정한 직업이나 직함을 목표로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달려야 한다고 채근했었다. 생각해보니 직업의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가당치 않은 질문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른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우리 머릿속에는 학창 시절 적어냈던 진로 희망란이 아로새겨져 있다. 명사형으로 규정되는 진로희망란은 특정 시기까지 특정한 직업을 가지거나 위치에 올라야 한다는 압박감을 준다. 그것을 이루어야 주변인들이 '넌 마침내 꿈을 이루었구나'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너무 변수가 많다. 마음속 '장래희망란'이라는 작은 네모칸을 이제 열린 마음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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