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로 행진하던 여인, 초콜릿 브랜드가 되다

- 존 콜리어의 <고다이버 부인>과 고다이버이즘

by 유랑선생

한 여인이 벌거벗은 채로 흰 말에 올라타 있다. 여인의 모습은 보는 이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고개를 푹 숙이고 말에 올라타 있는 그 모습이 조금은 애처로워 보인다. 그녀는 지금 한 손으로 말의 고삐를 위태롭게 쥐고 있다. 흑갈색의 긴 머리카락이 그녀의 벌거벗은 몸을 조금이나마 가려주고 있다.


나체의 여인과는 대조적으로 그녀가 타고 있는 흰색 말은 꽤나 화려하다. 말의 등을 덮고 있는 붉은색 천과 여인이 앉아 있는 안장, 목에 둘러진 고삐는 고급스러워 보인다. 정작 말에 앉아 있는 여인은 아무런 옷도 입고 있지 않아 그녀의 신분이나 상황을 추측하기 어렵지만, 화려한 말의 모습이 그녀의 지위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해 준다.


그녀에게서 눈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면 그림의 배경은 분명 대낮의 길거리다. 하지만 그림의 주인공 주변에는 오로지 건물들 뿐 여타 등장인물이 없다. 그녀를 구경하는 사람도, 길을 지나가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벌거벗은 채 말을 타는 여인, 그녀를 쳐다보거나 수군대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길거리. 이 그림 속 여성에게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일까.


이 그림은 존 콜리어(John Maler Collier. 1850~1934)의 <고다이버 부인>(Lady Godiva)이라는 작품이다. 콜리어는 영국 출신의 화가로 신고전주의 경향을 지닌 예술가였다. 신고전주의란 19세기 후반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유행하였던 예술작품의 흐름 중 하나로, 여기서 '고전'이란 서양 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시기, 그리스 · 로마 시기 때를 이른다. 고대에는 예술작품이나 건축물을 만들 때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균형을 추구했다.

신고전주의는 이러한 고대의 예술적 특징들을 되살리고자 했던 경향을 말한다. 그림 속 고다이버 부인 역시 벌거벗은 몸으로 대낮의 길거리를 행진하고 있지만 그 모습이 결코 음란하다거나 선정적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녀는 어딘가 품위가 느껴지는 고상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마치 고대의 예술작품 속 여신의 모습처럼 말이다.



그림 속 아름다운 여인, 고다이버 부인은 누구일까. 그녀는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방에 살던 영주의 아내였다. 중세 시대 유럽의 영주는 자신의 영지 안에서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는 지체 높은 존재였다. 이토록 높은 지위에 있던 영주의 아내가 어째서 나체로 말을 타고 길거리를 돌아다니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다. 그녀의 남편 레오프릭(Leofric) 영주는 백성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지배자가 아니었다. 그는 특히 자신의 성 안에 있는 백성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이고는 했는데, 그 가혹한 세금이 백성들의 생활이 어렵게 만들 정도였다.

농노들의 생활을 딱하게 여겨 영주에게 조언을 한 사람은 바로 그의 아내 고다이버 부인이었다. 그녀는 농노들의 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세금을 줄여달라고 남편에게 조언했다. 16살의 나이에 불과했지만 미모와 현명함, 이해심을 모두 갖춘 여인이었다.

<고다이바 부인>(1892, 에드먼드 레이튼) 속 고다이바 부인과 레오프릭 영주의 모습

그런데 레오프릭 영주의 반응은 엉뚱했다. 그는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가난한 소작농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진심인지 증명해보라. 당신이 알몸으로 나의 영지를 한 바퀴 돈다면 부탁대로 세금을 낮추어주겠다”

아마도 영주는 아내가 이 제안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내의 요구를 절대 들어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엉뚱한 제안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남편의 생각보다 고다이버 부인의 뜻은 완강했다. 부인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나체로 길거리를 행진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관한 소문이 퍼지자 농노들은 자신들을 위한 고다이버 부인의 희생정신에 감동했다. 그래서 부인이 알몸으로 영지를 행진할 때 다들 이를 보지 않기로 약속했다. 모두들 문과 창문을 걸어 잠그고 길거리에 나오지 않기로 했고, 실제 고다이버 부인이 코벤트리 영지를 알몸으로 행진한 날 길거리는 조용했다.


인간사가 대체로 그렇듯 공동체의 약속을 어긴 이도 한 명 있었다. 양복쟁이 톰이라는 사내는 아름다운 여성의 알몸을 보려는 유혹에 못 이겨, 커튼을 슬쩍 들어 올려 고다이버 부인을 훔쳐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신이 벌이 내린 것인지 톰의 눈이 멀어버려서 남은 생 동안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남을 훔쳐보기를 좋아하는 사람, 관음증을 가진 사람, 호색가 등을 영어 단어로 피핑 톰(Peeping Tom)이라 부른다.




고다이버 부인의 이름은 사실 우리에게 낯선 것이 아니다. 그녀의 이름은 엉뚱하게도 현대로 와서 초콜릿 브랜드의 이름이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벨기에의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다. 1926년 이 초콜릿 회사를 만든 조제프 드랍스는 고다이버 부인의 희생정신을 기리며 브랜드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고디바는 Godiva를 프랑스어로 발음한 것이다- 앞으로 고디바 초콜릿을 사 먹을 일이 있다면 상자에 새겨진 브랜드 로고를 자세히 살펴보자. 말을 탄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녀가 바로 고다이버 부인이다.


초콜릿 회사 '고디바'의 로고. 고다이버 부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초콜릿 브랜드의 이름 못지않게 우리가 기억해야 할 단어가 있다. '고다이버이즘(Godivaism)'이라는 용어다. 이는 오랫동안 내려오는 잘못된 일이나 관습, 잘못된 권력을 대담한 방법으로 뚫고 나가는 정치 행동을 이른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고다이버 부인의 행동으로부터 탄생한 말이다. 실제 그녀의 이 파격적인 시위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레오프릭 영주는 백성들을 위하는 부인의 행동에 마음을 움직여 세금을 감면해주고 이후에도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물론 이 이야기를 100% 실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레오프릭 영주나 고다이버 부인은 실제로 존재한 인물로 보이지만, 고다이버 부인의 나체시위는 동시대의 이야기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가상의 이야기에 가깝다 하더라도,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기꺼이 벌거벗은 몸을 내놓았던 그녀의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영국 코벤트리 시에는 고다이버 부인의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해마다 그녀의 용기 있는 행동을 기리는 지역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고다이버의 이야기가 현재까지도 얼마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존 콜리어의 <고다이버 부인>을 다시 천천히 감상해보자. 이 그림을 보고 우리는 고다이버 부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할 수도 있다. 고디바 초콜릿의 달달한 맛을 떠올리거,나 관음증을 가진 이들의 오랜 조상인 피핑 톰을 생각하며 흠칫 놀랄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그림은 한 여인의 숭고한 정신을 떠올리게 한다. 세상의 잘못된 논리를 뚫기 위해 자신의 지위나 부끄러움을 벗어던진 그 놀라운 정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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