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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Dec 29. 2020

행복 회로의 최대치

고통은 지나간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남는다. 

행복 회로라는 말이 싫었다     


 

 행복 회로. 이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행복회로를 돌린다'는 말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미래에 대해 막연히 낙관적인 상상을 하며 버티는 경우를 뜻하는 인터넷 신조어다. 걱정 부자였던 나는 어떤 상황이 닥쳐오기 전에 최악의 케이스를 미리 상상해두는 편이었다. 당연하게도 행복 회로라는 말에 냉소했다. 현재 상황을 부정하고 앞으로의 일을 억지로 좋게 보려고 하는 사고방식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이 말을 비웃던 나 역시 올해는 행복 회로를 여러 번, 세차게 돌렸다. 2, 3월쯤에는 세상을 본격적으로 뒤덮기 시작한 전염병이 몇 달 지나면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6월쯤 되면 모든 사태가 진정되고 늘 가던 한국 휴가를 갈 수 있겠지 기대했다. 한 해의 중반부를 지날 때쯤에는 이 참에 한국에 되돌아가 눌러앉을 수 있으려나 생각하기도 했다. 9월 정도가 되면 아이 학교가 다시 열리고 모든 사태가 끝나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했다. 9월에 이르러 막연한 기대가 모두 좌절되자 행복 회로를 돌릴 힘조차 사라졌다.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가득했다. 언제까지 이 상태를 지속해야 하는 거야. 이렇게 외로운 상황을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 거지. 끝내는 ‘이 상황은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사고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던 어느 날 남편에게 ‘아무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는 말을 무심코 내뱉기도 했다. 결혼 10년 만에 처음 듣는 말에 남편도 당황했고 그 말을 뱉은 나도 당황했다. 남들이 이런 말을 던졌더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너그럽지 못했다. 스스로가 나약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보다 힘든 사람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야. 이 정도 상황에 징징대지 말자. 죄책감이 들어 "실언이었다, 미안하다"며 다급하게 남편에게 둘러댔다. 되돌아보건대 당시의 나는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마음이 힘든 상태라고.    

    

 불행 회로를 계속 돌리다 보니 생각은 자꾸 과거로 가 있었다. 현재는 생각하기 싫었고 미래는 상상하기 싫었다. 아름다웠던 과거의 추억만이 위안이 되었다. 스무 살에 친구들과 놀러 갔던 바다, 사막의 별을 보았던 이집트 여행의 기억, 작년 한국 휴가를 갔을 때 지인들과 보냈던 소중한 시간. 지난 시간을 한껏 미화하며 그리워했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너무 빨리 지나간 듯 느껴졌다. 머릿속으로 추억여행을 한참 하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지금의 힘든 시간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수 있을까'. 도무지 그럴 것 같지 않았지만 스스로에게 거듭 질문했다. 이 시간도 먼 훗날 추억이 될 수 있을까.    

  



결국 아름다움만이 남는다, <물랑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1841~1919).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다. 세잔,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주의 예술가들은 빛과 함께 시시각각 움직이는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잡아내며 풍경을 묘사했다는 특징이 있다. 르누아르 역시 순간순간 빛나는 색채를 잡아내 화폭에 옮기는데 탁월한 재주를 지닌 화가였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

 

사실 르누아르의 작품을 감상하며 아름답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그림에 마음이 동한 적은 별로 없었다. 내 어두운 취향 때문인지 삶의 고통이나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린 작품, 인생의 굴곡을 겪은 화가의 그림을 선호하는 편이다. 파리 부르주아의 평온한 일상을 그린 르누아르의 작품을 보고 '이 화가는 인생의 밝은 면만 볼 수 있었던 부르주아의 자제였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기도 했다.       



르누아르의 <선상 파티에서의 점심>(1880~1881)과 <피아노 치는 소녀들>(1892). 파리 시민들의 밝은 일상을 담고 있다.

 


 알고 보니 내 짐작은 정확히 틀린 것이었다. 르누아르는 가난한 재봉사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이였다. 가난했기 때문에 12~13세 때부터 도기 공방에 그림을 붙이는 직공으로 들어가 일했다. 빈궁한 삶이었지만 미술관을 다니며 그림 공부를 계속했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도기에 그림을 붙이는 기계가 만들어지자 직공일을 계속할 수 없었다. 공방에서 나온 후 1862년 마침내 국립 미술학교에 입학하였고, 화가 샤를 글레르의 아틀리에에 들어가며 화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한때는 물감을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점차 자신만의 아름다운 작품 세계를 남기며 인정받는다. 특히 1876년 대표작인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를 발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물랑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1876, 오귀스트 르누아르)


 '물랭 드 라 갈레트'는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 위치한 야외 무도회장을 말한다. 당시 대중적인 인기를 끌던 장소였다. 그림 속에서 무도회장을 찾은 이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여가를 즐기고 있다. 사람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그림 안을 가득 채우는 듯 느껴진다. 


 이 작품에서 특징적인 것은 그림 속 인물들의 얼굴과 옷, 머리 위로 반짝이는 햇빛의 묘사다. 따사로운 햇빛은 마치 밝고 동그란 자국처럼 표현되며 사람들을 밝게 비추고 있다. 그는 그림자를 표현하기 위해 검은색을 쓰지 않았다. 덕분에 그의 작품 속에서 어둠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르누아르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몽마르트 언덕 근처에 작업실을 차린 후 1년 동안 매일 무도회장을 찾아가 햇빛의 변화를 연구했다고 한다. 작품을 향한 그의 정성이 느껴지는 일화다.        


 르누아르는 그림은 즐겁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역시 그의 이러한 지론을 여지없이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생각은 그의 긍정적인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르누아르의 철학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명언은 다음과 같다.       


 고통은 지나간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남는다.    

 

 

 나의 어리석은 선입견과 달리 르누아르는 인생의 어둠을 충분히 경험한 이였다. 그는 삶의 고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어릴 때에는 가난을 경험했고, 말년에는 류머티즘 때문에 육체적인 괴로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기쁨을 놓은 적은 없었다. 르누아르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우리의 인생 속에서 즐거움을 방해하는 요소는 많지만 고통의 시간은 결국 지나가고 결국에는 아름다운 추억이 남는다는 사실을. 그렇기에 인생을 긍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있어 그림은 인생의 아름다움을 남길 수 있는 최선의 방도였을 것이다. 르누아르는 특유의 긍정적인 철학을 통해 ‘행복의 화가’로 미술사에 이름을 남겼다. 




행복 회로의 최대치


      

 르누아르의 아름다운 작품은 우리에게 말한다. 시시각각 바뀌는 빛의 색채처럼 모든 것은 지나가고 변화한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은 빠르게 지나가는 듯 느껴진다. 그러나 가장 어두운 시절도 언젠가는 지나간다. 길고 어두운 터널에도 반드시 끝은 존재한다. 끝내는 아름다움만이 남는다.      

  

 당신이 현재 가장 외롭고 초라한 시절을 보내고 있더라도, 이 시절도 언젠가는 '지나간 시간'이 된다. 온 세상을 뒤덮은 역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무기력하고 지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이 시간도 언젠가는 ‘옛 일’이 될 것이다. 

 

 물론 힘든 시간이 정확히 언제 끝날지, 끝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게 예측하거나 단정할 수 없다. 인생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미래에 대한 상세한 계획이나 기대, 예측은 수많은 변수 앞에서 때때로 무의미해진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낙관은 오히려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간은 언젠가 지나간다는 사실만큼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좋은 상태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쁜 상태도 끝없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가장 힘든 시간 속을 묵묵히 버티는 것, 힘든 시간 속에서도 찰나처럼 지나가는 행복의 순간을 붙잡는 것일지도 모른다. 외롭게 있을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것, 힘겹지만 내 어깨를 스스로 붙잡아 일으켜 세우는 것. 아무리 힘든 시간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임을 믿는 것. ‘추억’까지는 될 수 없을지라도 ‘기억’ 정도는 될 것임에 틀림없다. 아름다운 시간이 지나가듯, 외롭고 힘겨운 시간 역시 지나간다. 그것이 우리가 돌릴 수 있는 행복 회로의 최대치 일지 모른다.         


   


도무지 지나갈 것 같지 않던 2020년도 지나가네요. 대부분의 분들께 그저 버티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한 해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묵묵히 버티면서, 지친 스스로를 다잡으면서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셨겠지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꼭 드리고 싶었던 말씀입니다.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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