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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Jan 12. 2021

그때, 나 왜 그렇게 바보 같았을까

과거의 내 선택과 행동이 후회스럽다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릴 때 좋아해서 수십 번 보았던 영화 중 하나가 <백 투 더 퓨쳐> 시리즈였다. ‘백 투 더 퓨처 1’에서 주인공 마티(마이클 J 폭스)는 타임머신을 타고 부모가 고등학생이던 시절로 간다. 과거로 돌아간 마티는 우연히 아버지, 어머니의 과거 속 한 장면을 바꾸게 된다. 덕분에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온 현재에서 마티와 가족들의 삶은 예전보다 만족스러운 상태로 변한다.    


영화 <백 투 더 퓨처> 속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예전부터 이 영화를 보며 과거의 어떤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의 주인공은 부모의 과거를 살짝 바꾸지만, 나는 과거의 나에게로 돌아가 인생을 살짝 바꾸고 싶었다. 바보 같았던 과거의 나를 가르치고 훈계해 바른 길로 이끌고 싶었다. 미래에는 네가 이런 일로 후회할 테니 지금 이런 선택은 절대 하지 마. 그 시점에 당당하게 네 의견을 말해야 해. 아니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거야. 몇몇 선택을 돌려놓는다면 지금의 인생이 더 만족스러워질 것 같았다.


그때 나 왜 그렇게 바보 같았을까.

 혼자 자주 중얼거렸던 말이다. 세상 사람들을 과거와 현재, 미래 중 어느 시점을 보고 살아가는 유형인지에 따라 나눈다면 나는 주로 과거를 보고 사는 사람이었다. 예전의 내 선택과 행동을 되짚어 보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옛날의 내가 얼마나 바보처럼 행동했는지, 왜 그런 바보 같은 선택을 했는지 답 없는 의문을 머리에 떠올리고는 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함부로 굴었던 기억을 떠올릴 때면, 무례했던 상대방보다 그에게 아무런 항변도 못했던 그때의 나를 탓했다. 허무하게 끝난 관계를 회상할 때에는 ‘어차피 추억으로도 못 남을 사람에게 왜 그렇게 관심과 정성을 기울였을까’ 후회했다. 직장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시기에는 주변의 권유에 휩쓸려 이 직업을 선택한 내가 미웠다. 학창 시절에 미리 내가 원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했더라면 다른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해외에서 살게 된 후 부적응 상태가 지속되자 이 나라에 오기로 결심했던 과거의 나를 구박했다. 특히 영어에 서툰 아이가 학교의 낯선 나라의 아이들 사이에서 겉돈다고 느껴졌을 때, 무너진 마음은 나를 탓했다. 나 왜 이런 삶을 선택해서 아이까지 외롭게 만든 것일까.    


 때때로 생각했다. 과거에 바보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에게 제대로 내 뜻을 밝혔더라면, 누군가에게 마음과 정성을 쏟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일까. 그때 삶의 각도를 몇 도만 틀었더라도 나는 상처 받을 일이 적었을 테고,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상태의 내가 되어 있을 텐데. 과거의 옳지 않은 선택과 행동 때문에 현재의 내가 이토록 삶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 중인걸까 생각했다. 과거의 나를 구박하는데 마음을 많이 썼다.      



오르페우스는 어떤 금기를 어겼을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 속 음유시인이다. 어려서부터 아폴론에게 리라를 연주하는 법을 배워 누구보다 뛰어난 악기 연주 실력도 갖추고 있었다. 오르페우스는 애처가로도 유명하다. 그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몹시 사랑했다. 그러나 이 부부의 결혼은 얼마 되지 않아 비극을 맞이한다. 에우리디케가 산책을 나갔다가 뱀에 물려 죽게 된 것이다.

<에우리디케의 죽음을 애도하는 오르페우스>(1814, 아리 셰퍼) @wikpedia

 

 사랑하는 아내를 한 순간에 잃은 오르페우스는 저승에 가서 그녀를 다시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저승에 이르는 길은 험난했지만 그는 우여곡절 끝에 저승을 다스리는 신(神), 하데스 앞에 당도한다.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돌려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담아 하데스 앞에서 아름다운 리라 연주를 보여준다.  그의 연주에 감명받은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이승에 데리고 갈 것을 허락해준다. 대신 한 가지 금기를 오르페우스에게 제시한다.

     

에우리디케가 너를 따라갈 것이니
이승으로 나가기 전까지는 절대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1636~1638, 페테르 파울 루벤스)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나가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그림 오른쪽에 위치한 이들이 저승의 신 하데스와 그


 오르페우스는 하데스가 말한 금기를 깨트리지 않기 위해 뒤따라오는 에우리디케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승으로 가는 출구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자 오르페우스는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에우리디케를 잠시 돌아본다.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다시 저승으로 끌려가버리고 말았다. 결국 오르페우스의 사랑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오랫동안 많은 화가들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비극을 화폭에 담아 왔다. 프랑스혁명 시기에 살았던 화가 미셸 마르탱 드롤링(Michel Martin Drolling, 1786~1851)도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남겼다. 그는 오르페우스 이야기의 수많은 장면 중 오르페우스의 실수로 인해 에우리디케가 저승으로 다시 끌려가는 순간을 그렸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1820, 미셸 마르탱 드롤링) @wikipedia


  그림의 오른쪽 에우리디케는 이미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다. 그녀를 부축하며 저승으로 끌고 가려는 인물은 헤르메스다. 저승으로 영혼을 인도하는 역할을 맡은 신이다. - 그리스 신화를 다룬 그림에서 날개 달린 모자를 쓰고 있는 이를 발견한다면,  전령의 신 헤르메스일 가능성이 높다 - 오르페우스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향해 손을 내젓지만 이미 헤르메스는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사라지려는 참이다. 오르페우스의 상징과도 같은 리라 역시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다. 바닥에 떨어진 리라와 오르페우스의 비통한 몸짓으로 그의 참혹한 심경을 짐작할 수 있다.


 오르페우스는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본 죄로 비극을 맞이했다. 신화 속 금기 속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한국에도 비슷한 의미를 담은 ‘의림지 장자못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욕심 많고 심술궂은 부잣집에 물벼락이 내리기 전, 한 탁발승이 그 집의 착한 며느리에게만 구제의 기회를 준다. 그는 며느리에게 물벼락이 내리치기 전 산속으로 피하라는 이야기와 함께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사항을 전한다. 그러나 며느리는 산속으로 도망가다 남편과 자식들 걱정으로 뒤를 돌아보게 되고, 결국 돌이 되어버린다.  


 동서양에 공통으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며 과거(뒤)를 돌아보는 실수를 저지른다. 과거의 어떤 시점을 돌아보며 마음 아파하고, 그 시점의 나를 탓하고 후회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런 일을 반복하다 보면 현재로 나아갈 힘이 허공으로 흩어져 버린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과거를 자꾸 돌아보며 후회하지 말라는 금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과거는 어차피 바꿀 수 없으니, 후회와 자책은 무의미한 것이라는 이성적인 가르침을 수없이 들었다. 바꿀 수 없는 옛일을 계속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점,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 현명한 태도라는 것.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은 단숨에 과거로 내달리곤 했다. 그렇게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고 난 날에는 어김없이 마음이 괴로웠음에도 똑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어느 날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이효리가 25살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는 장면을 보았다. 이효리는 잘 나가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주변에 마음을 닫고 살았던 젊은 날 자신을 회상하며,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아내의 말에 남편 이상순이 조용히 대꾸한다. “그때는 또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거야.”


 그 장면을 보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과거 시점의 나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그때의 나에게는 그런 선택과 행동을 한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가령 억울한 상황에서도 항변하지 못했던 것은 누군가에게 항의하는 것을 연습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고민 없이 직업을 선택한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빨리 취업해 돈을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 생각했고 다른 길을 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해외살이를 선택하던 시점에는 아직 어렸던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외생활에 대한 약간의 환상도 품고 있었다. 타지에서의 생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그때는 잘 몰랐다. 경험하지 못했으니 몰랐던 것이 당연했다. 각각의 시점에는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존재했다. 심지어 선택과 행동을 달리했더라도 아쉬운 점은 또 생겼을 것이다. 어차피 모든 선택에는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니까.


  우리는 때때로 ‘후회’라는 가면을 쓰고 과거의 나를 탓하고 미워하는데 에너지를 쓴다. 어리석었던 나, 아무 말도 못 했던 나, 오만하게 굴었던 나, 바보 같은 선택으로 내 삶을 망친 나를 탓한다. 타인의 탓이나 환경 탓을 하면 마음이 더욱 힘들어지니 모든 일의 원인을 과거의 내 탓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뚜렷한 이유 없이 벌어지는 일도 많다. 잘못과 실수를 줄여야지 생각해도, 어떻게든 벌어졌을 일도 존재한다. 과거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씁쓸한 감정만 남는다. 그때의 나를 실컷 구박하고 혼내는데 힘을 쓰고 나면, 잔뜩 혼난 상태의 ‘옛날의 나’만 마음속에 우두커니 혼자 서 있게 된다. 마음은 더 외로워진다. 나를 구박하는데 이미 에너지를 잔뜩 써버렸으니 앞으로 나아가고 버틸 힘도 생기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탓하고 미워하며 과거를 바라보는 행동은 ‘반성’이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다. 진정한 반성은 마음속 동굴을 완전히 빠져나오고 난 후에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막대한 해를 입히지 않았다면, 과거의 나를 그렇게까지 미워할 필요가 없다. 미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객관적으로 과거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때에야 진정한 반성이 가능하다. 그렇게 할 수 있어야 비로소 현재를 버틸 힘이 생긴다.


 예전의 나를 미워하는데 오랜 시간 마음을 쓰고 있다면 이제 그만 과거의 나를 그만 구박하고 마음에서 놓아주어야 한다. 약간 어리석고 바보 같았을지라도 과거의 당신이 ‘옳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바꾸고 싶은 과거를 생각할 때 기억해두자. 그때 당신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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